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켜나가기, 뮤지컬 <재생불량소년>

"지켜나갈래, 조금 아프지만 괜찮을 내 인생을"
글 입력 2019.01.0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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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저녁, 아주 추운 연말의 밤이었다. 한 해가 또 다시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대학로는 아주 붐볐다. 붐비는 연말분위기 속에서 나는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을 보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을 찾았다. 연말의 어느 주말을 보내는 방법으로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을 택한 이유는 이 공연이 내세우는 하나의 문구가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재생불량이 재생 불가능은 아니야”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기에 너무나 알맞은 문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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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서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이 어떤 뮤지컬인지 소개해야겠다. 이 작품은 공연제작사 아웃스포큰의 대표이자 작품을 기획한 강승구 프로듀서의 재생불량성 빈혈에 관한 실제 경험과 실제 환자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져, 2016 CJ 크리에이티브마인즈에 선정되어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었고 이번에는 김예림 작곡가와 허연정 연출, 김중원 작가가 합심하여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로 돌아왔다.



/시놉시스/


반석은 절친 승민의 기억 때문에 링에 오르지 못하는 천재 복서다. 사회에선 문제아로, 복싱계에선 게으른 천재로 점점 내리막을 걷던 도중 반석은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희귀병을 판정받고 무균실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백혈병 재발로 무균실에 오랫동안 있던 성균을 만나게 된다. 성균은 특유의 친화력과 긍정으로 반석에게 접근하지만 반석은 차갑게 성균을 밀어낼 뿐인데...





강해지고 싶어



반석은 수많은 싸움을 맞닥뜨린다. 링 위에서의 싸움, 병과의 싸움, 그리고 그 것을 버텨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성균이 처음 만난 반석은 이 모든 싸움을 ‘포기한’ 상태였다. 권투 글러브를 보고 화를 내고, 승민의 기억에 발버둥치고, 병원 생활에 커다란 의지가 없는. 관객인 나에게 처음 비춰졌던 반석의 모습은 성균의 말대로 ‘새빨간 분노’였다. 어디에도 부딪히지 못하고 혼자 잔뜩 화만 나있었다. 그런 반석의 모습에 문득 이 뮤지컬의 이름이 떠올랐다. 재생불량소년. 저 아이구나, 싶었다.


그런 반석을 바꾼 사람은 다름 아닌 같은 무균실 동지 성균이었다. 오랜 시간 백혈병을 앓아온 아이. 아픈 치료와 검사를 수없이 견뎌온 아이. 성균은 반석에게 복싱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한다. 자기 자신도 현재 복싱과 거리를 두고 있는 반석이지만, 성균의 진심어린 몇 마디에 반석은 쨉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기 시작한다. 반석의 마음을 바꾼 말은 거창한 연설이나 절절한 어필이 아니었다. 단순하고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말. 바로 “강해지고 싶어”였다.


그렇게 강해지고 싶어 꿈을 꾸고 싶어
나 지금은 너무 약하지만

나 지금은 여기에 있지만

난 언제나 꿈을 꾸지 날 향한 스포트라이트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나 그 날을 기다려

나 강해지고 싶어 지금은 조금 약하지만

강해지고 싶어 지금보다 아주 조금만 더


이 여섯 단어는 반석의 마음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푹 박혔던 모양이다. 공연을 다 보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넘버였다. 극 전체의 주제를 처음으로 일깨워주는 ‘의미’있는 넘버였기 때문이다. ‘강해지고 싶다’고 간절하게 외치는 성균의 해맑음은 반석에게 물들고, 극 전체에 물들고, 성균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물든다. 지금은 약할지라도, 조금 더 강해지고 말거라고, 꿈을 꾸고 말거라고 외치는 소년. <재생불량소년>은 그 소년의 의지로 활기차진다.


승민을 바라보고 살다가 좌표를 잃었던 반석은, 또 다시 성균이라는 좌표로 되살아난다. ‘우리 함께 링 위에서 만나자’ 그 마음은 ‘우리 함께 강해져서 이 무균실을 나가자’ 새로운 마음으로 삶을 되찾아준다. 거창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균실 메이트인 성균이 반석에게 와닿은 것. 그 것이 전부였다. 살게 하는 힘, 그 힘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얻을 수 있나 보다.




지켜나가기



결국 이 극은 링과 병실이라는 양극을 오가며 삶이라는 싸움을 끝까지 버텨보자고 외치는 극이다. 링에서 버텨서, 무균실에서 버텨서, 자기자신을 이기자고 부르짖는 극. 하지만 내게 '버티다'는 말은 조금 무서웠다. 도망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버틴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해내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말보다, 나는 ‘숨을 쉰다’는 넘버에서 나온 ‘지켜나간다’는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내 인생을 지켜나간다. 버틴다는 말과 비슷할진 몰라도 제법 더 괜찮은 설득이었다.


나 피하지 않고 부딪혀 볼거야 조금은 불량하지만

아직 나 너무 약하지만 아직 나 부족하지만

내 걱정과 두려움 내 자신에 맞서 나 지켜나갈래

조금 아프지만 괜찮을 내 인생을


반석도, 성균도, 그리고 이 극을 보고 있는 모든 관객도, 저마다 아프지만 괜찮을 인생을 지켜나가자는 설득. <재생불량소년>을 보기 전, 나는 기대평으로 다음과 같은 한 줄을 적었었다. ‘사실은 내리막이란 없고, 불량도 없으며, 오직 삶만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기대와 완벽히 맞아떨어지진 않았다. 반석의 트라우마, 반석의 슬럼프, 그리고 ‘불량’. 극은 이 모두를 단어로 뱉고 설명했다. 그러나 삶이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을 우리는 각자 지켜나간다는 것. 그 것 역시 빼먹지 않고 함께 외쳐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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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의 서사가 더 탄탄함에도 불구하고 반석이라는 캐릭터가 성균에 비해 인상적이지 않은 점, 넘버와 대사의 많은 부분이 의료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되고 있다는 점 등 아쉬움이 남은 작품이었지만, 이제 막 무대에 오른 작품인만큼 차차 보완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쉬움에 대한 긴 말은 접어두고 내게 와 닿은 부분들만을 리뷰에 담았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만큼 아쉬웠던 부분이 잘 보완되어 다시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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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불량소년
-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


일자 : 2018.12.23(일) ~ 2019.01.20(일)


시간
평일 20시
토 15시/19시
일, 공휴일 14시/18시
*
월, 1/1 공연없음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주최/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웃스포큰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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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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