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angle] Note.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글 입력 2018.12.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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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미루고 미뤄오던 작가 노트 정리를 오늘에야 시작했다. 나는 나를 정리해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무수한 생각 파편의 기록들을 정리한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져서 망설여온 건데, 내게 빈 공간을 내놓으니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가 노트보다는 고백에 가깝다.

나는 나를 처음으로 고백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를 정리했다. 나는 생각보다 더 정리되어있었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지점까지 이르렀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르렀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의 시작, 그 끝을 붙잡았고 나의 서투른 모든 비유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안의 ‘아무 이유 없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것 같다며, 마무리한 글들 앞에서 현실의 나와 타협을 하던 갈등을 온 마음과 온 머릿속에 답답하게 박아놓으며 새벽잠으로 회피하던 나의 시간들이 무색하게 나는 생각보다 멋진 완성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사실 오늘 나를 정리하며 내가 나를 이야기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나는 되게 잘 걸어오고 있었다. 하나의 길을 완성했다. 너무 감사했다. 기뻤다.


처음으로 나를. 오로지 나만으로 세웠다.


이 일기는 스물두 살의 시간을 걸어온 모든 모습의 나를 위해 남긴다.

수고했다 나야. 잘했다 나야. 너의 모든 감정과 고민들이 헛되지 않았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Last_Note Title.jpg
 


{Untangle}

Note.




[가장 끝에서]


매끈한 줄보다는 이곳저곳 흠집이 나고 실밥이 튀어나온 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칠고 이유 없이 예민하다. 꽁꽁 감추겠다면서 이리저리 튀어나온 실밥과 가시들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어설프게 모순되는 마음을 이뤄버린다. 여전히 오롯이 자신의 결을 쓰다듬지 못하는 한 사람의 지독한 머무름이다. {Untangle}은 그런 글들이다.


작품을 작가라는 세계의 실현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 세계와 작품의 성숙의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Untangle}은 그 이전의 것이다. 전혀 다듬어지지 못한 날 것의 덩어리다. 그게 어울린다. 아직 본인의 세계를 모르는 한 사람의 방황이고, 그걸 표현할 방법이(고작 아는 방법이) 일기밖에 없었던 것이고, 겨우 토해내고 싶을 때 손이 가던 게 그림이었던 사람이다. 예술? 작품? 아직 그 말을 곁에 두기에는 부끄럽기 그지없는 파편들의 나열이다. 그것이 {Untangle}이다. {Untangle}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모든 글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소우주라면 알게 모르게 그 주변의 궤도를 돌고 있던 행성들과 아무 이유 없이 떠돌아다니던 소행성을 우연히 잡아 끌어와 놓은 파편의 모음이다.


그렇다면 {Untangle}은 한 사람의 세계가 시작되어 실현되는 것이 아닌, 그 이전의 일종의 ‘혼돈’ 따위를 담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선가 ‘세계가 시작되기 전 혼돈’을 묘사할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검은 안개로 묘사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안개였다. 검은색이 아니라 회색. 그냥 좀 더 빛났으면 했다, 검은색보다는. 그렇다고 아주 눈부시지도 않은 회색이 좋았다. 너는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새까맣지도 않구나.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이 좋았다. 어떤 경계에 던져 놓기엔 애매한 그런 모습이 좋았다.


땅바닥 위 지독하게 고여있던 안개로서 나는 구름을 꿈꿨다. 그랬다. 저 마른 햇볕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며, 우연히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언젠가 생겨났다가 사라져버릴 덩어리인 구름을 꿈꿨다. 이유는 없다. 그저 꿈꿨다.


모든 걸 끝내고 바라본 {Untangle}이 드러내는 지난 모습은 그런 모습이었다. 


