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8화: 특기는 ‘최선을 다했으나 말아먹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모든 사건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글 입력 2019.01.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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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원자: (극도의 긴장) 안녕하세요, 저는 지원번호 930번 박민재입니다. 취미는 '생각하는 척 멍때리기'이고요, 특기는 '최선을 다했으나 말아먹기'입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 ?
지원자: ??
면접관: ?????
지원자: ....!

제작지원 카페베네. 져 쉬 얼 마이 러브~




8화: 특기는 ‘최선을 다했으나 말아먹기’입니다.


난 열정이 체질인 사람이다. ‘해야겠다.’고 마음이 동하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뛰어들어 최선을 다해 버둥거리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과거에는 이런 내 화끈하면서도 당돌한 성격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러한 나의 행동실태가 다소 미련다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뿌린 대로 거둔다는 어른들의 옛말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x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컨닝을 하고 족보를 획득한 친구들 앞에서 열심히 공부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환승한 남자친구 앞에서 열심히 연애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뛰어난 재능과 오랜 짬밥으로 무장한 백만 대군 경쟁자들의 행렬에 열심히 공모전을 준비한 노력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24살의 새아침을 맞은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참으로 열심히도 살았지만 정작 손에 쥔 것은 그에 비례하지 않다는 사실에 차차 물들어오는 자신감의 하락과 싸우고 있다.

해서 요즘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섭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봤자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 몸을 사리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또다시 실망할 것이 두렵고, 최선을 다해온 그 시간을 비어버린 시간으로 무의식중에 인식하게 되는 것이 두렵다. 시작을 하고, 과정을 걸어가면서도 계속해서 끝이 어떻게 될지를 의식한다. 김연아 같은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새삼 느끼는 이유는 떨어졌을 때의 아픔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다시 뛰어 오르는 그들의 용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용기를 충분히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018년 12월 9일, 새의 비상을 보고

새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두려워하면
날아오를 수 있을까.

제목: 자세히 보면 새는 날아오르기 위해 잠시 떨어진다.
2018년 12월 9일의 기록

#시 #일기 #일상
#나 는 내 #최선 을 다한 #날갯짓 의 #끝 이 #떨어짐 일까 봐, 그게 항상 두려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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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네이버에 ‘첫사랑영화’라고 치면 <건축학개론>의 뒤를 이어 바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로맨스 영화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유치한 장난기 안에 인생의 진리가 녹아 들어가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잘생긴 양아치 커징텅은 그를 남몰래 좋아하는 예쁜 모범생 션자이에게 공부하라는 물매와 함께 파란 잉크 세례를 받다가 어느 날 문득, 묻는다.

* 다음의 대사는 저술자의 기억에 의해 다소 변형되었음을 밝힙니다.

커징텅: (비꼬며) 공부 왜 하냐? 장담하는데, 10년 후에 로그가 뭔지 몰라도 난 잘만 살 거야.
션자이: 음……. 그럴 수도! (사실 안 믿음)
커징텅: (짜증) 못 믿냐?
션자이: 믿어! (여전히 안 믿음)
커징텅: 그런데도 죽자고 공부는 왜 하냐?
션자이: 열심히 해도 아무 소득 없는 거, 원래 그게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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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던 커징텅은 약 10년 후, 비록 방법이 미숙했을지라도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션자이가 결국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열심히 해도 아무 소득 없는 거. 원래 그게 인생이었다. 그리고 커징텅은 그녀의 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자신의 말을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모든 사건에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비록 션자이를 향한 커징텅의 순정은 결혼이라는, 사랑의 결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 결과 맺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허탕 친 과거는 그녀와 잠시나마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빛이 난다.

내 인생은 최선을 다한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이것을 굳이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 헛발질의 시간들이 그저 공중으로 분해되어버린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다시금 느낀다. 원서 전략을 잘못 짜 비슷한 성적대의 다른 친구들보다 소위 ‘낮은’ 대학을 간 덕에 대학 간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몸소 알게 되었다. 만약 내 점수대에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잘’ 갔더라면 나보다 소위 ‘낮은’ 대학의 친구들을 그저 노력부족이라고 간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들에게 욕먹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연애의 실패 덕에 연애를 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단히 써온 이런저런 시나리오와 단편소설들은 분명 작품을 논리적으로 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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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희대의 X소리가 맞다. 하지만 모든 뿌림의 행위에 각자만의 의미가 있는 것은 명백하며, 그 의미는 본인이 부여하기 나름이다. 비록 노력을 시작하면서부터 꿈꿔 왔던 ‘예상된’ 성과는 얻지 못했을 지라도, 잘 찾아보면 과정에서 얻어진 ‘예상치 못한’ 성과가 이미 내 손에 들려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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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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