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The Story of My Life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1.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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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My life

-잊혀지는 것들에 대하여-



 

언젠가 친구가 어떤 영화 속 대사를 들려줬다.



사랑은 꼭 사과를 깎는 것과 같다. 껍질을 다 벗기고 나면 금방 상한다.

곧 노랗게 변하고, 냄새가 나고, 문드러져서 나중에는 누구도 그게 사과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 말에서 '사랑'을 '관계'로 바꿔도 꼭 맞아떨어진다며, '영원'에 대해 얘기했다. 세상에 영원한 게 있을까? 누군가는 세상에 영원한 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라는 말뿐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영원한 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꾸만 영원을 기대하고 헛된 희망을 품는다. 작년의 나는 오늘의 나와 너무 달라서 둘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내가 지겨워하는 어떤 것은 한때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으며, 오늘의 네 마음이 어제의 네 마음과 다를까 두려워한다.


친구와 나는 역시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영원을 믿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 특히 관계가 그렇다. 나 하나의 일관성도 모자라 타인이 엮여들면 그건 통제 불가능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무수한 관계를 만들고, 가꾸고, 부수고, 허문다. 스스로 망가트리기도, 파도에 의해 엉망이 되기도 하며, 또 어떤 관계는 이미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번에 보게 될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바로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6_강필석, 이창용.jpg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아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는 앨빈과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토마스. 대학 원서를 쓰다 글 문이 막혀버린 그는 앨빈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앨빈은 토마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토마스는 앨빈의 조언에 따라 마법처럼 글이 써진다. 대학에 입학한 토마스는 점점 세상에 물들어간다. 어린 티를 벗고 약혼한 애인도 있다. 하지만 앨빈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그리고 사차원적인 행동도 모두 어린 시절 그대로이다. 토마스에게 그런 앨빈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았고 점점 둘은 멀어져 간다. 토마스는 대학 졸업 뒤 많은 책을 내고 세상에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다. 그가 쓴 모든 글의 영감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앨빈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시놉시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작년에 나는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껴 번호를 바꾸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했다. 그 당시 나는 가깝게 지내던 10여 명의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중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메신저 리스트에서 내가 사라졌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관계란 말로 쌓아올린 첨탑이구나. 위태롭고 부실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씁쓸하게 고작 30명이 남은 휑한 친구 목록을 내려다봤다. 내가 저지른 짓이었지만 씁쓸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내게 정리된 사람 중 하나가 A였다. 중학교 때 우리는 꼭 붙어다니며 재밌는 것도 창피한 것도 무서운 것도 다 함께 했다. 같이 못된 짓을 저지르고 죄책감을 나눠가졌으며, 비밀을 공유하고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기도 했다. 그렇게 짓궂고 귀엽던 우리는 시간이 흐르며 어른이 되었고, 각자의 삶이 생겨났으며, 별 다른 계기 없이 서서히 멀어졌다. 의미 없는 안부만 드문드문 주고 받다가, 어쩌다 만나면 공통 화제가 없어 옛날 얘기만 늘어놓다 헤어지곤 했다. 싱그러운 빨강을 자랑하던 사과가 썩어 문드러지듯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처음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번호를 바꾸고 사라진지 며칠 뒤. 남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누나, A 누나가 나한테 누나 무슨 일 있냐는데?" 라며 A가 보낸 메시지를 나에게 보여줬다. 번호도 없어지고, 연락이 되질 않는데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A는 학창시절 주고받던 옛 이메일로도 편지를 썼다고 했다. 아이돌 영상이나 주고받던 그 오래된 이메일. 더 이상 쓰지 않는 그 이메일엔, 999개가 넘는 스팸 메일 속 A가 보낸 메일이 있었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걱정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나는 그 이메일을 확인할 때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었는데 청승맞게 눈물이 나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A와의 대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늘 옛날 얘기만 하게 된다는 게 마냥 싫을 일이 아니었다. 추억 역시 물건과 같아서 가끔씩 꺼내 먼지를 닦아주고 들여다봐주지 않으면 잊히고 짓무르게 된다. 갈변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사과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옛날 얘기는 역시 재밌다. 왜 그렇게 잊히지도 않는 웃긴 얘기가 많았는지. 끝없는 옛날 얘기와 몇 개의 시시껄렁한 가십과 교집합 없는 서로의 생활을 떠들다 집에 가는 길엔 마음에 빈틈이 없었다.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해서 6개월 뒤쯤에 다시 있을 A와의 만남이 기다려졌다. 자주는 못 보지만 오래 볼 수 있는 사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2_정동화, 송원근.jpg

 


끝없이 넓어지는 백사장 위를 큰 발로 성큼성큼 걸어나가다 보면, 어린 시절 세운 작은 모래성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어쩌다 뒤를 돌아보면 그곳엔 무수히 많은 성들이 있다. 나를 스치고 흔들고 멈춰 세운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소중했던, 하지만 지금은 잊힌 사람들. 발걸음의 속도가 다르고 향하는 곳이 달라 어느새 각자 다른 곳에 서있는 사람들. 하지만 잊어선 안 되는, 잊고 싶지 않은 사람. 그 친구.


누구나 그런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한때는 나를 흔들었지만, 지금은 그 소중함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바로 그 잊힌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하나의 시절이 저물고, 변해버린 나와 그 시절의 소중했던 친구. 이건 단지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앨빈이 될 수도, 토마스가 될 수도 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착한 뮤지컬이라는 호평을 들으며 벌써 5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사실 이미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작품이다. 2010년 처음 선을 보인 이 뮤지컬은 초연 이후 누적 관객 수 13만 명, 평균 객석 점유율 90% 이상, 관객 평점 9.6을 기록하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토마스와 앨빈 두 사람의 2인 극인만큼 배우의 역량이 더욱 중요한데, 캐스팅 라인업 역시 핫하다. 강필석, 송원근, 조성윤, 정동화, 이창용, 정원영이라는 특급 라인업에 피아노와 첼로, 클라리넷으로 구성된 밴드의 라이브 연주까지. 사랑스러운 동화 같은 연출에 독보적인 음악을 강점으로 하는 이 뮤지컬은 독특하게도 2인 극이다. 두 남자 주인공이 단 한 번의 퇴장 없이 무대를 이끌어간다는 것 역시 나에게는 생소한 형식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게다가 프로듀서 신춘수는 한국의 뮤지컬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지킬앤하이드>, <맨오브라만차>, <닥터지바고>, <스위니 토드>등 해외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여 우리에게 선보였으며, 한국 최초로 브로드웨이 리그 정회원 멤버가 되어 한국 프로듀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안 볼 수 없는 이 작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2019년 2월 17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캐스트공개.jpg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포스터_0919.jpg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 The Story of My Life -


일자 : 2018.11.27 ~ 2019.02.17

시간
화, 목, 금 8시
수 4시, 8시
토 3시, 7시
일, 공휴일 2시, 6시

*
월 공연 없음

장소 : 백암아트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제작
오디컴퍼니 주식회사
롯데엔터테인먼트

주관
오픈리뷰(주)

관람연령
8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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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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