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선 최고의 힙플레이스, 금란방으로 오세요 [공연예술]

일탈과 축제의 장 금란방
글 입력 2019.01.0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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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시개장 음주권장 버라이어티. 홍보 문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왠지 모르게 고고한 이미지가 있는 예술의전당 로비로 EDM이 웅웅대며 울려 퍼졌고 티켓을 수령했더니 웬 클럽 팔찌를 함께 나누어 주었다. 파란색 조명이 번쩍이는 통로와 신 나게 몸을 흔들며 관객을 맞이하는 웨이터(?)들을 지나 입장한 극장에서는 로비까지 울리던 클럽 음악이 쿵쿵거렸다. 무대 위에도 객석이 있었고, EDM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는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금기를 넘어설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은 시작 전부터 공연의 수많은 틀을 깨버린다. 상상으로 그리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곳, 금기로 둘러싸인 일상을 살아가면서 축제와 일탈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조선 최고의 힙플레이스, ‘금란방’이다.




시놉시스



금란방은 금주령이 내려졌던 조선 후기, 엄격한 유교 문화 속에서 소외되어 온 여성들이 전기수 이자상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술 한 잔을 찾아 모여들던 축제와 일탈의 공간이다. 당대 최고의 전기수 이자상은 금란방을 찾은 사람들에게 당시 금기 중의 금기라고 여겨졌던 여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 ‘요세인연’을 들려준다.


한편 왕에게 책을 읽어주던 신하 김윤신은 당대 최고의 전기수 이자상에게 배움을 구하기 위해 딸의 장옷을 빌려 입고 이곳 금란방을 찾는데, 이 장옷 때문에 그와 그의 딸 매화, 몸종 영이, 매화의 정혼자 윤구연의 유쾌한 소동극이 벌어지게 된다.




일탈과 축제의 장, 금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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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겨내는

하지 말라는걸 하는
자신감이 생기는 바로 그 용기
날 이기는 바로 그 용기



조선시대 전형적인 사대부의 모습을 하고 있던 김윤신은 이자상에게 이야기 속 인물과 하나 되는 공감의 기술을 배우고, 서서히 그 자신을 깨부순다. 규칙만을 철저하게 따르던 그가 시대의 금기를 넘어가는 과정이 유독 통쾌하고 감동적인 이유는, 수많은 금기들로 촘촘히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그의 모습이 곧 ‘축제’의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의 축제를 통해 인물들은 단순히 통쾌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서 더 나아가 평소의 나 자신을 깨부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기도 한다. 사대부로서의 나 자신에 갇혀 여성의 역할을 폐쇄적으로 규정했던 김윤신이, 자존심을 버리고 여자 역할을 연기하면서 딸 매화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금란방은 흥겨운 넘버와 화려한 가무, 여기저기에서 익살맞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까지 이곳을 일탈과 축제의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등장인물들의 재기발랄한 소동극에 정신없이 웃고 신명나는 북소리에 즐거워하다보면 어느새 나 자신을 깨부술 용기가 솟구치는 것만 같은, 한낮의 축제 같은 극이다.




금기를 넘어설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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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방은 모든 ‘금기’가 허락되는 여인들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여인들은 술을 마시며 평소 남편에게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거나 이자상이 들려주는 여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 같은 것들을 듣는다. ‘금기’라는 거창한 어감에 비한다면 참 소박한 일들이다. 조선 시대 여성들에게 주어졌던 금기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금란방에서 여인들이 했던 이야기처럼 여인들에게 억압적으로 주어진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 술을 마시는 것, 여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과 같이 지금 생각해보면 의미 없고 불합리한 것들이 금기시된다.


이 실체 없는 금기들을 보며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수많은 금기는 시간이 지나면 불합리해질 허상이 아닐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억압이 아닐지 한 번쯤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한 번쯤 금기를 넘어설 용기가 가져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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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상은 ‘요세인연’에서 해후를 미래에서 온 인물로 설정하여 금기의 시간적 가변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해후는 사랑하는 여인 정희에게 미래에는 여자가 얼굴에 분을 바르지 않아도 되고, 여자와 여자가 사랑해도 된다고 말하며 두 사람을 억압하는 조선의 사람들을 피해 미래로 날아간다. 해후가 살았던 미래는, 아마도 지금보다는 조금 먼 미래였던 모양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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