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열정으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4 잭슨 폴록과 페기 구겐하임
글 입력 2019.01.05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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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너무 유명해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특유의 산만하고 너저분(?)한 느낌에 정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예술가’로서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흔히들 상상하는 천재 예술가에 대한 모든 편견과 전형을 고루 갖춘 인물이다. 우선, 폴록은 매우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세상의 모든 진중하고 젠틀한 예술가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자신의 후원자의 집 벽난로에 소변을 보는 대범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으며, 우울증에 시달렸고 급기야 음주 운전으로 44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폴록의 삶은 아마도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함께한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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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Pollock, Autumn Rhythm(Number 30), 1950
 


거칠게 타오르는 불꽃같았던 삶은 작품 속에도 그대로 녹아들어가, 산만함 속에 끓어오르는 역동성과 에너지를 지닌 그의 대표작 추상화는 누구라도 잠시 홀린 듯 바라보게 만든다. 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특이한 기법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액션 페인팅은 이젤 위에 캔버스를 올려두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두고 그 위에 물감을 뿌리는 방식이다. 따라서 위아래 구분이 없는 올오버(all-over) 페인팅이 된다. 물감과 캔버스의 자유롭고 우연적인 만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형상이 마치 주인의 삶의 태도와 방식, 심리와 성격 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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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나무스, 가을 리듬(Autumn Rhythm)을 그리고 있는 잭슨 폴록, 1950.

 


특히 액션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는 폴록의 모습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이라 그는 사진 한 장으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사진작가 한스 나무스가 찍은 사진 속에는 캔버스 위를 돌아다니며 물감을 뿌리는 폴록의 모습이 멋지게 담겨 있는데, 사진 속 그는 진지하면서도 자유롭고 반항적인 에너지로 넘친다. 이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의 무게와 불행을 자유로운 예술혼으로 승화시키며 잠시 불꽃을 터뜨리다 떠나간 그는 천재 예술가라는 대중의 환상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인물이 있다. 바로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이다. 그는 여러모로 잭슨 폴록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런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유산을 예술작품을 구입하거나 작가를 후원하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에 쓴 20세기의 대표적인 컬렉터였다. 현대 미술이 역동하던 시기에 런던, 파리, 뉴욕, 베네치아를 오가며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페기는 폴록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향유했지만 그 못지않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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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쿠시의 조각 옆의 페기 구겐하임

 


사람들이 페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들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이 바로 그의 남성편력인데,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수많은 예술가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와는 한때 부부 관계였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 화가 이브 탕기 등 연인이었던 이들도 많다. 아마도 페기에게 성과 사랑은 예술과 만나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따로 미술사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는 당대 유럽 아방가르드, 모던 아트의 최전방에 있었던 마르셀 뒤샹, 피에트 몬드리안과 같은 이들과 교류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안목과 지식을 흡수했다. 그래서 그가 런던과 파리, 뉴욕, 베네치아에서 운영한 갤러리에는 당대 대중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쟈코메티, 브랑쿠시와 같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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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과 함께

 


미술사에는 위대한 컬렉터가 많지만 대부분 작가나 작품의 유명세 뒤에 가려진 경우가 많다. 컬렉터가 컬렉터라는 직업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고, 소위 ‘스타’가 되기까지 하는 일 또한 거의 없다. 하지만 페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다룬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Peggy Guggenheim: Art Addict, 2015)>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물이 되려는 열망이 있었고, 이를 위해 예술을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직접 작품을 만들거나 미술사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재력과 안목으로 평생 예술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자 했다.


 


 


잭슨 폴록과 페기 구겐하임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예술에 대한 끓어 넘치는 열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페기는 폴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를 오랫동안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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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son Pollock, Mural, 1943.



목수 등의 노동일을 전전하던 무명의 화가 폴록은 페기의 갤러리에서 열린 젊은 작가전에 참가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페기는 폴록의 잠재력을 본 몬드리안의 충고를 듣고 그에게 자신의 집에 걸 거대한 벽화 작품을 의뢰하게 된다. 그 이후 페기는 폴록에게 매달 급료를 주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후원한다. 앞에서 폴록이 취해 후원자의 집 벽난로에 소변을 보는 짓을 저질렀다는 일화를 언급했었는데, 사실 그 후원자가 바로 페기였다. 그 사건이 있은 뒤에도 페기는 변함없이 폴록을 지원했다. 폴록은 페기의 후원을 받아 롱아일랜드에 스튜디오를 구하고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갔고, 그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와 같은 유명한 미술 비평가의 찬사를 받으며 미술계와 대중의 관심을 받자 페기의 명성도 더욱 높아졌다. 폴록은 페기에게, 페기는 폴록에게, 서로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던 것이다. 페기는 후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가 바로 폴록을 발견한 것이라고 회고한다.


 


 


무언가에 열정을 바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늘 에너지와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말하라 하면 나는 가장 먼저 폴록과 페기를 떠올린다. 예술을 사랑하고 그것에 몸 바친 이들은 지금껏 수도 없이 많았지만 폴록과 페기는 유독 낭만적인 열정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활동했던 1920-1960년대 시기 자체가 미술사에서는 특히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 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오는 그 역동의 시기의 중심에 바로 폴록과 페기가 있었고, 그 시대 또한 그들을 필요로 했다. 전후 미국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 이미지 메이킹에 잭슨 폴록이라는 반항적인 아이콘이 적격이었고, 페기 또한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동시에 미국을 대표하는 폴록을 발굴하여 미국을 유럽 못지않게 예술적인 국가로 풍요롭게 하는 데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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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과 잭슨 폴록, 폴록의 벽화 작품 앞에서

 


하지만 시대적인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영화 같은 삶과 그들이 남긴 작품, 컬렉션만으로도 그 열정은 오랜 세월 수많은 이에게 영감을 준다. 페기 구겐하임은 그의 전기 작가였던 재클린 웰드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재클린: 열정적인 삶이었다고 생각해요?

페기: 그럼요. 예술과 사랑이 전부였어요.


 

인생의 끝자락에서 누가 감히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시 곱씹어 보아도 너무나 멋진 말이다.




참고자료

영화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Peggy Guggenheim: Art Addict, 2015)

천재 화가와 두 여인(1) 잭슨 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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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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