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사예술과 페미니즘 [기타]

글 입력 2019.01.1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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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사회적 이슈로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공연예술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중 하나였다. '미투'에 연루된 연출가, 배우 그리고 작품들이 사라지고 뮤지컬 <레드북>의 안나, 연극 <엘렉트라>의 엘렉트라, 오페라 <살로메>의 요카난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여성이 주인공을 맡거나, 여성의 시선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처럼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서사가 높은 관심을 끌고 사랑을 받는 것은 어쩌면 기존의 많은 작품들이 남성 위주의 서사를 띄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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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의 주인공 안나)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높은 관심이 공연예술계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부분은 기존 서사를 바라보는 수용자들의 시선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관객들은 기존 작품들의 서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품의 주인공은 왜 항상 남성이어야 하는지' 또는 '작품의 서사에서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소모적인지'와 같은 의문들이 그 당연함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공연예술 작품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필자에게 가장 익숙한 공연예술 장르인 뮤지컬을 예로 들면 기존의 많은 작품들이 남성과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많은 대극장 뮤지컬 작품은 남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여성 캐릭터는 그 안에서 남성 캐릭터에게 의존하거나 선택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몇몇 작품에서는 여성은 상품화되고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제 적극적으로 이러한 서사 전개에 불만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최근 성공적으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인 늙고 타락한 주교가 사창가에서 어린아이를 상품화하고 희롱하는 장면에 대해 꽤 많은 사람들은 불쾌함을 느끼고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장면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그 장면은 기존 작품들의 서사가 여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 서사에 대한 수용자들의 인식 변화는 연출자에게는 무척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낡았다고 평가되는 일부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가는 작품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작품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상업성을 기반으로 한 많은 작품들에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최근 몇몇 작품의 장면 일부가 시대에 맞게 수정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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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NEWS CULTURE)



작년에 삼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가 그렇다. 이 작품은 2010년 초연되었고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2018년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초연, 재연을 거치며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꼈던 장면 일부를 수정하거나 극에 제외시켰다. '현빈'이 브래지어를 선물하여 '혜주'를 놀래키는 장면은 브래지어가 아닌 모형뱀으로 바뀌었고 극 초반 '인우'에게 연애의 비법을 알려주는 '연애의 정석'이라는 넘버는 부적절한 일부 가사로 인해 아예 삭제되고 새로운 넘버로 바뀌었다.


작품을 바라보는 수용자들의 변화된 시선이 연출자로 하여금 시대에 맞는 장면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대해 연출가들은 민감하게 생각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과하게 몰입하는 것은 한편으론 한 시대의 '망탈리테'를 이해하는 서사 예술이 가지는 근본적인 역할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


'망탈리테'(Mentalites)란 '사회문화 현상의 바닥에 자리잡은 집단 무의식 혹은 정신구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망탈리테'의 개념은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등 학문 전반에서 사용되곤 하지만 서사 예술의 장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현재를 살고있는 대중이 과거 한 시대의 '망탈리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통계자료, 신문기사 또는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을 사회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는 한가지 지표로 받아들인다면 작품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망탈리테'를 파악하는 또 하나의  해석 틀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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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시대의 '망탈리테'를 이해하는 틀로써 '예술작품'이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는 당시의 '망탈리테'를 이야기 형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그 시대의 '망탈리테'를 좀 더 가시적인 형태로 엿볼 수 있게 된다.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에서만 사랑받는 것이 아닌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았던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었던 것은 한 시대의 '망탈리테'를 구현하는데 있어서 서사예술작품이 가지는 힘을 보여준다.
 
이렇게 본다면 많은 기존 작품들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하나의 '망탈리테'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배경이 되는 1800년대 후반 영국 또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배경이 되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여성의 인권'은 확실히 지금만큼 인정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작품은 시대가 가진 바람직하지 못한 '망탈리테'를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한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中 '그런가봐')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하이드와 주교의 대화를 통해 그가 가진 허위와 위선을 드러내고 하이드는 이내 주교를 심판한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그런가봐'라는 넘버를 통해 여성의 시선에서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마련한다. 이처럼 작품은 단순히 한 시대의 망탈리테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수용자에게 망탈리테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창구를 제공한다.


물론 작품의 장면이 단순히 한 시대의 잘못된 '망탈리테'를 정당화하고 지속하려는데 사용된다면 시대에 맞게 서사가 변용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는 맞지 않는 장면이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작품이 수정되는 것은 한 시대의 '망탈리테'를 간접경험할 수 있는 통로로써 서사 예술이 가지는 기능을 놓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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