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그 원인을 찾아서 #4

누군가는 고등학교 시절이 추억이라고 하더라.
글 입력 2019.01.2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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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섭식장애 이야기]의 마지막 편이 다가오고 있고, 나는 며칠째 글을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이라 아쉬워서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에 다가가면서 나에게서 아직 극복되지 않은 유일한 이야기들을 속에서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어서 머릿속에서 진동하는 이 이야기를 내보내고 홀가분해지고 싶지만, 하나의 단어도 타이핑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만큼 그토록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글로 나오면 기정사실이 되어버릴까 봐,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의 비밀을 폭로하는 게 두려워서, 이 이야기들로 나라는 사람이 규정되는 것이 두려워서. 수많은 이들을 글만 갖고 판단하는 건 자기면서,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가장 비겁한 자의 마음. 그 모든 것은 과거를 진정 과거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때문일 것이다.

과거로만 남아있어야 할 과거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끊임없이 과거를 원망하고, 분노한다. 나의 발가락 끝 부분이라던가, 그런 전혀 보이지 않는 부분 어딘가에 숨어서 시시때때로 나타나 일깨워주곤 한다.

사실 정말 싫어하고 혐오하는 과거라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슬프고 힘들다며 애써 지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고, 모르는 이들이 나를 동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겠지. 누구보다 내가 더 기구한 삶을 살았다는 불평, 그리고 거기선 느끼는 우월감. 한탄하고, 불쌍한 척하며, 힘든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자존감을 느끼려는 구질구질한 자존감.

나도 알아. 그렇게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건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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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니까, 이제 약 7년 전이다. 시간이 얼마 흐른 것 같지 않은데 과거를 떠올리면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흘러있다. 7년,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을까. 예전에 글을 읽을 때 시간이 너무 빠르다느니, 벌써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느니 하는 글을 보면 낡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내가 나이를 먹고 보니 이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건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빠르지는 않았지만, 정말 느리고 길었지만, 지금 생각하는 그 7년은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도 절대 변명할 수 없는 7년이었다.

그때의 나는 자신을 마치 '텅 비어버린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성격 테스트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었다. 나의 꿈은 늘,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거였다. 거창한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늘 스스로가 누구인지, 무슨 색을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를 찾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친구들은 아무래도 좋을 자기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사촌 이야기도 했고, 게임 이야기도 나누었고,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인 나였지만,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할지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곧잘 했다. 오빠랑 싸운 이야기도 했고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연예인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나라서, 수업시간에 동방신기에 려욱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반 전체가 엄청나게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었다. 딱히 내가 아닌 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렇다고 나를 알지도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런 나를 사람들은 좋아해서, 나는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두 휴학해버린 대학교 4학년의 '아싸' 생활이 그토록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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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하는 사람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고등학교에 선서하고 들어갔고, 그 뒤로도 모의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질투 대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정독실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는데, 전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가진 30명 정도를 모아서 야간 자율학습을 따로 시켰다.

눈만 감으면 치과 대기실에서도 쉽게 잠들어버리고, 버스에서도 쾌적한 잠을 잘 수 있는 나라서 그 날도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갑자기 언니와 엄마가 나를 깨워서 보니, 불이 다 꺼진 정독실에서 나 혼자 엎드려서 침을 소맷자락에 흘리면서 자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밤이었고, 전화를 안 받아서 가족들이 나를 찾으러 학교까지 온 거였다. 정독실에서 야자를 하던 애들이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었고, 심지어 불을 끄고 나갔던 것도 충격이었다. 공부를 너무 잘하는 것은 선생님들이 좋아해 주는 만큼, 그토록 같은 처지의 학생들에게선 많은 미움을 받고 살아야 하는 거였다.

사람들은 쉽게 내 노력을 깎아내렸다. '쟤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서울대 출신이라서 특급 과외를 한대 소문도 들었다.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다. 나는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왜 그들은 나와 경쟁을 하는 걸까? 이 좁은 학교, 좁디좁은 통영에서 경쟁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단기적인 성적이 그들에겐 그토록 중요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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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럴 때면 '우리 엄마 아빠는 돈 없어서 대학 안 나왔는데!'라고 억울하게 말했다. 한 번도 부모님이 돈이 없고,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내가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오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학벌을 따지는 그대들은 과연 번지르르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중산층도 아니고, 여행을 다닐만큼 넉넉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집 저녁식사자리는 늘 웃음이 넘친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행복이란 감정을 느낀다.

중학교 때 제일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가 아침에 아빠의 흰 트럭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아빠의 파란 트럭에서 내렸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꼈다. 한 번도 아빠의 트럭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차에 내릴 때는 아빠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내려서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아빠가 늦을지도 모르는데, 먼 거리를 나를 위해 차를 실어주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우리 집은 아직도 차 하나 없다. 서울에서 만난 제일 친한 친구는 휴학하고 나서 중고차를 하나 선물 받던데, 우리 집은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차가 없다.

