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곰 [도서]

몸부림을 쳐도 결국은 작은 곰
글 입력 2018.12.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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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살고자 한 것뿐인데, 왜 이리도 힘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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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집었다.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펜으로 선을 하나하나 그은 듯한 표지는 그림이 가져다주는 음각 효과 때문인지 곰의 깊게 패인 눈매를 더욱 슬퍼보이게 만든다. '어른들을 위한 잔혹 우화'. 띠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책, 왠지 첫 장을 열기가 두려워졌다. 읽고 나면 엄청난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올 듯한 기분이랄까...



눈앞에서 어미를 잃었다.

작은 곰에겐 어미가 있었다. 작은 곰과 함께 낳았던 또 다른 아기 곰을 잃은 어미, 그렇기에 작은 곰을 더더욱 끔찍히 아끼는 어미. 어미곰은 밀렵꾼이 많이 나오는 지역임을 알면서도 작은 곰에게 싱싱하고 맛있는 생선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위험지역을 나선다. 그렇게 작은 곰과 함께 생선 사냥에 열중하던 도중 어미 곰은 밀렵꾼에 총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즉사한다. 작은 곰은 눈 앞에서 어미를 잃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바라본 어미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가, 어서 도망쳐.'


굳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미지를 향한 호기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동요는 커녕 앞으로 나아가자. 허기를 달랠 만한 것을 찾아 배를 채우고 반드시 살아남자. 생각할 뿐이었다.


작은 곰은 의외로 의연했다. 감정에 동요되어 걸음을 지체하다가는 자신 또한 사냥꾼의 먹잇감이 될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삶과 죽음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짜 놓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무결한 자연의 이치이기에, 살아 있는 한 그저 이끌리는 곳을 향해 걷기만 하면 된다. 그 후의 일은, 죽음은 그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미 곰의 죽음 또한 자신을 숲으로 이끌기 위한 운명의 한 단계였으리라.



어미 곰의 품 속에서 안전하게만 살아가던 작은 곰은 이제 혼자 숲을 배회하게 되었다. 번개를 치게 만든다는 위협적새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뿐이었다.



"바다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연히 만난 독수리가 말했다. 바다를 본 적도,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곰이건만 이상하게 바다라는 단어에 심장이 새차게 뛰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 마치 자신의 운명이 바다를 향해 이끄는 것만 같았다.


독수리는 불가능이라 했지만 작은 곰에게는 지금부터다. 마침내 온전히 혼자로서 바다를 향해 떠날 채비를 마친 것이다.



온전히 혼자. 작은 곰은 온전히 혼자였다.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곰에게 바다란 아마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켜 줄 오아시스와도 같은 곳이었으리라.



이것이 자연의 이치란 말인가!


약자인 새끼 뻐꾸기는 비슷한 처지의 약자인 막 부화하기 시작한 새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리고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자기보다 더 약한 것을 죽이고 살아남은 약자는 악이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란 말인가! 작은 곰은 뻐꾸기들의 세계를 몰랐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새끼를 밖으로 내모는 것은 작은 곰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분노한 작은 곰은 뻐꾸기 둥지에 올라선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뻐꾸기를 향해 가져다 댔다. 이렇게 악을 없애기 위한 악에 대한 살생이 시작됐다.



이 숲의 악을 모두 없애고 말겠다.


작은 곰은 죽였다. 뻔뻔하게 다른 다람쥐의 양식을 훔쳐가는 교활한 성격의 다람쥐를, 다른 거미를 죽이며 자신의 몸집을 키워가는 독거미를, 밤마다 시끄럽게 울면서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자신을 공격하려 드는 코요테를. 그는 악을 없앴다는 사명 아래 숲의 동물들을 죽여갔다.



네가 지나간 길에는 피비린내가 나니까.


어느 날 작은 곰은 쿠거 한 마리를 마주한다. ‘네가 지나간 길에는 피비린내가 나니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는 쿠거를. 쿠거는 분노하고 있었다. 작은 곰은 먹지도 않을 생쥐를 가지고 사냥 연습을 하고 있는 새끼 쿠거 두 마리를 죽인 적이 있었다. 작은 곰을 찾아온 쿠거는 새끼 쿠거들의 어미였다.


작은 곰도 어미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잃은 슬픔을 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곰은 쿠거의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텅 비어 있다.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인데, 그저 악을 없애고자 했을 뿐인데 자신이 숲 생태계를 교란시킨 악의 축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한 걸까…


나의 행동은 어미를 죽인 밀렵꾼의 행동과 다름이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작은 곰은 견딜 수 없었다. 사명감이 무엇인지, 악은 무엇인지, 애초에 선이란 것이, 악이란 것이 존재하긴 하는지. 곰은 이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을 설레게 했던 바다로 향했다. 흰곰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채.



몸부림을 쳐도 결국은 작은 곰


결국은 작은 곰이었다. 자신의 몸에 피비린내를 묻혀 가면서 생존을 꾀하면서도 모든 것이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살고자 했을 뿐인데 왜 이리도 힘드냐고 묻는, 한 마리의 작은 곰이었다. 두 시간이면 읽을 만한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그 여운은 짧지 않을 듯싶다. 원치 않게 혼자가 되어 버린 채 생존을 위해 강해져야 했던, 일찍 철 들어야 했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그런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어른동화, <작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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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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