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의 움직임을 통한 마음의 치유 : Authentic Movement [기타]

글 입력 2019.01.1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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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예술치료 중 하나라고 뜬 동영상을 보았다. 처음 영상을 봤을 때는 솔직히 당황했다. 영상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팔을 이리저리 틀고 몸을 꼬거나, 바닥에 눕거나 바닥을 기는 행위들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예술 치료 영상이 아니라 빙의라도 걸린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인줄 알았다. 다행히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이 한껏 고통에 신음하다가 행위를 하면서 편안해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 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는 그들을 괴롭혔던 무언가를 해소한 것 같이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저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하나의 심리치료가 될 수 있다니. 그때부터 동작 예술치료로 분류되는 ‘오센틱 무브먼트(authentic movement)’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춤’은 하나의 비언어적 내러티브다.



그동안 신체 움직임은 언어적 소통보다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져 왔다. 언어는 정신의 사고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에 반해, 신체의 움직임은 단지 신체가 움직이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강했기 때문이다. 음악에 맞춰 신체를 움직이는 동작들의 모음을 일컫는 ‘춤’은 어떤가. 고도의 자본주의는 춤을 추는 아이돌의 ‘몸’을 관능적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춤을 관능적인 몸을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만들거나, 무용이나 발레와 같은 수련이 필요한 움직임만을 예술행위로써의 ‘춤’으로 취급하게 만들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어 스트레스를 해소해도 우리는 ‘춤’을 하나의 예술치료행위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춤’은 인간존재의 근본적인 언어적 표현행위다. 각민족의 전통춤을 보면, 춤은 고도의 상징기호로서 작용하고 있다. ‘무드라’라고 불리는 인도의 무용극은 발동작으로 대지의 힘을 상승시키는 에너지의 확산을 보여주며, 신체의 움직임은 우주의 리듬을 호흡하는 신성한 몸짓이 된다. 춤은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의미까지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명제가 만들어낸 관습과 그에 따른 억압은 개인의 신체를 경직시키고 왜곡시킨다. 그에 따라 정신과 신체의 균형이 쉽게 무너지며 이는 신체와 정신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병이 들게 만들 수 있다. 춤은 그런 언어로부터 벗어난 행위이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의식적 고통을 표출하거나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몸과 정신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춤은 본질적으로 비언어적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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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무용극의 한장면




치료로서의 춤: 오센틱 무브먼트(authentic movement)



예술치료는 창조적인 예술 활동(동작, 음악, 미술 등)을 통해 내담자의 감정이나 내면세계를 자발적으로 표현하게 하고, 사고나 감정, 행동의 제한점을 개선 및 유지시키는 것에 활용되는 치료방법을 말한다.


‘오센틱 무브먼트’는 예술치료 중 동작치료로 분류되며 융의 분석심리학에 영향을 받은 ‘메리 화이트하우스’의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다는 가정 하에 기쁨, 슬픔, 화, 경멸 등의 인간 정서가 억압되고 부인될 때 그것이 신체에 영향을 끼쳐 신체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고 본다. 무의식속에서 억압되고 왜곡됐던 자아는 통증, 만성병, 습관화된 자세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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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센틱 무브먼트는 동작하는 무버(mover)와 바라보는 위트니스(witness) 두 가지 역할이 있는데, 서로 역할을 교대하며 진행한다. 무버는 내면의 욕구를 따라 계획없이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자기 자신과 접촉하도록 한다. 위트니스는 무버의 동작을 집중하며 지켜봐준다. 동작과 관찰이 끝나면 대화를 통해 자신이 느낀 것과 얻는 것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자기 이해와 통찰을 가질 수 있다.



△오센틱 무브먼트(authentic movement)를 담은 영상



꼭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동작 치료는 이루어질 수 있다. 자연 속에서 미묘한 자연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느끼며 자연과 교감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하루에 30분만이라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몸 구석구석 느끼며 내 몸이 어떠한가를 살펴보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러한 ‘춤 테라피’로 우리는 잃어버렸던 감각, 호흡, 움직임을 회복하며 몸을 확장시키고, 자아를 확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과 정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생생하게 자각할 수 있고 더 빠르게 평정과 균형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자기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비언어적 경험뿐만 아니라 타인의 비언어적 행위에 대해서도 더 빠르게 자각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 경험한 ‘오센틱 무브먼트(authentic movement)’



치앙마이에서 요즘 트렌드인 ‘한달살기’를 하고 있다. 느림의 미학을 배우러 치앙마이에 온다는 말이 있는듯 치앙마이는 관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예쁜 카페에서 멍 때리기 정말 좋은 도시다. 그렇기에 치앙마이에 와서 무리하게 움직인 날은 손에 꼽혔다. 오히려 할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여유로운 곳에서 자주 아팠다. 시도 때도 없이 감기에 걸렸고 몸살과 시름했다.

 

처음에는 서러웠다. 타지에서 이렇게 아프다니. 심지어 태국은 여름이라서 더 억울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숙소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열에 들떠 호흡은 가빴고 시야는 흐릿했다. 온 몸의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했고, 오한을 느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다가도, 금방 더워져 이불을 걷어차는 걸 반복했다. 약을 먹어야 할 거 같은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말도 못하고 그렇게 혼자 서러워서 울기만 했다.


누워만 있으니 별 생각이 다 들다가, 왜인지 저번에 우연히 알게 된 ‘오센틱 무브먼트’가 생각이 났다. 관심을 가졌어도 직접 해볼 생각은 못해봤는데,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이거나 해보자하는 마음으로 내 몸에 처음으로 집중하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숨소리에, 그리고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그 다음부터는 내 얼굴과 팔을 만져 피부의 열감을 느끼고, 내 피부가 닿는 이불과 침대보의 촉감을 느꼈다. 모든 감각을 세워 발끝이 움찔거리는 것부터 머리끝까지 온 몸을 느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태국에 온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나’에게 집중하는 기분이랄까. ‘왜 이렇게 계속 아픈 걸까?’ 처음으로 질문으로 던져보기도 했다. 그러자 그제야 외면했던 것들이 자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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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지 못한 엄청난 외로움과 공허함이 밀려왔다. 혼자가 되기 위해 왔는데, 오히려 매일 같이 다닐 새로운 사람들을 구하고 그에 집착하곤 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외로움과 공허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사실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온전히 혼자가 되니 생각보다 내가 싫어하는 ‘내’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왔는데, 아직도 타인을 너무 신경 쓰고 있었다. 고작 하루 만났을 뿐인데, 그 하루만으로 타인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고 말을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보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에게 무언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올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해외에 가서 혼자가 되면 주체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받아들이기는 힘겨웠다. 그 사실에 그렇게 힘들어 했던 거 같았다.


외면했던 ‘나’를 받아들이니 생각보다 엄청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몸이 많이 나아져 약을 사먹고 완전히 나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신체와 마음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을 꺠닫고 ‘오센틱 무브먼트(authentic movement)’를 자주 해보려고 노력했다. 비록 봐주는 사람인 위트니스(witness)가 없을지라도 혼자 음악을 틀어놓고 충동적으로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곤 했다. 부끄럽지만 끝나고나면 개운하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경험. 이는 분명 자신에게 매우 뜻깊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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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조정희 (2010) 예술치료와 샤머니즘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관계 연구

-춤, 동작 중심으로, 예술심리치료연구, 6:1, 81-102

김재숙. (2008). 신체동학: 심신 조율 그리고 예술치료-인도의 춤 미학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36, 419-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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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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