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히말라야를 추억하다 [여행]

글 입력 2019.01.10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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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행지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여행 책이나 여행 방송을 볼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질문이다. 누구는 아무도 쉽게 경험하지 못했을 오지를 떠올리고, 또 다른 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낭만적인 도시를 꼽는다. 혹은 거창할 거 없이 그저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특별한 추억이 깃든 장소가 선택되기도 한다.

나도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답변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찬 공기 가득한 이맘때 즈음이면 항상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다. 세상의 지붕이자 자연의 풍요와 문명의 빈곤이 어우러진 곳, 바로 히말라야이다.


혹시라도 남몰래 품은 이름 하나가 있다면 히말라야에는 오지 말기를. 아름다운 것들 앞에서 더 간절해지는 이름이라면 히말라야는 끝끝내 피하기를. 바다의 물결이 달을 살찌우듯 안나푸르나는 당신의 그리움을 키우고 또 키워 마침내 울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 김남희 『슬픔도 소리 없이 언다는 설산으로 가는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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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나는 일 년의 휴학을 택했다. 졸업과 취업 후엔 다시는 갖지 못할 시간적 여유가 고팠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수영장을 갔고 도서관을 들른 후 영어회화학원을 갔다. 저녁엔 복싱을 배웠다. 꿈에 그리던 유럽 배낭여행도 이 시기에 경험했다. 배우고 싶으면 배웠고, 떠나고 싶으면 떠났다.

사실 처음부터 히말라야를 가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평생에 손꼽을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인도여행을 계획 중이었고, 겸사겸사 옆 나라인 네팔도 눈에 들어온 것뿐이었다. 대략적인 계획조차 없었다. 인도로 들어가 네팔에서 나오는 비행기 표만을 들고 그렇게 여행을 떠났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봉우리인 안나푸르나가 펼쳐져 보이는 포카라에서 오래된 가이드책 하나를 만났다. 그곳엔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실려 있었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로는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랑탕이 있다고 했다. 그 아래엔 각 장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세 곳의 장단점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된 표가 있었다. 풍경, 인프라, 난이도 등의 항목에 맞춰 각각 별점이 매겨져 있었다. 어느 곳을 갈지 고민하던 중 유독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호젓함"

그 세 글자가 나를 랑탕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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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혼자 지내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홀로 떠난 해외여행 첫날 밤, 다음 날 아침에 아는 이 하나 없는 먼 타지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가졌었다. 가족과 친구들보다 세 시간이나 늦게 새해를 맞이했을 때도 서늘한 쓸쓸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또다시 외로운 여정을 택한 건 왜였을까.

호젓함 별 다섯 개의 명성에 걸맞게 산길을 걷는 6~8시간 동안 단 한 사람의 얼굴도 만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새하얀 설산의 파노라마는 나를 둘러쌓았고, 깊숙한 랑탕의 계곡은 나를 고립했다. 광활한 공간을 홀로 만끽함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이내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리 멋진 풍경을 본들, 함께 나눌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그 감동을 백 퍼센트 공감해줄 이가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야속했다. 홀로 여행을 함으로써 함께 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재미있게도 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친한 친구와 유럽여행을 함께 떠났을 때, 나는 그와 항상 함께하길 바랐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시간 동안 따로 길을 걸었다. 숙소마저 따로 잡은 적도 있었다. 함께하려 할수록 혼자가 되고, 혼자 이려 할수록 함께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머리를 울렸다.

사람 얼굴조차 보기 힘든 한겨울의 랑탕 계곡에서 나는 고등학교 모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쓸쓸함을 쫒아 온 이곳에서 가장 익숙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남은 산행을 그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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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외로움에 지칠 때면 홀로 밖을 나선다. 지금같은 한기가 몸을 감쌀 때면 눈을 감고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를 상상한다. 순백의 공간 속에 홀로 서있던 나를 떠올린다.

난 히말라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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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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