[Opinion] Microhabitat, 소공녀 [영화]

미소가 지은 미소서식지
글 입력 2018.12.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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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영화를 찾아보진 않았는데 이젠 우울하거나 심심하거나 하면 주로 영화를 관람한다. 자격증 공부에 매진했던 지난 몇 주를 보내고 나니 붕 뜨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휴학도 이제 곧 끝나 가는데 뭐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고 애를 쓰는 나를 발견했다. 뭔지 모를 우울감, 뒤처지는 느낌에 이 영화를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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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소이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한솔과 위스키 한 잔, 담배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남들의 집안일을 돕는 일을 하는 가사도우미 미소의 하루 일당은 45000원이다. 그 돈을 가지고 집값, 약값 등을 차근차근 모은다. 그러나 그런 미소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물가는 오른다. 월세를 올리겠다는 집주인, 해가 바뀌면서 2000원이 올라버린 담뱃값까지.. 버는 돈은 같은데  지출이 증가하니 미소는 무언가 포기를 해야만 한다. 그녀는 결국 집을 포기한다. 위스키와 담배는 그녀의 유일한 안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손엔 캐리어를 끌고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미소는 집에서 나온다. 그리곤 옛날에 같이 밴드 활동을 하던 멤버들을 찾아간다. 직장생활을 하며 바쁜 날들을 보내며 언제 잘릴지 모르니 간호조무사 기술을 배워둔 친구, 시집살이에 지쳐버린 친구, 노총각 오빠, 부잣집으로 시집 간 언니, 낮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엔 맨날 술로 보내는 막내까지 미소가 찾아간 옛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들의 집을 떠돌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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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짐을 싸 들고 무작정 찾아온 미소를 마냥 기쁜 마음으로 반기지 못한다. 미소를 재워주려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미소에게 위스키와 담뱃 값을 줄이고 먼저 집을 구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정말 당연한 생각이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니 말이다. 술과 담배, 그리고 집 중에서 포기하라고 한다면 당연 집은 제외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생각을 뒤집고 미소는 별 고민 없이 집을 포기한다. 결국 예전 베이스를 맡았던 정미 언니에게 ‘염치없다’ ‘한심하다’ 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미소는 또 그 집을 나온다.


미소가 한 번은 아파트가 있는 막내의 집에 찾아간다.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뒤 매일 밤을 술로 보내는 동생이었다. 서울에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집을 구했다. 월급이 190만원인데 매달 100만원을 20년 동안이나 빚을 갚는데 내야했고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집을 나갔다고 했다. ‘빚을 다 갚을 때가 되면 이 집이 많이 낡아있겠지?‘ 그 이야기를 아이처럼 울면서 미소에게 쏟아내는데 마음이 찡했다. 그깟 아파트가 뭐라고.



‘집은 없지만 생각과 취향은 있어’



미소는 집이 없지만 집이 있는 친구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였다.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이해 안 되는 미소의 행동도 많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미소의 신념과 취향이 확고하다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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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은 그는 학자금 대출이 잔뜩 남아있고 하는 공모전마다 떨어지는 웹툰 작가 지망생이다. 미소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던 한솔은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고 통보한다.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면 생명수당도 붙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주변에 사막밖에 없어 돈을 아주 잘 모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돈을 모으면 무려 5천이다.


남들 하는 거 다 해보고 싶었던 한솔, 맛집 데이트도 하고 남들처럼 살기 위해 먼 타국으로 떠난다. 꿈과 여자친구를 버리고 말이다. 이런 한솔에게 미소는 ‘난 지금도 너무 행복해’라고 하지만 관객들은 한솔의 마음을 잘 이해했을 것 같다. 한솔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그냥 우리의 모습이었다. 꿈과 현실 속에서 우린 대개 현실을 택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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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는 사실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미소같이 궁핍한 상황에서 생각과 취향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미소가 집을 정리하고 추운 길로 나왔을 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 저렇게 무거운 짐을 끌고 어디가’ ‘난 못해’ ‘차라리 술을 포기해’라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연락도 끊겼던 친구들을 찾아가는 걸 보면서는 정말 이해가 안가기도 했다. 나에겐 그 정도의 용기가 없었다. 아직 미소처럼 간절하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소한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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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 스쳐 지나감이 아닌 오래도록 나에게 여운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미소처럼은 할 수 없어도 미소처럼 삶을 살아가며 낭만은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소에게 위스키 한 잔과 담배가 낭만과 자유였다. 어디에선가 삶의 목적은 낭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팍팍하고 힘들지라도 낭만은 꼭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또 미소처럼 삶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이 아닌 나, 미소가 정말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이 없어도 어디서나 당당한 그 미소의 모습이 계속 떠오를 것 같다.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거야’ 라고 말하던 그 모습이 부러웠다. 남들의 눈치를 안 보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항상 다짐을 하고도 무너지고 또 이렇게 다짐을 하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노력 중이다. 어디선가 미소가 진짜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무너지고 힘들 때 찾아와 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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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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