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토르트 인생 [문화 전반]

최대 효율의 청춘들
글 입력 2019.01.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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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를 받아야만 그것이 노동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밖에서 이리 저리 치이고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기는 건 새로운 노동이다. 밀린 빨랫감과 여기 저기 보이는 먼지들. 보기만 해도 한숨만 나오는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찾아 오는 건 어김없는 허기짐이다. 왜 사람은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지, 정직한 위장을 달래려 먹을 것을 찾아 보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선 또 다른 완벽한 노동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계란후라이에 밥을 먹는다 하더라도 쌀을 씻어 밥을 짓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찬장에서 후라이팬을 꺼내 계란을 깨서 뒤집개로 뒤집는 단순한 행위도 지친 내겐 피로하다. 결국 오늘도 집어 든 것은 3분 요리, 레토르트 식품이다.


레토르트 식품은 쉽게 말해 간편식이다. 이미 조리된 식품을 봉지에 넣어 밀봉한 뒤 고압 가열하여 멸균한 뒤 급속 냉각시킨 보존 식품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3분’이라는 빠른 시간을 강조한 상품이 많다. 현대인들은 보다 질 좋은 식품을 쉽고, 간편하게 먹고 싶어 한다. 더 이상 노동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구려는 먹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고급’ 레토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과거에는 오히려 대부분의 보존 식품들이 신선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 받았다. 직접 조리한 음식을 먹는 게 당연했고 오래 보존하는 것이 가능할수록 믿지 못할 무언가를 많이 넣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식품 회사들은 그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가 그 속에 신선한 재료를 직접 넣어야 하는 절차를 의도적으로 삽입했다. 핫케이크 가루에 물을 타는 것만으로도 그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이미 개발했는데도 식품 회사는 가루에 우유와 계란을 타야지 ‘신선한‘ 핫케이크를 만들 수 있음을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케이크를 먹으며 그들이 전보다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쉽게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갔다. 레토르트 식품의 부흥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2주 전에 만들어진 고급 함박 스테이크를 중탕으로 데우면 그것이 식당에서 만들어 내 놓는 음식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긴다. 비록 신선도는 떨어지더라도 적어도 맛만큼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대략적으로 우리가 아는 맛과는 유사할 것이다. 동일한 종류의 식품이기에 당연하다. 하지만 진짜 신선한 재료로 그 자리에서 만든 음식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음식은 고작 한 시간을 투자한다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멀리 나가 장을 봐서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그것을 손질해서 복잡한 레시피에 맞춰 정갈하게 담아 먹는 행위가 수반된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일련의 노동을 포기하고 잃은 것은 음식의 가치이다. 언제든 집 앞 편의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사서 데워 먹으면 되는 것들로 끼니를 때우는 그저 그런 일상. 그리고 그러한 일상이 당연한 청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그것이 내 인생을 대변한다.


지금 나의 인생은 최대 효율의 청춘을 보내고 있다. 가장 빠르고 쉬우며 맛까지 있지만 영양가는 없는 삶. 내게 주어진 것들을 하루하루 해 내기가 벅차서 원래 내가 무얼 하려 했는지조차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그래도 원래 목적했던 것과 비슷한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착각에 위안하며 한 번의 끼니를 해결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편의점에 놓인 수 많은 레토르트 식품의 모습은 이것이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님을 반증한다. 이 모두가 포기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한 번의 식사가 아니다. 밖에서 하는 노동과 달리 집 안에서의 노동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노동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가장 태초의 쾌락으로 요리는 그것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어떤 음식을 만들지 구상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그것을 한 데 섞어 음식의 형태로 만들고 설거지로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이 요리라는 노동이면서 동시에 극대화된 쾌락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남을 위한 노동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한 노동을 하나씩 줄여 나가면서 일상적이고 당연한 즐거움을 잊어 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솔직히 3분 카레든, 3시간에 걸쳐 만든 카레든 먹고 나면 다 똑 같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2시간의 시간을 위해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것이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는지 한 번쯤 고민해야 하지 않는가.



[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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