이 글을 마주해온 많은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완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완성되지 않은 ‘무엇’들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하지만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혹 무엇인가 들렸다면, 그럼 그런 것이다. 이루어졌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수증기 덩어리는 그렇게 모든 것을 흡수하게 둘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나조차도 함부로 손에 쥘 수 없는 습습한 덩어리. 이 말도 안 되는 일기가 한 공간에 공개되어 수많은 ‘무엇’들을 더 수집했었다는 것을 상상하니, 참 축복받은 안개라는 생각이 든다. 



*



내 구석 언저리를 맴돌던 이 덩어리는 뭔가를 발견한 듯하다. ‘발견’이라는 짧은 순간으로 치부돼버릴 시간을 아주 길게, 아주 천천히 늘어뜨린 게 바로 “여름빛 물”이다.


안개 속에 더 갇혀있기엔 내가 그만 눅눅해져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겨우 허공을 토하기 시작했고 그냥 죽기 전에 얼른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다. 맥락 없는 답답함이라는 감정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우울증이라는 파편과 우연히 발견한 공간이라는 소행성들의 충돌은 전혀 새로운 것을 낳았다. 그곳에 던져진 나는 나의 꿈인 ‘구름’을 발견했고, 나의 거울 같은 존재인 ‘바다의 수평선’을 발견했으며 끝내 ‘나’를 만났다. 아무것도 몰랐으나 그 아무것도 모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여름 이전에 아무렇지 않게 지난 시간에 남겨지고 흩어져 버린 수만 개의 그림자들이 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 그렇게 나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애매한 덩어리라는 안개가 끝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모든 나를. 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리고 아마 그 안개 혹은 구름이라는 내가 지닌 공간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창조해내는 것으로서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처음에 쏟아졌던 ‘질문’들은 여전히 현실의 내가 개입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이었다. 애초에 답이 없음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답이 있음을 믿으며 습관처럼 질문했다. 겉만 단단했던 질문 덩어리를 거둬보니 정말로 내게 남은 것은 ‘모호함’이었다. 아무것도 결론 내리지 않음, 밝고도 어두운 것, 존재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내 안에서 아무것도 아님으로써 나를 뜨겁게 위로하는 지점임을 나는 이해하고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작품 속에서 실현되는 나를 지켜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지점에 있다. 이는 나의 세계를 지어가는 하나의 큰 기둥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호함, 나는 요즘 그것을 사랑한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는 그것을 사랑한다. 그 안개는 비로소 존재들 사이의 가장 얇고 여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경계의 아슬한 그 끝에 설 수 있게 했다. 나는 그 지점에 머물기로 했다. {Untangle}을 매듭짓는 시점에 있는 나는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다. 손가락만 겨우 까닥하며 그것이 좋다고 머물고 있다.






<11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의 기록들>


: 조금 너에게 섭섭한 소리를 해볼까. 사실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바빠서 너의 글들을 살펴보지 못했어. 미안해. 너무 또 다른 내가 너와 겨우 마주했어. 이상해. 이번에 다시 너의 글을 만났을 땐 너무 다른 시간이 마주한 것 같아서. 너무 다른 나보다 너무 다른 시간이 선명해서. 뭐랄까, 사실 지금 내가 그 노란불이 된 기분이야. 이 노란불을 다시 내 위로 끌어다올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뭘까. 뭘까.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쏟아지는데 하나도 모르겠어. 그 가닥을 집어 들면 너는 마치 지금 알면 안 된다는 듯이 사라지더라. 그러곤 다시 내 머릿속에 쌓여. 우리의 관계는 참 신기해. 거울도 모를 거고 아마 알 수 없을 거야.


: 얼기설기. 아직 손 위에서 제 것을 굴리는 것마저 서투른 모습이 가득해. 시간에 쫓겨서, 그저 스스로가 부족해서, 아직 충분한 덩어리들을 쌓아오지 못해서. 어쩌면 할 수 있었던 이유보다 그래서 겨우 해보았던 이유가 더 많았을지도 몰라. 그래서 네게 말했잖아,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고.


“완벽하게 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

하지만 그래서 나는 나를 꿈꾸는 거야.


