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에필로그. 사각지대에 대한 변명

글 입력 2018.12.3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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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과 무력감에 잠 못 드는 날이 있다. 흉흉한 세상을 전하는 뉴스를 접했을 때, 유독 그랬던 것 같다. 계속되는 혐오와 싸움, 살인까지. 분명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리고 나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이상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생각 들 때, 괜히 우울감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는 항상 영화가 있었다. 영화는 내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게 명확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이상적인 해답처럼 보였고, 변화는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내게 전달한 좋은 세상에 대한 메시지는 나로 하여금 희망을 꿈꾸게 했다. 그래서 이 느낌과 생각들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생겨났고, 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돼 있었다. 이제 막 연재를 시작했을 때 약간의 걱정은 있었지만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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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글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상적인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사각지대] 연재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런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실상 특정, 아니 대다수의 사각지대에 문외한인 내가, 말로만 '좋은 세상을 위한 해답(심지어 정답도 아닌)'을 외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된 주제는 물론 영화도 선택할 수 없었고, 글에는 침묵만 가득했다. 꾸역꾸역 글을 써서 제출할 때는 SNS에 한 줄의 변명이라도 덧붙여야 글을 쓰며 느꼈던 알 수 없는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됐다. 언젠가 글에서 소개했던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이자 이제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혜영 씨의 강연이었다.





여러분은 불행과 불평등의 차이를 아는가?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통해 바라봐야 하는 것은 불행이 아닌 불평등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세워놓고 '도와줘야'하는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나보다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의 부족함도 여기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바라볼 때 불행의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불행이 아닌, 그들이 직면한 불평등함이다. [사각지대]의 기획 의도 역시 사회적 약자의 불행을 들여다보고 도와야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사회적 불평등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사각지대]에 그들의 '불행'을 담았던 것 같다. 장혜영 작가가 청와대를 나오며 느꼈던 씁쓸함이 나의 글을 본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이었을까 봐 마음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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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 <귀를 기울이면>에서 주인공 시즈쿠는 이런 말을 한다. "저는 쓰고 나서 깨달았어요, 쓰고 싶은 마음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그리고 "좀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요"라고. 나 역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각지대] 마지막 글을 쓰면서야 깨닫는다. [사각지대]의 시작은 사각에 대한 단상이었다. 단상에서 더 나아가 고찰이 필요했는데. 섣부른 마음이 결국 [사각지대]의 끝을 변명으로 맺게 하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나의 글이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리는 통로가 됐다면, 그리고 그것이 당신 마음 한 켠에 쌓여 한 번이라도 사각지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면, 그래도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완벽하길 기대해선 안 되는 거란다." <귀를 기울이면>에서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시즈쿠에게 조언해준 것처럼 [사각지대]를 연재한 수많은 시간의 나에게 같은 말을 건네주고 싶다. 그리고 이를 발판삼아 한 단계 더 성장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벽하지 못했던 나의 글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 계기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2019년은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길, 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당신이 2019년에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2018년의 끝자락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그대들을 응원하겠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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