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BS <더 팬> : 팬이라는 갈증 [기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예술가들을 위한 쇼
글 입력 2019.01.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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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더 팬> : 팬이라는 갈증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예술가들을 위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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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여전히 '오디션 공화국'이다. 오디션 프로의 열풍이 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부활하여 좀처럼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2009년 Mnet이 선보인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MBC <위대한 탄생>, SBS <케이팝 스타> 시리즈까지. 가히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시무시한 시청률에 엄청난 파급력. 서인국, 로이킴, 악동 뮤지션, 이하이, 정승환 등 오디션 프로를 통해 이름을 알린 스타들의 이름을 세다간 손가락만 아플 정도다. 뒤이어 우후죽순 온갖 오디션 프로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좀 잘 나간다 하는 스타들 중에 심사위원 명패를 안 가져본 연예인이 없을 정도.


공중파고 케이블이고 할 것 없이 오디션 프로를 찍어내니 시청자들은 슬슬 질린 얼굴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이 Mnet의 <프로듀스> 시리즈다. <프로듀스 101>의 성공 이후 이제는 여기저기서 '아이돌 만들기' 열풍이다. 어린 친구들의 꿈과 치기와 어리숙함과 치열함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사로잡기 충분했다. 유행에 발맞추듯 KBS에서는 10대 댄서를 발굴하는 <댄싱 하이>와 망한 아이돌을 재기시켜주는 <아이돌 리부팅: 더 유닛>을 내놓았고 MBC에서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는 <언더 나인틴>을 방영 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정말 지겹다!'라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SBS 역시 오디션 프로를 내놨다. 바로 <더 팬 (The Fan)>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조금 특이하다. 보아에 유희열이라는 얼굴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케이팝 스타>의 기운. 아니나 다를까 방송 전부터 <케이팝 스타>의 아류라는 비판을 잔뜩 받으며 누구의 기대도 받지 못하고 출범한 이 프로그램.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반응이 나쁘지 않다. 아니 엄청 재밌다. 7%대의 나쁘지 않은 시청률과 방송 직후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는 이름들을 보면 나만 재밌다고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디션 프로에 물리고 물려서 이제는 정말 그만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이제 하다 하다 서사를 팔고 눈물을 팔고 꿈을 파는 프로그램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이 프로그램. <더 팬>이 갖는 승부수는 아주 기가 막히다.




1. Focus on Music



고작 15명이다. 이 경쟁의 참가자는 15명이라는 아주 적은 숫자로 시작됐다. 다른 오디션 프로의 1라운드 참가자 수를 떠올려보며 턱없이 적은 숫자다. 가수가 되고 싶은 건지 예능인이 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태도의 연습생도, 어설픈 실력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열정만 있는 지망생도 이곳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더 팬의 무대는 자진해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의 추천을 받아야만 한다.


박정현, 악동뮤지션의 수현, 싸이먼 도미닉, 윤미래와 타이거 jk, 전현무, 거미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이 자신만 알고 있던, 혹은 자신이 먼저 발견한 스타들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알리는 자리가 1라운드의 무대다. 이미 누군가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들만이 오를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에, 1라운드부터 결승전의 냄새가 난다. 누구의 무대도 허술하지 않으며 어설프지 않다. 그들이 보여주는 잘 빠진 무대는 <더 팬>이 단순한 오디션 프로가 아닌, '음악' 프로그램으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더 팬>을 처음 알게된 것이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이 영상이었다. 타이거 jk와 윤미래 부부의 발견으로 <더 팬>의 무대에 오르게 된 비비는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커다란 무대에 서 본 적도 없는 아마추어다. 하지만 비비의 무대를 본 사람이라면 이 친구의 바이브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상 연예인의 포스를 뿜어대는 이 스무살의 신예는 당장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등장해도 어색함지 않을 것만 같다.