그래서 너는 모호한 바다와 수평선의 경계로 너를 나누었고

구상과 추상 사이에 걸터앉은 구름으로서 너를 말했고

그 전에 숨고 싶었던 마음이 가득했었는지 안개로서의 너를 지금까지 말해온 거야.

그래야 꿈꿀 수 있으니까.

사실 그렇게 꿈꿔왔으니까


그리고 아마 그런 것들을 물이 가득했던 이번 여름에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너는 항상 머뭇거리고 소심하고, 망설이기를 좋아해서 너에 대한 결론조차도 너무 조심스럽게 해왔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늘 그렇게 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길게 보냈던 거야.

사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싫었거든. 근데 그래서 너는 너만의 시간을 찾았어. 너의 시간. 너의 시간. 너만의 시간.


노란불.

을 처음으로 보았어.


앞으로는 하얀 구름이었으면 좋겠는데.

이 노트는 몇 달 후의 나에게 보내야겠네.


: 작가 노트가 뭔가를 설명하고 정해주었으면 좋겠으련만. 이것마저도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애매하게 나는 나란 맥락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요즘은 그 모호한 마음에 대해 읊어보려고 조금이라도 더 떠나고 있다. 나만의 시간. 너만의 시간. 미래 뒤에 갇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따스한 햇빛을 찾아서 떠나고 있다. 손에 쥘 수 있는 온기를 찾아가고 있다.


: "완벽하게 나를 이야기한다" 나는 완벽한가. 완벽할 수 있는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완벽하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는 덩어리에 대해서만 겨우 말해오고 있는 것일 뿐이다.


: 그래서 나는 나를 읊을 뿐이라고 결론 내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 모든 것이 모순으로 이어진다. 사실, 어쩌면 모든 것이 그렇지 않았던가.


: 그래서 나는 나를 눈에 겨우 보이는 수증기 덩어리라고 묘사한 것이다. 아마 당신은 나의 이야기로 나를 잡으려 해도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보일 것이다. 그뿐이다. 보일 뿐, 수평선 너머의 다른 나를 볼 수 있을 뿐 아무도 나를 움켜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작품들은 그러기를 원한다. 앞으로도.


: 무엇인지 보였다면. 그래 그것이 내가 기도하던 우연의 기적이다.


기적인데, 그뿐이다. 그뿐인데, 기적인 것이다. 


: 아, 이제야 내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겨우 조금 축축한 수증기 덩어리를 허공 삼아 쓰다듬는다. 그래봤자 이 덩어리는 뭉쳐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존재하지 않는 경계를 훑을 수 있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훑는 모습은, 적어도 내겐 그런 모습이었다. 


: 애매하다는 건 어쩌면 회의적이고 체념적이다. 부정적인 것인가. 아니, 그래도 되는 것이다.


: 나는 늘 그렇게 내 글과 겨우 그림을 이어가는 시간 속에서 위로받아왔다. 여기선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 나를 위한 글과 그림인가. 그렇다. 나를 날카롭게 쑤시는 것조차도, 글 속에서는 나를 위한 글이었다.


: 잠깐 기억이 났다. 글의 마지막으로 남겨 놓았던 편지를. 다행이다. 나는 세 달이 지난 지금도 나를 지켜내고 있었다. 다행이다. 고맙다. 수고했다. 앞으로도 놓여진 문들을 열어가야 한다. 야속하다. 이는 내가 머물고 싶은 순간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겠지. 다행이다. 머물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닫힌 과거의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






{Untangle}은 더 많은 시간을 지나면서 모든 경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적어도 내게는. 내가 가진 모든 틀을 조용히 녹여 없애버렸다. 9월까지만 표현된 덩어리들 이후에도 ‘나’라는 시간 속에서는 계속 이어져 왔다. {Untangle}과 ‘작품’이라는 말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조차 나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은 결국 ‘나의 이야기’뿐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다. 나는 지금까지 {Untangle}을 통해 당신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한 사람의 안개를, 그 겨우 표현된 어떤 것을 마주했을 뿐이다.


