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봇은 아니고, 편의점 '인간' [도서]

사회화의 두 얼굴
글 입력 2019.01.0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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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가? 간단한 질문이지만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사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신의 가치관이 주류라고 여겨진다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릴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상을 가졌다면, 그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만약 그것이 범죄에 가까운 생각이고, 실행에 옮겨진다면 법의 심판까지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졌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별 수없이 내버려 두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인물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적어도 책 <편의점 인간> 속에서는 그렇다. 사람들은 호시탐탐 주인공을 야단칠 기회를 노리고, 끌어내서 '고치려고'한다. 주류의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물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후루쿠라는(주인공) 나쁜 짓이라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그렇게 살아?’ 소리를 듣게 된 사람을 그리고 싶어 만든 인물”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주인공 후루쿠라는 결혼하지 않고 직장을 가지지 않은 30대 후반 여성이다.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동년배의 친구들이 결혼 육아 직장 중 하나 이상 가진 것과 달리 정체되어있는 그녀는 '왜 결혼하지 않아?', '왜 아직 아르바이트를 해?'라는 질문을 받는다. 정작 그녀는 편의점 일 외에는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욕구가 없는 데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솔직한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어한다. 결혼과 직장을 원하지 않는 것은 '보통 사람'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후루쿠라는 자신에게 '고쳐져서' 정상화되기를 강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보통 사람'에 맞춰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그녀에게 편의점은 알 수 없는 사회와 달리 확실하고 간단한 매뉴얼을 제공해준다. 그녀는 지금까지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지 배우지 못했지만, 편의점은 그녀에게 단순 명료한 가치 체계를 부여한다. 편의점은 친절하게도 손님에게 어떤 목소리 톤으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어떤 움직임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준다. 그래서 그녀는 편의점 점원이 되고서부터 자신은 '새로 태어났다'라고 생각한다.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는 주어진 매뉴얼 대로 움직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던 정확한 생활양식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후루쿠라는 이를 감사히 받아든다. 이 '매뉴얼'과 그 세계인 '편의점'은 후루쿠라에게 안정감과 자유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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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화의 폭력성



이 소설에서는 '사회화'의 폭력성이 느껴진다. 사회는 기준을 벗어난 주인공을 계속 질책하고 함부로 개조하려 한다. 똑같은 인생의 절차를 밟으라고 강요하고 거기서 벗어난 사람을 배제시켜버리는 세상은 디스토피아 같다. 학창시절의 나는 학교가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기준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것이 매우 비인간적이며 어떤 강요나 전체주의보다 악질적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의 통제권을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커다란 것에 빼앗기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를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욕구를 가지도록 만들려고 하는 그 어떤 것이 두려웠다. 이것은 그때의 내가 가진 사회화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회화라는 것이 그렇게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풍요로움'



편의점에 점원으로 소속되기 위해서는 똑같은 매뉴얼에 따라야 한다. '쓸모 있는' 점원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도 갈아치워지고 말 것이다. 사회에서도 우리는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를 쓰고는 한다. 그렇다면 유용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가 없는 걸까? 정말로 그렇다면 세상에는 자신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넘쳐서 자살률이 급증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실제의 세상은 그렇게 냉혹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만의 빛나는 가치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19년째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작가 무라타 사야카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배제되는 것이 현대사회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저 자신도, 제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저는 소설이나 일상에서 어떤 풍요로움을 받아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풍요로움을 저는 늘 믿고 있어요."


'사회'라는 것은 인간이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외부 세계와의 교류 없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군집을 이루어 살아간다. 그 집단 속에 살아가면서 인간은 삶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인간을 세상에 적응시키고 의미 있는 삶을 꾸려가도록 도와준다는 면을 '사회화'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와 반대로 사회 구성원을 획일화시키고 기계 부품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은 잘못된 사회화다.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는 모두를 같은 색깔로 물들이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고 공존할 수 있게 한다.




긍정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



​그리고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기준을 요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직원을 뽑을 때 회사는 공인된 외국어 실력과 실무 경험을 필요로 하고,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나 특별한 인성을 조건으로 삼을 수도 있다. 수많은 지원자 중 회사에 쓸모 있는 사람을 고른다. 많은 청년들이 회사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통스레 발버둥 치지만, 나는 이게 그리 잘못된 일이라고마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하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기술>에서 저자 유시민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하면서 존엄을 잃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확인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는 이런 유시민의 관점이 좋았다. 이것이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편의점 인간>에서의 편의점과 사회, 그리고 실제 사회에서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라는 주문은 같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 한 끗 차이로 의미는 정반대가 된다. 학창시절의 나는 <편의점 인간>같은 소설의 디스토피아적인 면에 매료되어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사회가 그렇게 잔혹하고 무서운 곳인 줄만 알았고, 사회에 던져지는 것이 매우 불안했다. 실제로 사회는 능력 없는 이에게 가차없고 잔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사회라는 것에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바에야 현실을 인정하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기쁨을 누리며 자신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삶을 능동적 혹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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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라고 외치고서는 편의점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편의점 직원이기 때문에 살아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편의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편의점 인간이 되기를 택한 것은 그녀 자신이다. 작가는 "그(편의점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 그녀의 행복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결말이 된 거죠"라고 후루쿠라의 선택을 설명한다. 편의점은 그녀에게 단순한 일터 이상의 의미다. 일반인과는 조금 다른 그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된다면 언젠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뿐인 후루쿠라도 더 이상 어떤 기분 나쁜 추궁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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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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