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바가 선사한 감정의 향연 [전시]

에바가 다시 정의한 행복
글 입력 2019.01.18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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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예술을 천재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예술이란 이념을 전달하는 도구이고 그러한 이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뛰어넘는 정도의 인식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도 천재 뿐일까?


천재의 능력은 모두가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대중은 천재가 만든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사물들 속에서 이념을 인식하고 그로써 자신의 개인적 입장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는 단지 그들보다 높은 차원의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우리는 천재들이 만들어 낸 예술 작품을 보며 본질적인 미적 쾌감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바는 천재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에바의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눈에 띈 것은 아이들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전시장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붙잡고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게 어떤 그림 같니?” “이 그림 속 주인공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 같니?” 내지는 “너는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니?” 아이들은 에바의 그림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엇비슷해 보이는 그녀 그림 속 표정들이 분위기와 자세, 옷 색깔에 따라 어떤 느낌으로 바뀌게 되는지 생각해보면서 자신이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알게 되거나 자신에게 너무 익숙한 감정을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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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바의 그림은 감정 그 자체를 담고 있다. 처음 그녀의 그림을 본 순간부터 느꼈던 기시감의 원인을 그녀의 그림 한 점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그 그림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리밭에서, 보리로 채워진 드레스를 입은 에바의 모습이었다. 에바는 그 그림을 자신이 나고 자란 스페인 사라고사의 속담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그 속담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에바가 그 속담에서 자기 그림의 방향성을 찾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관객이 극대화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림. 그것이 에바의 목표였다. 그걸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에바 그림의 대다수는 제목이 감정, 혹은 그 상황 자체의 이름이었다. 하나의 그림 속에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 전체를 담으려고 노력했던 거였다.


사람들은 각각의 사물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찾아 낸다. 개인적인 입장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사물의 표상 속에 개인의 주관이 덧붙여 질수록 본질은 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본질을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욕망 자체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천재적인’ 에바는 사물들과 일체 되어 순수한 인식 주관을 통해, 감정이라는 이념의 순수한 표상을 그림으로써 재현했다. 그리고 그로써 그녀 자신과 그녀의 그림을 보는 관객들이 각자의 욕망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예술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그녀의 그림은 보는 즉시 알게 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제목 없이도 나는 제목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일상의 순간들까지 그녀는 완전히 재현해냈다. 솔직히 그런 의미에서 그림 옆 마다 붙어 있는 긴 설명들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그건 오히려 또 다른 표상으로 작용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림 속에서 설명하지 않은 어떤 세밀한 느낌들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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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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