혹 누군가는 이 안개들로 무언가를 얻었다고 내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영역은 온전히 나의 손길이 닿는 곳이 아니다. 우연이라는 기적의 영역이다. 우연이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뿐이다. 기적인데, 그뿐이다. 그뿐인데 기적인 것이다. 이것을 본 이후로 나는 이 기적을 무심하게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식은 그러기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존재할 이유가 있음을, 그것을 감히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충분한 것임을 증명하는 공식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당신의 아무렇지 않고 어설픈 이야기들마저도 그래서 소중한 이유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누군가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고 충분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것을 이 끝에 와서 얻었다.


내가 {Untangle}이라는 안개를 지으며 결국 얻은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탄생한 덩어리에서 소원이라며, 나의 생일날 ‘특별함', 더 정확히는 ‘특별해지고 싶음’을 버렸던 나에게 비로소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할 수 있었다.


존재,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대로 나는 모든 존재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존재.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앞으로의 작품은 나도 참 모르겠다. 사실 또 다른 세계 하나를 짓다가 또다시 현실에 쫓겨오느라 미처 함께 데려오지 못했다. 아마 다가오는 겨울 동안 찬찬히 쓰다듬어보고 싶다. 모래알 하나라도 손바닥 위에서 알 수 없는 시침이 한 바퀴를 도는 동안 굴려보고 싶다. 나만의 시간은 늘 그래왔다.

-11월 어느 날



그렇다면 혼돈의 끝에 선 나의 세계는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겠다. 사실 그것이 내가 질문하고 있는 것들이다. 혼돈에서 벗어났다는 건, 어쩌면 지금의 내가 가진 착각일 수도 있다. 나는 또 다른 방황을 겪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처음으로 나만을 오롯이 세워보았다.

이는 부정할 수 없다.

마지막 소원에서 읊은 것처럼

나는 비로소 스스로 내가 내가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올 수 있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다.


아마 또 다른 방황을 겪는다면 이날의 고백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



갑자기 {Untangle}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비로소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Untangle}은 그런 덩어리다.

작품도, 글도, 그림도 아닌

어떤 틀에 가둬놓을 수 없는

어떤 덩어리로 남게 될 것이다.




-fin-







2.jpg
: 마지막 화 타이틀 이미지 구름 속 주인공의 본모습
+ 보잘것없는 이 덩어리가
마음 속에 오랜 기간 동안
계속 떠오르다가 기어코 그려냈다.
꼭, 가장 크게 솟아오른
삼각형이 박혀있어야 했다.
그리고 제멋대로여야 했다.



{Untangle}의 시작에서는 토해내는 감정이 정말 많았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스스로 아무 답을 가지지 못한 한 사람이 겨우 해방하고 싶어 토해내고, 쉼 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해결하지 못해 종이 위에 쏟아내는 시간이 기록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종이 위에 그러지는 선들이 겨우 내게 선명한 길이 된 것 마냥 의지하며 모호하고 모호한 것들을 꺼내 놓는 시간.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Untangle}을 하며 내가 하는 행동들을 통해 바라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했었다는 것, 그리고 단지 나만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방식이 그림 그리는 과정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이 두 가지다.


하지만 모호한 안개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조차도 선명하게 인식하지 못했으니 쉬지 않고 변하려는 ‘나’를 변하지 말라고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시에 모든 것의 정의가 바뀌기 시작했다. {Untangle}을 이루는 모든 것의 중심이 무엇이었는지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정의를 단순하게 그림인 것에서 나아가기 시작했지만, 이유를 좁은 그곳에만 두기에는 ‘나’는 너무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정의는 ‘나’를 이해하는 어떤 과정 자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바라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라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래서 {Untangle}은 작품의 세계 그 이전의 모습이 맥락 없이 뒤섞여 있던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침없이, 그 과정에 어울리게 덜 정리된 채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표면화가 아닌, 그 세계 자체가 무엇인지 찾아가기 위해 길부터 마련해야하는, 지독한 방황 같은 과정, 그것이 {Untangle}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이제서야 {Untangle}을 이해할 수 있는 시점에 서 있다. 어쩌면 처음에 쏟아지는 감정과 생각들을 어찌할 줄 몰라서 그런 상태 그대로 {Untangle} 무작정 시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단순한 나를 향한 “왜?”라는 말을 두고 이어진 몸부림이 이 끝에서는 그 질문조차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버린 것이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 말까지 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세상을 살고 있는 ‘나’가 아닌

