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첫사랑 일기 [드라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글 입력 2018.12.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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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드라마 글을 작성하기 위해 최근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던 중 충격적인 소재의 드라마를 발견했다.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순애’라는 부제가 달린 <첫사랑 일기>(원제:中学聖日記)였다.


<첫사랑 일기>는 원작 만화 <중학성 일기>를 실사화한 드라마로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을 좋아하기 시작한 사춘기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선생님을 짝사랑한 제자를 다룬 영화, 드라마야 흔하나, 이 드라마에서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극 중 학생이 15세, 중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이었다. 열다섯 살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풋풋해야 했지만 선생님과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알고 나니 입안에서 거북하게 굴러다녔다.


곧 일본과 한국의 사회에서 나이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일본에서 15세는 한국 나이로는 17세이고 일본의 18세는 성인이라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그러나 미성숙한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는 선생님은 여전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과연 이 거북함을 안고 드라마를 본다면 마침내 주인공에게 공감할 수 있을지,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이 드라마가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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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의 중학교에 부임한 스에나가 히지리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교사가 되었고, 결혼을 앞둔 약혼자와 장거리 연애 중이다. 초보 교사 생활 속에서 히지리는 자신의 반 학생인 쿠로이와 아키라의 저돌적인 고백을 받는다.


아키라는 중학생답지 않은 외모와 사랑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을 가졌으나 어디까지나 15세 소년이다. 첫 만남부터 히지리에게 반해 의자에서 떨어지는가 하면, 본인도 다스리지 못하는 혼란한 마음에 히지리의 뺨을 때리고 후회하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행동과 말들은 그가 사춘기 소년임을 말한다. 그래놓고 상처받은 짐승처럼 “저를 싫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울부짖기도 하고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선생님도 저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앞뒤 재지 않고 뱉는다. 그리고 이 둘은 10살 차이.



사회적 신분


중학생과 교사의 사랑이라니, 징그럽다 생각한 게 언제인 양 어느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특히 ‘첫사랑 일기’라는 남자주인공 시점의 제목이 무색할 만큼 여자주인공인 히지리에게 이입했다. 결혼을 앞둔 상황에 오랜 꿈인 교사를 그만두고 내조하기를 강요하는 약혼자와 시댁, 그리고 내 편이 아닌 친정은 자존감을 갉아 먹었고, 반면에 자신을 그 자체로 좋아해 주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은 그녀를 흔들었다. 그저 어린 학생의 치기 어린 마음이라 생각하기도, 교사자격 박탈이란 자책을 하기도 수십번. 그러나 사랑은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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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진행되면서 히지리의 감정에 온전히 전염되었다. 그러다 문득 실제 이야기라고 가정해보았다. 먼저 중학교 선생으로, 중3 남학생에게 일말의 이성적 호감을 느낄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오”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성년자에게 애정을 느끼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아키라에게 연심을 품은 히지리를 이해하게 될까. 그건 솔직히 아키라를 연기한 오카다 켄시의 외모가 크게 기여한다. 중학생 외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마스크와 굵직한 목소리, 큰 덩치는 성인 남성 못지않다. 그런 아키라의 저돌적인 모습은 티비를 뚫고 나와 마음을 훔치기도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한 김에, 이 소년의 외모가 멋지지 않았다면? 그저 그 나이 또래처럼 시커먼 콧수염 난 평범한 남학생이라면? 과연 그에게 사랑을 느낄까, 역시나 “아니오”. 그러나 남학생의 외모가 아키라처럼 준수해 학생 같지 않다고 해도 소년은 소년이기에, 여전히 "아니오"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던가, 사랑이 전부인 낙관적인 모습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티가 난다. 사회적 금단을 거스르는 데에는 각오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사랑 하나로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선생님만 있으면, 사랑만 있으면 뭐가 됐든 좋다는 사춘기 소년보다 사회적인 위치와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사회인이 무조건 잃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극 중에서도 둘이 함께한 사랑 뒤에 히지리가 더 많은 걸 잃게 된다. 사회적 평판과 직업, 친정, 결혼, 희망 등등. 그나마 얻은 것은 복직한 교사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함뿐이다. 아무리 순수함을 두른 사랑도 현실 앞에선 멕을 못 추리는 법이다.

