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예술]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Review
글 입력 2019.01.1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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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로봇이 지능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이 같은 물음에 한 SF영화는 인간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무시무시한 폭동을 일으키는 로봇의 모습을 그려낸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성과 능력을 갖췄지만 감정이 없는 차가운 기계.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한 로봇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대개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2054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음악을 사랑하고, 주인을 하나뿐인 친구로 여기며 살아가는 조금은 특별한 로봇들의 이야기이다. ‘지능을 갖게 된 로봇’ 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관객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선사하는 따뜻한 극. 사랑스러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헬퍼봇들의 이야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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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올리버와 클레어는 외곽 지역의 낡은 아파트에 버려진 구형 헬퍼봇이다. 빠른 기술의 발달로 이미 쓸모가 없어진 이들이지만, 사람과 똑같이 생긴 헬퍼봇을 폐기하는 것을 꺼렸던 사람들에 의해 낡은 아파트에 방치된 채 수명이 다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사람에게 봉사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버려지고 말다니.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면 인간을 원망할 법도 한데 이 순수한 헬퍼봇들은 이에 전혀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공간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 살아간다.


화분에게 안부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항상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트는 올리버의 소소한 일상은 그가 미래형 로봇인 ‘헬퍼봇5’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면서도 사랑스럽다. 클레어 역시 올리버보다 한 단계 발전된 ‘헬퍼봇6’이지만, 전 주인들에게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어쩌면 이들은 인간이 아니기에 더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신형이 나오면 가차 없이 헬퍼봇을 교체하지만, 올리버는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난 주인을 찾아가기 위해 열심히 병을 팔아 동전을 모은다. 또한, 사람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사용하는 시대에서 올리버와 클레어는 종이컵 전화기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누고 지구 상에 한 곳밖에 남지 않은 숲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떠난다.


극에 빈번히 등장하는 아날로그적인 설정은 올리버와 클레어가 미래형 로봇이라는 설정과 대비되면서도, 둘의 순수한 모습과 만나 극 특유의 따뜻하고 잔잔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따뜻함과 순수함을 잃어 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의 순수함은 반딧불이처럼 환하게 빛난다. 애초에 사람을 향한 맹목적인 헌신을 목적으로 설계된 로봇이니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은 접어 두는 것이 좋겠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없게 설계된 이들이 결국에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사람은 소외되고, 기술만이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는 사회에서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만남은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관계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관객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선사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햎’ 특유의 울림이다.




끝이 분명한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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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린 왜 그냥 스쳐 가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을까

우린 왜 끝이 분명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올리버와 클레어는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이후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낡은 아파트에서 고장이 나기만을 기다리던 처지인 이들의 결말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클레어가 점점 망가져 가는 모습은 슬픈 선율과 함께 빠르게 스쳐 지나가듯 연출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끝이 보였던 그 길을, 둘은 왜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사랑이란 멈추려 해봐도

바보같이 한 사람만 떠올리게 되는 것

사랑이란 그리움과 같은 말


사랑이란 봄날의 꽃처럼

아주 잠시 피었다가 금세 흩어지고 마는 것

사랑이란 슬픔과 같은 말



사랑이라는 화두에서만큼은, ‘왜’라는 질문이 소용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던 올리버와 클레어가 이유를 따질 새도 없이 서로에게 젖어들었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빛을 내는 반딧불이와 닮았다. 두 달 밖에 살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빛을 내던 숲 속의 반딧불이 같은 사랑. 그 끝이 어떻든,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따뜻한 빛을 낸다.


자신이 점점 망가져 가는 것을 느끼던 올리버와 클레어는 결국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서로를 충실히 사랑했고, 클레어 몰래 기억을 지우지 않은 올리버는 평생 클레어의 망가짐까지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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