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유하는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글 입력 2019.01.02 00: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190101_035108406.jpg
 


연극이 진행되는 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에너지가 빨려가는 것만 같았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고 떳떳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올바르게 알아가기 위해 신청한 문화초대였지만, 정말 너무나도 감정소모가 심했던 3시간이었다.

 

연극은 3년 전 일어난 사고로 아내와 어린 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절필을 한 인기 소설가 한승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그를 쫓아다니는 의문의 상자를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꿈에 나타난 봄이의 부탁으로 어렵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역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병 선호의 수첩이 흘러간 승우의 소설을 통해 펼쳐진 것이다.

 

4.3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카투사가 되어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선호, 제주도의 동굴 속에 잠든 꼬마해녀 명이, 나무상자에 갇혀버린 전쟁고아 순이, 화가가 꿈이었던 조선족 중공군 호룡, 만주 위안소의 식모 막이, 시를 쓰는 의대생에서 인민군 군의관이 된 시자. 수첩의 여정이 끝에 다다르면서 승우는 또 한 명의 상자 속에 갇힌 이를 만나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연극이 진행되었던 CKL스테이지의 무대도 다른 연극들과는 달리 가운데의 무대를 관람객이 양옆으로 감싸고 있는 독특한 형태여서 연극이 더욱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렇기에 더욱 스스로가 당시의 현장에 있는 기분이 들어 몰입도가 높아졌고, 상황에 깊게 몰입하다보니 연극이 끝날 당시에는 에너지가 바닥이 되었다.

 

 

 

사유하는 연극



KakaoTalk_20190101_035129181.jpg
 


운이 좋게도 연극을 관람했던 날,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연극관람을 마친 후 30분 정도의 시간동안 감독, 배우들과 함께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던 관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질문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중 한 질문과 답이 기억에 남는다.

 

한 관객이 감독님께 이렇게 질문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연극은 무엇인가요?”라고 말이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억에 의하면 감독님은 이렇게 답했다. “좋은 연극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연극이 무엇인지로 답을 드릴게요. 저는 사유할 수 있는 연극을 좋아해요. 연극을 통해 관람객들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연극이요”라고 말이다.

 

사유할 수 있는 연극을 좋아하신다더니 정말 사유하는 연극을 만들어버렸다. 연극이 끝나고 같이 연극을 관람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연극이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어서 온 몸에 소름이 돌아”라고 말이다. 친구의 말처럼 연극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제주 4.3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그리고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사회의 시선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풀어낸다.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풀어내다보니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에 대한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 수 있을까. 스스로가 끔찍한 피해자이다 보니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잘먹고 잘사는 사람은 가해자라는 사실이 너무도 현실과 닮아 마음이 아팠다.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그 고통을 준 사람들은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부를 축적하여 호의호식하는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과연 이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만큼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배경은 2019년이 되었고, 한승우의 부인은 봄이를 새로 낳을 것이라 말한다. 아마 이 장면의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많은 일을 겪었다. 물론 더 많은 일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과 힘듦을 이겨내고 새로이 밝아오는 새해처럼 밝게 빛나기를 바란다.



[김태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