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에 도움이 되는 한 줄이 필요할 때 : 도서 <스펙트럼>

도서 <스펙트럼> 리뷰
글 입력 2019.01.1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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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길 한국대표 이보균 회장이 삶과 경영의 철학을 말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스펙트럼’ 모델을 바탕으로. 스펙트럼 모델은 Spectrum이라는 영단어 철자를 따서 순서대로 Self-awareness 성찰, Perspective 관점, Engagement 몰입. Connect 연결, Trust 신뢰, Respect 존중, Unleash 도전, 그리고 Make & Measure 성취라는 8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8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또 순환하면서 스펙트럼 모델은 완성된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무작위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p.17)가며 구상한 스펙트럼 모델인 만큼, 이 모델은 저자가 생각하는 삶과 경영에서 추구해야할 중요한 가치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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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저자가 카길 대표라는 것을 보고 CEO의 파란만장한 자서전이나 경영 전략서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아쉽게도 이 책은 그 기대를 채워주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경영 현장에서 보고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그 일화들은 스펙트럼 모델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차적인 요소로만 쓰인다. 또한 이 책은 경영 실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경영 전략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경영 관련해서 유용한 정보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을 들었으나, 내 기대와는 달리 이 책은 보다 더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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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책이 흔한 자기계발서 중 하나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그 역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책은 여러 모로 시중의 자기계발서와 비슷해 보인다. 다른 사람의 삶의 가치를 자기 맘대로 정해버리는 월권행위를 서슴지 않는 책, 인간의 다양성과 개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독단을 설파하는 책, 그런 자기계발서들과 언뜻 보면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게다가 손발을 다소 오글거리게 만드는 모델까지 제시하고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눈에 띄는 매력이랄 건 없고, 눈에 띄는 오글거림은 조금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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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자기계발서 특유의 화려한 글재주나 호소력 짙은 문장들, 얼토당토 않는 힐난 혹은 칭찬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담백하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스펙트럼 모델에 이르게 되었는지부터 해서 저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왜 중요한지, 그 실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솔직하고 자신 있게 말할 뿐이다. 강요나 선동이나 호소 같은 건 없다. 조금은 투박한 문장과 글로써 저자는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간다.

또한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들은 너무나 당연하다. 스펙트럼 모델이 담고 있는 가치는 삶에서 당연히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어려운 그런 가치들이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객관화하는 것, 타인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것, 목표를 향해 과감히 도전하는 것 등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법한 당연한 말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는 이유는 막상 현실에서는 잘 실천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사회와 환경에 순응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해도 그것을 말로 꺼내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려워하지 않는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p.58)
몰입과 독단이나 집착은 다르다. (p.101)
소통과 협력은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다. (p.134)
삶은 공존이다. (p.180)
삶을 끌고 갈 것인가, 삶에 끌려갈 것인가? (p.200)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말하자면 ‘직구’를 던지는 셈이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말재주나 구구절절한 설득의 과정은 없다. 깔끔한 두괄식 문단은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저자는 자신의 말과 글에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러저러하게 포장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다. 그저 묵직한 한 줄, 한 줄을 독자들에게 던지는 것이다. 겉보기엔 투박하고 건조하고 통일성도 없어 보이는 그 문장들은 그러나 어릴 적 윤리 교과서에서 봤던 것만 같은 당연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에 읽기 보다는 필요할 때 필요한 부분만을 읽는 게 나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챕터 별로, 단락 별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며 중요한 문장들에는 친절하게 밑줄까지 쳐 놓았다. 따라서 예컨대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싶을 때에는 Self-awareness 성찰 파트를 읽는다거나, 타인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에는 Connect 연결 파트를 읽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한 줄 한 줄이 무게감이 있는 책이라서 단 한 줄, 한 단락만 읽어도 꽤 많은 영감을 얻어갈 수 있다. 그런 인생의 참고서 같은 책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에세이나 화려하고 재치 있는 글쓰기가 각광 받는 요즘 책 시장에서 보기 힘든 그런 책이다. 어쩌면 살아남기 힘든 책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펼쳐든다면 그건 오랫동안 글로벌 기업을 경영해 온 한 사람의 통찰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며, 솔직하고 또한 대범하게 쓰인 이 글은 우리를 새로운 통찰의 영역으로 이끌어 줄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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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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