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여기, 내가 발 딛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도서]

도서 <작은 곰>: 작은 곰의 성장을 응원하며
글 입력 2019.01.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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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조리함에 언제나 분노하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 쯤이 그러한 시기였다. 뉴스와 사회적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보면서 파렴치한 가해자의 행태에 분노했고,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 세상에 더욱 분노했다. 그 때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용기 있게 비춰내는 이야기가 가장 고차원적인 이야기라는 생각도 했었다. 해서 내가 가장 처음으로 참여한 단편영화 역시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노동력 착취’를 고발하는 작품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꽤 예민했고, 꽤 뜨거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난 20대 중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데미안>을 통해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동안 사회에서는 때만 되면 지치지도 않고 고개를 내미는 봄의 새싹마냥 하나의 악이 채 해결되기도 전에 새로운 악이 등장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리고 나에게 닥쳐온 꼬리에 꼬리를 문 잔인한 현실들을 마주하며 어느새 나는 악의 존재에 꽤 담담하게 되었다. 분노를 느끼긴 느끼되 악을 깡그리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정도까지는 마치지 못한다. 뽑으려고 해봤자 어차피 완전히 뽑아내지는 못함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세상과의 슬프고도 비겁한 타협을 하나씩 해나가며 그렇게 점차 어른이라는 가면을 쓰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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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은 밀렵꾼들의 총알에 어미 곰을 잃고 급작스럽게 혼자가 된다. 이제 삶의 무게를 온전히 그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숲에 들어선 작은 곰에게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원숭이는 그의 나약함을 비웃었고, 개미핥기는 그의 나약함을 향해 괜한 시비를 걸었으며, 너구리는 그의 나약함을 이용하려 한다. 작은 곰은 점점 지쳐간다.

하지만 아무리 작을지라도 분명 곰은 곰이었다. 사나운 맹수, 먹이사슬 맨 위의 존재, 바로 그 ‘곰’ 말이다. 작은 곰은 자신의 힘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숲의 이곳저곳에 흩뿌려져있는 악을 제거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다. 해서 이기적인 새끼 뻐꾸기를 죽이고, 얄궂은 거미를 죽이며, 약자를 농락하는 새끼 쿠거들을 죽인다.

그러나 숲은 작은 곰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작은 곰이 제거한 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죄 없는 누군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과 악의 복잡성에 대한 작은 곰의 혼란은 어미 쿠거와의 목숨을 건 치열한 사투에서 정점에 이른다. 작은 곰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그는 너무나 지쳤다.


쿠거의 송곳니에 찔린 앞발 또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곰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결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명 따위는 잊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 있을 바다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 p. 86


많은 이야기의 끝에서 주인공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용기를 내어 사랑을 이루고 우정을 되찾으며, 역경을 이겨낸다. 편견을 깨트리고 정의를 되찾으며 꿈을 이룬다. 작은 곰도 마찬가지로 변화했다. 선과 악을 뿌리 뽑기를 중단하고 그저 그의 꿈인 바다를 쫓아갔으니 말이다. 다만 위에 나열된 것들이 밝음을 향해 뻗어나는 ‘위’를 향한 성장이라면, 작은 곰의 성장은 어둠을 삼키며 이뤄내는 ‘아래’를 향한 성장이다. 전자가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성장이라면, 후자는 다소 불쾌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성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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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의 행보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를 연상시킨다. 미처 악이 사라지지 않은 숲을 뒤로 남겨두고 바다로 떠나가는 작은 곰의 모습은 담벼락에 새겨진 외설스러운 낙서들을 지워보려고 애쓰다가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 이 같은 낙서가 새겨져 있을 것임을 깨닫고 마침내 지우기를 그만두는 홀든의 모습과 닮아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두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속 홀든 콜필드는 마침내 정신병원에 들어가 본인의 트라우마를 우선적으로 치료하게 된다. 작은 곰 역시 고래의 등에 올라타 바다 너머를 향해 가며 마침내 꿈을 이뤄낸다. 이들이 결국 악에 굴복한 것일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논리로서 악의 필연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 난 이러한 생각을 한다. 다음 세대에게 더욱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사회에 퍼져있는 악을 모조리 뽑아내겠다는 욕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나의 오만일 것이다. 나와 다음 세대를 위해 조금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우선 가장 가까운 곳부터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여기, 이곳에서 최선과 진심을 다해 살아내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악과 타협하지 않는 것. 해서 내가 잠시 머물렀다 간 이 자리에 온 다음 세대가 내가 요구해야 했던 것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작은 용기가 결국 세상을 아주 조금씩 괜찮게 만들어가는 것 아닐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분노가 아니라 그 작은 용기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악을 뒤로 하고 우선 본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 작은 곰과 홀든의 마지막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의 선택은 전혀 비겁하지 않다. 오히려 진정 유의미한 걸음이며, 힘들기에 그만큼 건실한 성장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책의 맨 마지막장, 이곳저곳 찢긴 채 바다 앞에 서있는 작은 곰을, 할 수만 있다면 안아주고 싶었던 것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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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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