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나치게 가까운 불행, 영화 '가버나움' [영화]

영화 '가버나움' 미리보기
글 입력 2019.01.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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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을 앞둔 영화 '가버나움' 시사회에 다녀왔다. 아는 정보라고는 어린 소년의 얼굴로 가득 찬 포스터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문구뿐. 기껏해야 열살 조금 넘겼을까, 아직 부모의 품에서 투정 부릴 나이의 어린 소년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 나름의 상상을 해보며 극장을 찾았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 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어쩌면 12살 소년 '자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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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자인'이라는 사람을 칼로 찌르고 수감된 소년이 부모를 고소하기 위해 법정에 서면서 시작된다. 관중이 지켜보는 법정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교가, 변호사의 곁 원고석보다는 따뜻한 부모의 품 안이 어울릴 나이의 소년은 침착하고 담담하다. 이내 자인의 시선을 따라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전개되면서, 관객은 이 작은 아이가 겪었던 생활의 참담함을 목도하게 된다.


자인의 부모는 불법체류자다. 덕분에 자인은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다. 어려운 형편에도 많은 자녀를 낳은 그의 부모는 자인이 몇 살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자인도 자신의 나이를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아이들이 위조 처방전을 이용해 받아온 마약을 잘게 빻아 섞은 물에 옷을 담가서 유통해 돈을 버는 생활. 보호받고 사랑받기만 해도 모자를 나이에도, 자인의 생활에는 무관심과 불법, 불행이 지나치게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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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슬픔을 극대화해 동정을 유발하기보다 소년의 시선을 통해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문제들의 면면을 훑어 내려간다.


아동학대, 불법체류, 여성혐오적 관례, 난민 등 각종 사회 문제들을 적절히 조명하고, 그런 사회에 무자비하게 내던져진 소년의 무표정한 얼굴은 멀리 떨어진 나라에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상당한 부채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긴 속눈썹을 무심히 내린채 체념이 짙게 깔린 표정을 하던 자인이 정면을 바라보고 아이다운 환한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표정이 너무 잘 어울리는 동시에 너무도 기적같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졌다.


영화의 제목인 '가버나움'은 예수가 여러 기적을 행했던 곳으로 성지순례를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 제목이 역설적으로 붙인 이름처럼 느껴지는 것은 영화 내내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의 비극때문이요, 마침내 보인 아이의 웃음이 그저 기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힌 불법체류자들이 시간에 맞춰 다같이 신을 향해 기도드리는 모습은 신이 정말 기적을 내려주는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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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자막을 통해 자인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이 실제로 난민이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이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기를 배우지 않은 이들이 너무도 역할을 잘 소화해 낸 배경에 가까운 불행이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마냥 감탄할 수 만은 없었다. 촬영 후 이들에게 교육과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돕기 위한 가버나움 복지재단을 설립했다는 첨언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면서 영화에 대해 찾아보니 자인의 변호사로 나왔던 여자 배우가 영화의 감독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레바논의 몇 안되는 여성 감독이자 몇 안되는 배우 겸 감독인 나딘 라바키의 영화 '가버나움'은 1월 24일부터 만나볼 수 있다.



[박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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