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기인형 - 결핍을 채우는 방법 [영화]

글 입력 2019.01.01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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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변해가는 세상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자기발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각자 자기 안에 다양한 것들을 채워 넣기 바쁘다. 잘 채워 넣다가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공허함에 아득해지다가 다시 채우기를 반복한다. 내가 쌓아온 것이 나를 설명하기 때문에 오늘도 분주하다.

‘공허함‘이라는 감정은 곧 아득함과 무의미를 가져온다.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놀다 들어온 집에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함.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홀로인 것 같은 공허함. 내 안이 텅 비어서 아무것도 아닌 공허함.

이 공허함을 메꾸려고 사람들은 노력하지만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공허해진다. 12월의 마지막, 왠지 허한 마음이 들 때 고레에다 감독의 ‘공기인형’ 영화가 생각난다. 결핍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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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공기인형과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 공기인형이란 말 그대로 공기를 주입한 인형이다. 이 공기인형은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조미라는 이름을 가진 인형은 오늘도 주인의 성욕을 해결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공기인형은 움직이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조미가 집에서 나와 제일 먼저 보는 광경은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는 청소부 아저씨다. 그는 재활용과 소각용 쓰레기를 재빨리 분리하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간다. 모든 게 신기한 노조미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DVD 가게를 들어가고 가게에서 일하는 준이치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직원을 모집하고 있던 가게에서 노조미는 일을 시작하고 그녀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아침에 주인이 나간 뒤 DVD 가게에 출근하고, 주인이 마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 인형인 삶을 산다.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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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음이 생긴 후, 그 마음에 준이치를 담았다. 마음이 생긴다는 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텅 빈 마음에 그 사람을 담았지만, 상대방에게는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준이치와 하는 나들이는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도 잠시 그녀는 자신이 남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자에 비친 텅 빈 자신의 모습에 그녀도 준이치와 같은 꽉 찬 그림자를 갖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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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미는 자신과 비슷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빈 병이나 투명한 구슬, 투명한 보석 등 안이 텅 비어 하얗게 보이는 것들 위주다.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걸 모으면서 존재의 의미를 생각한다.



공기와 인간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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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미는 아침마다 공기펌프로 공기를 넣어 나갈 준비를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못에 팔이 걸려 찢어졌고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 움직이지 못한다. 공기가 다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준이치는 응급처치로 테이프를 붙이고 공기구멍을 찾아 직접 숨을 불어 넣어준다.

준이치가 숨을 불어넣어 주면서 깨닫는다. 공기 말고도 사람의 숨을 불어넣으면 된다는 것을. 자기 안에 무엇을 채워 넣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노조미는 준이치의 숨이 자신 안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꽉 찬 기분을 느낀다. 그녀는 그날 이후 공기펌프를 버렸다. 자신의 텅 빈 속을 언제나 채워줄,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해주는 준이치가 있기에. 그가 그녀의 존재 이유가 된다.



텅 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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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서 아무것도 넣을 수 없는 사람과 텅 비어서 그 안을 채워 넣고 싶은 사람.

갑작스러운 준이치의 죽음으로 그녀는 혼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녀는 다시 옛 주인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또 다른 대용품인 신형 인형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조미는 대체 용품이 아닌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을 원했다. 남의 필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노조미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녀는 집 앞 쓰레기장 주위를 빈 병들로 장식한다. 그러곤 편하게 자리를 잡고 스스로 자신의 몸에 공기를 뺀다.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죽음.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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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말하기보다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카메라가 머무는 곳을 바라보다 보면 노조미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된다. 대사가 거의 없고 노조미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반이다. 내레이션은 마치 그녀 혼자의 삶을 보여준다. 그 속에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 주변의 이야기도 함께 보여준다.

‘인생은 독고다이다.’ 친구들과 대학교 때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무수히 많은 관계를 맺으며 얻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 역시 인생은 혼자 산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잦아진다. 그러나 항상 마침표를 맺는 쪽은 그래도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번 달 말에도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공유하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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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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