나만이 존재할 때의 ‘나’에 대한 이야기로서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


3.jpg
: {Untangle} Episode 5. 일러스트 작업 과정
+ 복잡한 구성은 아직 어려울 때라
유독 오래 걸렸던 작업 중 하나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와
행복했다.

5.jpg
 : {Untangle} 여름빛 물 7월 4일의 꿈 작업 과정 일부
+ 구상하는 시점이
꿈을 꾼 시점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던 때였는데도
꿈 속에서 본 접시 위에 무엇이 몇 개씩 담겨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신기한 꿈이었다.
아마 빵 위에 굳은 설탕들은
아주 바삭바삭했을 것이다.
바삭바삭






+


안녕하세요 오예찬입니다.


작가노트마저도 완성된 내용만 보내려고 했었는데 그래도 제가 한 번쯤은 등장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아서,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최고니까 이렇게 처음으로 드러나 인사드려요. 작품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글인지, 일기인지, 그림인지, 글씨인지 도대체 맥락이 있는 것인지 애매한 {Untangle} 덩어리에서는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2018년 1월 17일이라는 제 생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라는 시간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순간을 이 글에서 가지고 있어요. 1년 내내 {Untangle}을 중심으로 두고 ‘나’를 두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과정을 폭풍처럼 지나왔어요. 이 과정 전체가 {Untangle}에서 모두 드러나지는 못했지만요. 사실 위의 작가노트마저도 지금의 저와는 꽤 많은 ‘시간’이라는 거리를 두고 있어요. 위의 노트에서는 그 이후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고 또 준비 중에 있답니다. 하나씩 느리게 정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잠시 벅찬 것들을 내려놓고 저의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휴학도 하고 좀 더 안정적인 곳인 본가로 이동하기로 했어요. 1년이라는 지독한 시간 끝에 만난 ‘나’를 놓치기도 싫고 그냥 보내기도 싫었으니까요.

4.jpg
: {Untangle} 위로정식2 일러스트 작업 과정
+ 어쩌면 레몬 조각이 주인공이다.
꿈에서 먹은 기억이 있는 레몬을 상상하며 그렸다
아마 지금껏 살며 먹던 레몬 중
가장
맛있었다.
(꿈에서 미각도 느끼는 편)
  

