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편적인 관념'에 물든 당신에게 [영화]

<Swiss Army Man>을 보고
글 입력 2019.01.2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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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내게서 방귀를 숨긴다면,
내게서 또 뭘 숨기는 걸까?
그 생각이 왜 날 외롭게 하지?

- Swiss Army Man 中 -


방귀를 뀌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며, 사랑을 느끼는 시체인 '매니'가 있다. 무인도에 표류한 '행크'는 그런 시체에게 방귀를 감추고, 말을 시키고, 생각을 가르치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자칫 처음 보기엔 말도 안되는 설정으로 느끼기 충분한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Swiss Army Man』이 던지는 메시지는 독특하다. 영화는 특정한 주제를 한정하며 무게 있는 고민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시각으로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볼 뿐이다.

물음표의 시작은 '행크'의 감정 덕분에 애매하게 되살아난 '매니'로부터 시작한다. 의식이 되살아난 시체 매니는 살아있기 전에 겪을 법한 인간 사회와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느끼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걸 내뱉을 뿐이다. 방귀에서부터 사랑, 슬픔, 부끄러움, 자위, 동성애 등에 이르기까지. 행크가 말한 인간 사회는 매니의 시각에서 보면 자칫 이상할수도 있는 곳이다. 기분 좋고 행복한 것들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추고 부끄러워하면서 규범으로 얽매여서 살아야 하는 공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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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영화 내내 들리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매니의 '방귀' 소리는 꽤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들은 매니의 방귀를 타고 무인도를 빠져나가고, 방귀로 불을 지피고, 곰을 쫓아내며 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온다. 방귀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뀌는 건 이상하고 나쁜 행동이라고 일러주어도, 매니는 오히려 기분 좋은 방귀를 뀌는 걸 조롱하고 비웃는 사회로 왜 돌아가고 싶은지를 반문한다.

자위행위도 그렇다. 그것과 연관된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일화가 선명해 자위를 하지 않는 행크를 불쌍하다고 말하는 매니의 생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념을 자극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라면 오히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더 기뻐하지 않겠냐는 말은 나름의 논리와 타당성을 띤다. 이외에도 강에 빠진 순간 인공호흡을 핑계로 키스를 나누며 생명을 구하는 모습은 이성애, 동성애와 같은 범주를 넘어 아무런 관념이 없는 상태의 사랑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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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영화는 우리가 익히 접해 온 것들을 독특한 방법과 생각으로 자극한다.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지는 매니의 방귀 소리를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마주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매니와 행크가 마침내 표류지에서 빠져나와 사랑하고 갈망하던 여자 '새라'를 만난 이후, 사회에 물들어 다시 시체로 변한 시점은 그래서 조금은 특별하다.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안치소의 수많은 시체 중 하나가 되어버릴 매니를 행크는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본인이 많은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고,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될 수 있음에도 행크는 매니를 구하고 살리기 위해 추한 민낯을 받아들인다. '새라'를 남몰래 짝사랑하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도, 자신이 매니라는 시체의 엄청난 능력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것도. 이러한 행크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사회로부터 벗어나 매니를 해변으로 데려갔을 때 절정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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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행크가 짝사랑하는 사람을 비롯한 아버지, 생방송 취재 기자, 꼬마 아이, 매니, 경찰 앞에서 공개적으로 방귀를 뀌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에 반응하는 듯, 매니는 환하게 밝은 표정을 보이며 자신 역시 방귀를 뀌며 바다로 떠난다. 방귀를 뀌는 행위가 조롱거리이자 비웃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타인을 의식하던행크의 변한 모습이 좋아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실존하는지 환상인지도 불분명한 매니의 마지막 모습처럼 특정한 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는 시도를 영화가 제공하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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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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