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꿀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갈증 [도서]

글 입력 2018.12.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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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은 어두웠다. <갈증>은 그런 과거를 짜증스럽게 되뇌며 썼다. 이는 고독과 증오를 견디지 못하고 질주하는 인간들의 슬픔을 그린 작품이다. 우애와 화합을 버렸기 때문에 심한 거부감을 갖는 분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소설의 세계에 공감할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애 가득한 세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찬란한 태양을 향해 침을 뱉고 싶은 사람이 나만은 아닐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


- 후카마치 아키오



삶이 사랑과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의 삶은 이따금 증오, 분노, 경멸, 질투와 같은 어둠과 함께한다. 문득 외롭고, 이유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무언가에 대한 결핍이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노래하고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것이 삶의 이유인 것처럼.


사랑, 행복, 희망, 정 따위가 지워진 삶을 상상해본다. 내면의 추악함을 마음껏 표출해내는 피폐한 삶을, 이유 없이 계속되는 갈증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삶을. 우애와 화합이 사라진 잔혹한 삶은 분명 ‘인간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소설 <갈증>은 그러한 삶을 담아내고 있다. 책 속에는 불륜, 마약, 매춘, 조직폭력, 살인, 근친상간 등의 온갖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소재로 가득하다. 그 참혹함에 눈을 찌푸리게 되기도 하지만, 묘하게 그 감정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무언가에 대한 갈증을 애써 달래며 살아가고 있는 탓에 이러한 참혹함에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 듯하다. 우리도 종종 고독과 증오에 휩싸여 절망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는가. 잔혹함으로 가득찬 <갈증>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 마주했던 감정들을 다시금 경험할 수가 있었다.




내면을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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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모범생이었던 딸 가나코의 실종이 발단이 된다. 이혼 후 연락이 두절되었던 아내 기리코의 연락을 받은 후지시마는 그들과 함께 살았던 집으로 향한다. 행방불명의 단서를 찾던 그는 딸의 방에서 다량의 각성제를 발견한다. 일반적인 여고생의 신분으로는 소지할 수 없을 만큼의 양임을 깨달은 그는 딸 가나코에 대한 수소문을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 ‘테이큰’이나 ‘서치’처럼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으로 딸을 찾아나서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은 딸의 흔적을 찾아낼수록 후지시마의 괴물 같은 본성을, 즉 개인의 내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모범생인줄로만 알았던 딸의 거대하고 음침한 세계를 알아갈수록 음주와 폭력을 일삼고 금기를 처절하게 깨 부시며 살아온, 광기 어린 자신을 찾게 된다.




사랑이라는 탈을 쓴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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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려는데, 아버지답게 살아가리라 맹세했는데. 자기중심적인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안다. 딸이 각성제를 남겨두고 모습을 감추지 않았더라면 아마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평생을 지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딸을 만나고 싶었다.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연민은 금방 증오로 바뀌었다. 놈들은 딸의 행방을 안다. 질투가 가슴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포효했다. 죽여 버릴 거야!


<갈증> 187p



딸을 찾아나서는 아버지. 그 바탕에는 부성애(父性愛)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생각될 테지만, 후지시마에게는 질투에서 비롯된 욕망이 우선한다. 마약을 판매하고, 조직폭력배를 손쉽게 부리고, 매춘 사업에까지 손을 담그고 있던 가나코에게는 사회를 뒤흔들 만큼의 거대한 세계가 존재했다. 딸에 대한 수소문을 하며 그녀의 세계로 다가갔던 후지시마는 본인이 그 사실들을 몰랐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끼며 분노한다. 광기 어린 질투는 더욱 악착같이 그녀의 행방을 좇으려 애쓴다.


가나코의 행방을 좇아 결국 만나게 된 것은 역겨움이 느껴질 만큼 비인간적인 그의 추악함이다. 가나코가 어두운 세계를 뒤흔들게 된 이유는 후지시마였다. 딸을 욕정의 대상으로 여겨 품었던 후지사마. 금기를 깨 부신 괴물 같은 그는 결국 가나코라는 또 다른 괴물을 만들었다. 딸을 찾는 추악한 여정은 사랑일 리가 없다. 질투와 분노, 광기 어린 질주, 단지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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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가나코의 행방을 찾는 후지사마의 서사와, 3년 전 가나코를 짝사랑했던 ‘세오카'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이지메를 당하며 살아왔던 세오카의 앞에 가나코가 등장한다. 수돗가에서 피를 닦고 있던 그에게 수건을 건네주고, 옥상에 갇혀있던 그에게 빼앗긴 바지를 되찾아주는 가나코. 세오카에게 가나코는 천사의 모습으로 보였을 테다. 얼핏 보면 눈부시게 찬란하고 순수한 짝사랑이 될 것만 같아 보인다.