1.jpg
: 12월 23일 - 12월 30일 "해방" 연습작1 과정
+ 딱 12월 30일 오전 4시에 완성했다



{Untangle}은 정말로 '나'라는 세계의 이전 단계였음을 지금 시점에서 깨닫고 있어요. 준비하고 구상 중인 새로운 작업 두 가지 모두 {Untangle}에서 읊은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지금은 “해방”과 “숨 막힘”을 더 지어가기 위해 습작을 그리고 있고, 나를 가둔 시간에서 벗어나 내 손바닥 위에서 직접 능동적으로 지어가는 나만의 시간을 창조하려는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첫 번째의 것은 {Untangle}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어진 것으로, 두 번째의 것은 {Untangle}이 꿈꾸던 것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이 작업들이 저의 세계를 지어가는 시작점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원작_700ver.jpg
<해방_연습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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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은 12월 29일, 어쩌면 처음으로 가장 최근의 저를 {Untangle}에서 남기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이전에 정말 토하듯이 쓴 노트 내용들이 있는데 이 내용도 담을지는 아직은 고민되네요(결국 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해명하려는 내용들이거든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 맥락이 없는 것 같고 작품이 아니라 무슨 그냥 진짜 일기 같고 뚜렷하지 않고 대체 어떻게 전개되는 건지 모르겠고. 이를 좀 해명해보고 싶어서 속사포처럼 써 내려간 글들이 있어요. 이제 보니까 조금 바보 같은 거예요. 그래서 다 빼버리고 지금의 제가 다시 쓰고 있어요. 지금의 저는, 아주아주 끝에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게도, 1년 동안 잘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서 말한 이유들로 {Untangle}을 쓰면서 자주 죄책감과 회의감을 마주해야 했어요. ‘나’의 본모습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이를 드러낸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일 줄 몰랐어요. ‘나’만 남는다는 것이 가진 내용이 정말 예민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고 그래서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글을 올려야 하는 제 자신에게도 매일 밤 설득해야 했고요. 글은 완성된 지 몇 달인데 매 순간의 저는 나를 드러내는 데에 준비되지 못했던 순간을 처음으로 수십 번씩 마주했어요. 틀을 벗어난 이후에도 내게 남아있는 틀을 뜯어내는 데에 수많은 감정을 겪은 것 같아요.


생각보다 1년이라는 시간을, 그것도 제가 남겨온 수많은 것들과 함께 바라보려니 꽤나 벅찼나 봐요. 작가노트을 여러 번 옮겨쓰고 다듬는 시간을 가질 때마다 꽤 많이 울컥거린 것 같아요. 그래서 매번 코감기 걸린 척 했답니다. 지금도요. 킁킁. 아이러니하게도 얼음 잔뜩 띄운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요.



*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상상을 조금 풀어 놓고 짧고도 길었던 {Untangle}의 여정을 매듭지을까 해요. 문득 그런 상상이 들었어요. 어차피 성숙하지도 못한, 정리되지도 않은 나의 세계를 이곳에 공개하지 않고 나만 꽁꽁 감추어 보고 있었다면, 그래도 {Untangle}은 그대로였을까. 지금만큼이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런 상상. 사실 불과 몇 달 전의 제가 쓴 글마저도 앞서 말한 것처럼 올리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느껴지는 부끄러움들에 그런 상상도 했었거든요.


지금의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마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더해준 것만 같아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빛이 잔뜩 들어오는 창 하나를 둔다는 것은, 뭐랄까 여러 의미로 나를 더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게 해준 힘 혹은 또 하나의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어쩌면 무시무시한 덩어리와 만나는 공간에 어떤 창이 생긴 건, 어쩌면 아무도 몰랐을 기적이었을지도 몰라요. 서로 알 수 없는 빛을 받으면서 저도 그 빛에 대답하기 위해 꾸준히 질문하면서 나를 안아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이 글마저도 창을 통해 마주하고 있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나의 모습을 조금 더 알려주려 하는 몸부림으로 일어나고 있는걸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밖을 향해 어떤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고 있어요. 어쩌면 정말 이 끝에서 모든 의미가 정해지고 있어서 {Untangle} 끝에서 소소한 파티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기뻐요. 흩어진 폭죽 종이 한 조각마저도 아마 다음의 ‘나’ 어딘가에서 기억되고 있으리라 믿어요. {Untangle}을 통해 얻은 것이 그것이니까요.


꼭,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이 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주신 분들

몇 개만 드문드문 읽어본 분들

읽다 그만두셨던 분들

이 글을 처음 읽는 분들마저도요.


우연인데 기적일 뿐이고, 기적인데 우연인 것. 모든 순간들이 그런 것이니까요.

지금 저희가 마주하는 순간마저도 그런 모습일 테니까요.



*


여러 모습들로 {Untangle}이라는

제 안개를 구름으로 띄워 보내려는 몸짓을

작가노트까지 함께해 주셔서, 그리고

바라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Untangle}

스물두 번째 생일 ~





-end-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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