 



언어의 정원



<첫사랑 일기>은 <언어의 정원>과 닮은 점이 많다. <언어의 정원>는 남학생 다카오와 여교사 유키노가 비가 오는 날이면 기차역 부근의 정원에서 만남을 지속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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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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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일기


이 두 작품의 공통된 요소는 비와 시다. <언어의 정원>에서 유키노는 다카오와의 첫 만남에서 단가를 읊었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려주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 텐데.”


비가 내리면 만날 수 있으니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의 발화이다. 훗날 여름날의 장마가 그치고 다카오에게서 답가가 흘러나온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아도 당신이 붙잡아준다면, 나는 머무를 겁니다.”


비라는 핑계가 없어도 당신이 붙잡아주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첫사랑 일기>의 히지리는 수업시간에 시 하나를 알려준다. 비가 오는 날, 히지리가 알려준 그 시를 읊는 아키라에 모습에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시를 통해 공유한 서로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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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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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일기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두 작품은 닮았다. 쏟아지는 비와 함께 꾹꾹 눌러 온 원망과 사랑을 고백하는 다카오, 그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안긴 유키노. 쏟아지는 비를 피해 들어간 공간에서 여전한 마음을 고백하는 히지리, 그녀를 꼭 안는 아키라.


두 작품 모두 여교사와 남학생의 사랑이 공통적 주제이지만 현직 교사와 학생으로 모든 걸 알면서 시작한 관계인 <첫사랑 일기>에 비해 <언어의 정원>은 퇴직 교사라는 설정을 넣어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오는 거부감을 덜어냈다.




연상연하



<첫사랑 일기>가 금단의 사랑을 푸는 방법은 감성적이다. 급박하게 진행되지도 않고 자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는다. 극의 후반엔 남자주인공도 성인이 되어 미성년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양심에 걸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감성적으로 풀어가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이미 너무 진부한 선생님-제자 간의 사랑이 이 드라마에선 색다르게 다가온 이유는 단순했다. 선생님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히 든 ‘어라, 나이가 많은 쪽이 여자네?’라는 감상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커플의 나이 차이를 다루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게 했다. 대부분 미디어 속 나이 차 커플은 동등하게 설정되지 않는다. 이런 설정은 나이가 많은 쪽이 항상 남성이기 때문이다. 왜 나이 차 커플 속 많음을 담당하는 건 남자주인공이고, 여자주인공은 스무 살 언저리의 사회초년생일까? 물론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밀회>처럼 반대의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사례이다. 아직도 많은 드라마나 예능에서는 띠동갑을 넘어 삼촌과 조카뻘의 남녀가 맺어지고 그것을 권장하는 듯 굴고 있다. 나이 차이가 큰 커플이 유행하는 게 연륜의 매력 작용이라면, 성별 역할이 고정될 이유가 없다. 나이 많은 남배우와 어린 여배우만큼 나이 많은 여배우와 어린 남배우의 조합이 많아져야 그 이성적 끌림이 정당화된다.


연장 선상에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느낄 수 있듯 아저씨라는 단어의 어감은 어느새 로맨틱해져 있다. 그러나 드라마, 영화 어디에도 나이든 여성을 로맨틱하게 표현하진 않는다. 더불어 더 이상 꾸미지 않는 늙음을 내포하는 ‘아줌마’는 모욕적인 비하의 의미로 쓰인다. 연상연하라는 명칭도 여자의 나이가 많고 남자의 나이가 더 적으면 주로 붙는다. 당연히 그 반대가 기본값이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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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아래에서 <첫사랑 일기>를 보고 낯섦을 느낀 것이다. 남녀의 위치가 뒤바뀐 것에서 온 생경한 느낌은 갈수록 설렘이 되었고 이 맛에 연하남을 외치는구나 생각했다. 선생과 제자라니, 충분히 거북할 수 있는 사랑이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만약 어느 순간, 문득 낭만적인 사랑이 그립다면 중학생이라는 충격을 이겨내고 드라마를 완주해보라. 당신은 순수로 무장한 소년의 사랑에 이성과 감성 사이를 수천 번 오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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