애초에 완성형의 실력을 갖춘 15명의 가수 (혹은 지망생)들은 이 프로를 통해 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무기를 곱게 갈아 매혹적인 얼굴로 우리의 코앞에 들이민다. 3분짜리의 잘 만든 무대를 꽉 채워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힙합 일렉트로닉 발라드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의 숨은 실력자들의 무대를 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더 팬>이 갖는 큰 매력이다. 음악에 집중하는 힘. 가수가 되기 위한 본질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첫 단추는 일단 "실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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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팬심을 자극하라


<더 팬>의 또 다른 차별점은 프로그램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팬'에 있다. 보아 유희열 이상민 김이나. 그들은 '더 팬'의 진행자이자 해설가이지만 결코 심사위원이 아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불리는 이름은 바로 <팬 마스터>. 이곳엔 슈퍼 패스도 없으며 심사위원 점수도 없다. 다만 프로 음악인으로서 무대에 대한 조언이나 감상을 말할 뿐이다. 그들은 방청객 300명 개개인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오직 한 표. 자신의 스타에게 응원을 보내는 수많은 팬 중 한 명이 될 뿐이다. 팬 마스터인 보아, 유희열, 이상민, 김이나는 기꺼이 자신들의 최애 (최고로 애정하는 사람)를 밝히고 사심을 표한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오늘의 무대는 별로였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의 팬입니다"라고. 심사위원처럼 앉아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모순적인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프로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팬을 끌어모았느냐'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잘하고 못하느냐로만 보면 사실 11명의 출연자는 순위를 감히 매기기 어렵다. 모두 제각기의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힙합 일렉트로닉 발라드 재즈 댄스 등 장르도 다양하여 결국 실력으로 매긴 순위는 취향의 전시쯤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무엇을 보고 투표를 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매력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실력, 하지만 각자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다르고 매력이 다르며 그래서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누군가의 팬이 된다. 잘생겨서, 재밌어서, 수줍어 보여서, 이상하게 신경 쓰여서, 웃는 게 좋아서, 슬퍼 보여서.

우리는 이미 프로듀스 101과 같은 프로를 통해 결국 오디션 프로는 시청자의 마음 사로잡기가 관건이라는 사실을 목격한 바 있다. 게다가 오디션 프로가 끝난 뒤 대중들의 픽을 받은 건 정작 우승자가 아닌 다른 참가자인 경우도 수없이 봐왔다.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대중들의 시선 사이의 간극은 이렇게나 크다. 대중 가수가 되는 일은 실력은 기본이요, 거기에 사람들을 잡아당기는 자신만의 매력까지 필요한 시대다. <더 팬>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한 프로그램으로 대중문화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로 떠오르는 '팬'의 존재를 본격적인 전략으로 사용한다.




카더가든은 마치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크라잉넛의 '명동 콜링'을 부르며 <더 팬>을 뒤집어 놓았다. 우승의 예감을 잔뜩 풍기며 비비, 임지민과 함께 <더 팬>의 시청률 견인에 한몫하고 있는 카더가든. 그는 실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미 인디씬에서 황제라 불리는 가수다. 그런 그가 <더 팬>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팬이 필요해서였다. 데뷔 7년 차의 인디 황제마저 고백하는 '팬'을 향한 갈증.

어느샌가 팬은 더 이상 아이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가에게 팬이란, 그들의 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음악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렇기에 <더 팬>이 최종 우승자에게 팬클럽 창립금 1억 원이라는 포상을 내걸며 스타에게 직접적인 포상을 하지 않는 이유 역시 납득이 간다. 팬을 확보한다는 건 투자자를 확보하는 일과 같다. 앨범을 내고 노래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그 음악을 향유하고자 하는 '팬'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스타의 원동력이자, 그를 알아봐 주는 사람, 그가 내놓는 작품을 누구보다 열심히 보고 듣고 향유하려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팬'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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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는 여전히 한창이다. 오디션 프로의 성지 Mnet에서는 <Show me the money>, <고등 래퍼>, <프로듀스 시리즈>, <슈퍼 인턴>등 다양하게 변주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꾸준히 내놓고 있고 여러 공중파와 케이블에서도 끊임없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중이다. 지겹다, 지겹다 말을 하면서도 꾸준히 오디션 프로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갈증"이 아닐까.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매력적인 스타를 찾아내고, 누군가의 치열함을 통해 나를 반추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나 자신을 드러내고 홍보하고 싶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갈증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찰나의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는, 멋진 작품을 썼지만 들려줄 곳이 없는 예술가들이 있다.

당신의 응원을 바라는, 당신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SBS의 <더 팬>을 추천한다. 당신은 누구의 팬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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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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