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폰소 쿠아론이 과거를 보듬는 방법 - <로마> [영화]

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작업이 가지는 의미
글 입력 2019.01.07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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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에 성격이며 자존감, 타인을 대하는 자세까지 모두 형성되는 게 아니던가? 어린 시절 겪는 경험은 성인이 돼서 하는 경험보다 개인의 인생 전체에서 훨씬 큰 영향을 갖는다. 예술가에게 어린 시절은 어떨까? 예술품은 예술가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일 수밖엔 없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 알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쓸 수 있다.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가? 가장 먼저 떠올릴 방법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고, 이런 것에 영향을 받아 이렇게 자랐구나.'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유년기의 기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기억하길 바란듯하다. 그의 신작 <로마>는 1970년대 멕시코의 '로마'라는 지역에서 자라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회고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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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작업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린 시절의 그 사건, 사람, 장소가 다 합쳐져서 만들어 냈던 분위기와 내게 자연스럽게 깃들었던 감정. 그것이 차곡차곡 쌓이고 변형되어 '나'라는 인간을 만든다. 그야말로 자신의 원천. 이것을 재건하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확인하고 예전의 자신과 가족들을 보듬으며, 정리하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그는 영화를 “<로마>는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외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외국어로 여러 편의 영화를 연출했지만, 내 감성의 뿌리는 멕시코에 있다."라고 설명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숨김없이 사실적이다. 주인공인 클레오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가정부 일을 한다. 집안사람들은 그녀를 잘 대해주는 편이다. 클레오가 임신하자, 안주인 여자는 의사를 소개해주며 함께 병원에 가주고, 주인집 할머니는 함께 아기 침대를 고르러 간다. 클레오가 유산하자 그녀가 쉬는 날 기분전환을 하러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도 하는 둥, 주인집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이 클레오와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응급실에서 클레오의 풀네임과 나이, 고향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클레오가 누군가와 속내를 털어놓으며 깊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진정 그녀를 살아가게 하고 지지하게 해주는 관계는 그녀에게 없었다. 같은 집에 살며 서로 돕지만 그저 겉으로 베푸는 친절일 뿐이다.

영화는 이 집을 인종을 뛰어넘어 존중하는 관계를 가진 훌륭한 장소로 표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주인공을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로 그리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클레오는 아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기도 하고, 안주인에게 은혜를 입기도 하고, 질책 받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어떤 작품보다도 현실적이다. '당시의 차별적인 행태는 부당했다' 혹은 '주인공은 역경을 극복한 위대한 여인'같은 메세지를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게 만든다. 감독은 “현대의 유령이 과거로 돌아가 그 당시를 관찰하는 듯한 관점을 구현하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있었던 사실을 그저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이 영화는, 단어 하나로 나타낼 수가 없는, 당시에 있음으로써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감독은 "사운드를 잘 활용해 영화에 비친 시공간의 미묘한 느낌들을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관객에게 온전히 체험시키는 게 이 작품의 목표였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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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 말도 없이 집을 떠났고, 엄마는 홧김에 동생의 뺨을 내리치기도 했다. 가족 다 같이 신나는 바다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고, 할머니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면 언제나 흔쾌히 움직여주었다. 여름에 갔던 삼촌 댁에서는 파티 중에 산불이 나서 다 같이 화재를 진압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구성하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그저 즐거웠다거나 슬펐다고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은 묘한 분위기를 형성해서 당시의 내게 어떻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자아냈다. 거기서 나는 부정적이기도 긍정적이기도 한 영향을 받아서 남들과는 다른 특정한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절 겪은 모든 것은 지금의 나를 형성한 요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영화의 어떤 사소한 것도 섬세하게 느끼지 아니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를 나타내는 이 영화는 관객을 그렇게 가만히 몰입하게 만든다.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영화화한 것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부러웠다. 과거의 순간들은 예술가 자신에게 무한한 예술의 원천이다. 그 예술적 근원을 자신이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영화)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예술가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러운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며 개인에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었을 그 '어린 시절'을 스크린에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는 영화감독만의 특권이다.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로 영화로서 할 수 있는 기능을 다 발휘하는 듯하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 소중한 가정부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듬어 예술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관객의 마음마저 치유한다.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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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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