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허풍으로 저장하는 기억_<빅 피쉬> [영화]

글 입력 2018.12.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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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요소가 다수 있습니다.


수선화.jpg
 


“네 엄마에게 청혼할 때 미국 전역의 수선화를 가져와서 밭을 만들었단다.”


“네가 태어날 때 팔뚝만 한 메기가 아빠 결혼반지를 삼켰던 것 있지? 다시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빠 친구 중에 일반 사람들보다 몇십 배는 큰 거인이 있었어.“



어릴 적, 아들 윌은 아버지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성인으로 자라 기자가 된 윌은 이제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의 허풍을 듣는 것이 지겹고 진실이 무엇인지, 즉 원래의 사실(fact)이 궁금하다. 윌이 사실을 추구하는 기자가 된 것도 아버지의 계속된 허풍에 질려서일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윌은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허풍투성이 과거 이야기와 다시 마주한다.

 



허풍에 담긴 비유와 상징


 

‘허풍뿐인 듯한’ 아버지 에드워드의 이야기에서 그가 가장 소중히 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기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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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인 산드라를 처음 본 순간 모든 시간이 멈췄다. 첫눈에 반한 에드워드는 그에게로 다가간다. 모든 것이 멈춘 시간에서 이제 그와 아주 가까워졌다.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시간이 빨라졌다. 결국 그를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멈췄다니, 그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 멈춘 시간은 산드라를 처음 본 순간 에드워드가 느꼈던 감정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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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서커스에서 한눈에 반한 산드라를 만나기 위해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한 달에 한번 산드라의 정보를 받는 대가로 일하기로 서커스 단장과 계약했다. 몇 달 동안 산드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단장은 그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등의 가장 중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다. 불만이 생긴 에드워드는 이를 말하고자 단장의 숙소를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숙소에서 나온 것은 단장이 아닌 에드워드를 위협하는 늑대다. 그 광경을 본 한 서커스 단원은 눈물을 흘리며 늑대에게 총을 겨누고 쏜다. 그는 언제나 단장과 같이 다니던 단원이었다. 다행히도 에드워드가 단원을 막아 늑대는 총을 맞지 않았다. 오히려 에드워드는 늑대를 마치 강아지와 놀듯 달랬다. 다음 날 아침, 늑대인 줄 알았던 존재는 바로 단장이었다.

 

아마 이 장면에서 나오는 늑대는 진짜 늑대가 아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리처드 파커가 진짜 호랑이었을 수도 있지만, 주인공 파이의 무의식에 있는 폭력적 성향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빅 피쉬> 속 늑대는 그 동안 단원들을 억압했던 단장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불만에 대해 토로하는 에드워드를 분명 죽일 듯 몰아붙였을 것이다. 보다 못한 단원이 총을 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을 겨눈 단원은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닐까? 억압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감정과 단장에 대한 정 등이 눈물에 함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원들의 감정에 알게 된 단장이 아침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짜와 진짜,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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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의 기억이 일생동안 마냥 판타지였던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와 중년이었을 때 유령 마을에 대한 묘사가 다른 것에서 그를 알 수 있다. 에드워드가 젊었을 때 유령 마을은 동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온 마을이 잔디로 깔려있어 맨발로 다닐 수 있었고 언제나 마을 잔치가 열렸을 정도로 흥겨운 곳이었다.

 

젊었을 때의 기억이기에 지나치게 과장되고 환상적으로 기억이 남았을 수 있다. 그러나 거의 20년이 지난 뒤의 유령 마을은 지독히 현실이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허덕였고 과거의 인심은 모두 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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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기억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까. 에드워드는 마을의 모든 집을 사들이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주민들을 도와준다. 사실 젊었을 때의 기억 그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마을은 예전처럼 평화롭게 돌아갔지만, 차도가 생겨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맨발로 모두 걸어 다녔던 공간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모험심이 강했던 에드워드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환상과 현실을 타협한 것처럼 보였다. 윌은 에드워드가 환상 속에서만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에드워드는 꽤 현실과 타협한 환상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들을 과장하고 상징화해서 보여준다. 그의 경험 속 허풍 정도는 그것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그와 더불어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기억들은 왜곡되고 재창조된 것임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에드워드의 젊었을 적 유령 마을처럼 말이다.

 

유치원 학예회 때 치어리더 무대를 했었다. 그동안 나는 남자아이 두명이 만든 가마에 올라탄 내 친구가 무대의 센터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중심인 것이 부러웠다. 성인이 된 후 그때의 비디오를 오랜만에 틀었다. 이럴 수가, 내가 센터에서 열심히 추고 있잖아! 그리고 그 친구는 사이드에 있었네? 그동안 내 기억은 왜곡된 것이었다. 친구의 색다른 엔딩 포즈가 부러웠던 어렸을 적의 나. 그런 내가 만들었던 또 다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동안 왜곡하고 재창조한 기억 속에서 회상하고 추억하고 있었다.

 



끝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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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에드워드는 병원에서 곧 임종을 맞이한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이미 마녀의 유리 눈을 통해 보았다고 말하던 에드워드였다. 그런데 진짜 죽음이 다가오자 에드워드는 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윌은 아버지가 원하던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알려준다.
 

윌은 에드워드를 호수로 데려간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그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만나고 인사한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축하하고 응원한다. 물로 돌아가 물고기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산드라는 그에게 키스한다. 물 속 에드워드는 이제 ‘빅 피쉬’가 될 것이다. 윌의 이야기가 끝나고 에드워드는 정말 멋진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윌의 상상과 달리, 평소의 그의 말과 달리, 에드워드는 병원 침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에드워드가 사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이다. 그가 정말로 죽음을 알았다면 <빅 피쉬>는 그저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죽을지 안다는 말했던 허풍과 정반대의 현실이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다. 아마 에드워드 또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고 자신감이 사라졌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끝을 안다면 그렇게까지 불안해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에드워드는 죽음, 즉 자신의 끝은 자기가 안다고 자부하면서 인생에 대한 초조함을 이겨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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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서로의 죽음이 어떠할지 알 수 없다. 에드워드처럼 우리는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을 재창조하고 과장하여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fact보다 가장 잊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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