여느 소년이 그렇듯 그는 자신의 천사인 가나코를 점점 욕심낸다. 그 순수한 마음은 이내 상상도 못했던 어둡고 음침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세계를 맞이한다. 가나코의 명령에 영문 모른 채 어둠 속 세계에 발 담근 세오카는 잔혹한 폭력과 성유린을 당하고, 가족과의 행복이나 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열띤 사랑은 꿈도 꿀 수 없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나코가 있다. 그녀는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그의 삶을 손 쉽게 망가뜨렸다.


세오카는 그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짝사랑은 곧 광기 어린 분노가 된다. 세오카는 온갖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분출하고,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 몰기도 하며 결국 사라졌던 가나코를 찾게 된다. 그녀의 행방을 좇는 여정의 이유가 현실을 부정한 채 기억속의 천사 같은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자신을 완전히 망쳐버린 그녀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가지 마음이 모두 공존하는 듯하나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가깝다고 본다. 한 러브호텔에서 짧은 재회를 맞이한 그는 가나코를 찾아온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결국 죽음을 맞는다. 광기 어린 짝사랑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




어둠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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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한테는 아무 짓도 할 생각이 없다고. 이미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돌아 볼 것도 없다고… 그게 너희한테 가장 큰 고통이 될 거라고,”


<갈증> 410p



가나코는 후지사마에게 복수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뒤에 거대한 세계를 구축하고 유지한 채. 그녀의 세계가 눈앞에 드러날수록 후지사마는 죄책감에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어야 했다. 그러나 후회, 죄책감, 연민 따위가 없는 비인간적인 그에게 이러한 방식의 복수는 통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기에 더욱 비참하고 잔혹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참혹해질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사랑이나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말마저 찝찝하다. 한 사람, 아니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멸에 이르게 한 후지사마는 계속해서 살인이나 폭력 따위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이어나가며 살아간다. 비정함과 잔혹함의 끝을 맛본 듯하다. 온 내면을 뒤흔들어 책을 덮은 후에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가 않았다. 증오, 후회, 열등감과 같은 어둠이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바라볼 빛이, 사랑과 희망, 행복 따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함을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꿈꿀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극한의 파멸에서 다행히도 빛이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을 만날 수 있었다.


*


갈증은 열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분명 죽음과 고통, 죄책감 따위가 아닌 인간다운 삶과 정이 가득한 일생일 테다. 무능력함과 결핍을 탓하며 끊임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오던 나에게 이 책은 꿈꿀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안도감을 선사했다. 읽는 내내 찝찝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그 비참함과 잔혹함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지만, 이러한 메시지를 남겼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미스터리 강국인 일본에서 ‘제 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를 수상한 이 작품은 명성답게 긴장감 넘치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통해 비현실적인 세계로 인도했다. 결코 편하게 맞을 수 있는 소재들은 아니기 때문에, 깊게 파고드는 것 보다는 가볍게 읽어 내려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이 책을 ‘뜻밖의 기회’라 표현하며 글을 끝맺도록 하겠다.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참혹한 감정의 극한이, 그토록 열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해주었으니. 당신은 무엇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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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후카마치 아키오

(深町秋生, Fukamachi Akio)


1975년 야마가타현 출생. 센슈대학 경제학부 졸업. 2005년 《갈증》으로 데뷔, 제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히스테릭 서바이버》 《데드 크루징》 《잭나이프 걸》 《더블》 《아우토반 조직 범죄 대책과 야가미 에이코》 《아웃크래시 조직 범죄 대책과 야가미 에이코Ⅱ》 《아웃사이더 조직 범죄 대책과 야가미 에이코Ⅲ》 《다운 바이 로》 등을 발표했다.






갈증
일본 제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


지은이 : 후카마치 아키오

옮긴이 : 양억관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일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18년 5월 21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950614-7-1 (03830)





[이미지 출처]
HIGHGRND
'영화 갈증'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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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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