부끄러워한 적은 없지만, 조금은 슬펐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었고, 그 흔한 태권도와 검도를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자격증 시험을 치기 전에 인터넷 강의를 당연하게 끊고, 선생님을 누구 할거냐고 물어볼 때, 나는 왜 당연히 인강을 듣는 것을 전제로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기술자격증 5가지를 어느 것도 인강을 듣거나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남들은 다이어트하면 바로 헬스장 1년 치를 끊고, 헬스장에 기부한다는 농담을 하는데 나는 운동을 하고 싶어도 헬스장을 등록할 수가 없어서 집에서 운동했다. 여름에는 정신 나갈 듯이 덥고, 겨울에는 이불 속에서도 추운 집에서 운동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남들과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이 다르다는 것은 조금 슬펐다. 돈만 조금 있으면 누가 알려주는 대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몇 배로 시간이 걸렸고, 몇 배로 머리를 써야 했다.

늘 목표를 세웠고,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했다. 수능이 끝나서도, 나는 나와, 내 상황과 싸웠다. 변명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은 실제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거지 같은 학교를 욕할 때, 나는 그래도 나의 시야를 넓혀준 학교에 감사했고, 내가 이 학교에 오게끔 노력한 자신에게 감사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소원은 내가 노력하고, 나 자신이 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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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조금이라도 나를 규정짓기 위한 사춘기 시절의 모호함이었다. 평생을 살아가야 했기에 내가 누구인지가 너무 궁금했고, 꼭 알아내어야 했다. 그 애매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든지 되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연애했다. 상대는 같은 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요즘도 종종 내 꿈에 나오곤 한다. 그 애는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배신'이라고 했다. 지금은 내가 그 애를 배신한 건가, 걔가 제일 싫어하는 배신을 한 건가? 궁금하긴 하다.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정독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그 애의 무릎 위에 앉아서 껴안고 있고는 했다. 일찍 점심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 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기에 더욱 즐거웠다. 어느 날은 같이 봉사활동을 가서,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 애를 봤는데, 그 애도 나를 보고 있었다. 가슴이 정말로 울렁거렸고, 그렇게 첫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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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모든 일이 몇 년 지나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네가 겪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 그렇게 우울한 척하지 말라고, 어리광부리지 말라고 강하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속이 타들어 가고, 목이 메말라가고, 장기가 쥐어짜듯 비틀어지는 그 고통이 사실은 별것 아니라고,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두려운 일이 얼마든지 많다고, 살아가기도 힘든데 왜 힘든 짓을 자처하느냐고 누가 강하게 타일렀으면 좋겠다.

상담선생님께서 세 통의 부재중 전화를 남기셨다. 내일까지 연락해주라던 그 문자에 나는 아무런 전화도, 문자도, SOS도 보내지 않았다. 당신과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심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쓰는 걸 시작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이야기를 왜 굳이 속을 뒤집어가며 꺼내야 했는지. 이야기의 결말이 다가올수록, 한 글자 한 글자가 더 무거워지고, 늘 마감의 시간을 넘겨버리는 지긋지긋한 일상. 끝내자, 끝내자 하고서 자꾸만 미루는 그 이야기를 나는 언제쯤 끝을 낼 수 있을까- 아니 시작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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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통을 털어서 선물했다. 엄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어서 돈이 어디 갔는지 모르는 척했다. 선물하고, 친구들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노래방을 갔다. 동생의 저금통은 10만 원, 20만 원이 모이는 동안, 내 저금통에서는 고작 2만 원, 3만 원. 나의 거짓말만큼 나의 저금통은 가벼워져 갔다.

저녁밥을 할머니 댁에서 먹었는데, 그 애를 데려와서 같이 먹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저렇게 누워있는데 데려오면 친구가 안 좋아할 것 같으니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는 좋아하셨다. 언제든지 할머니는 좋아하셨다. 외로운 할머니 곁에 누군가가 오면 좋아했다. 지금은 나도 알 것 같다. 너무 외로워서,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 혼잣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싫어하던 사람에게도 별 감정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외로움이란 것인지 모른다. 외로움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엄마는 그 친구랑 놀더니 성적이 많이 내려갔다고 혼을 냈다. 1등급만 있던 내 성적표는 어느새 3등급과 4등급도 보였고, S대를 보내려던 담임선생님은 이제 경상남도에 있는 국립대도 못 가겠다고 나를 포기해버렸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버려지고 남겨지고 결국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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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를 동네 원숭이 보듯 했다. 쉬는 시간이면 우리 반에 굳이 찾아와서 우리를 보고 갔다. 한번, 책상에 엎드려서 자려고 하다가 들었는데, 내 성적을 질투하던 어떤 애 한 명이 "쟤네 진짜 사귄대?"라고 가십거리 얘기하듯 말하고 갔다.

성욕에 솔직한 편이라서, 우리는 일찍 관계를 맺었다. 장소는 정독실이든, 화장실이든 그 애의 집이든 어디든 상관없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의 아파트. 갑자기 학교를 마친 동생이 들어와서 얼마나 놀랐던지 모르겠다.

그런데 참 이상했던 것은 우리 사이엔 그럴듯한 대화가 없었다. 친구라도 신나게 이야기할 공통 화제 같은 것도 없었고 만나면 별로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무슨 기억나는 대화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게 충격적일 정도로, 나는 그 애의 얼굴과 표정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내가 아무리 말이 없는 사람이었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야기쯤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사람에게 어색했던 만큼 그 애도 사람에게 서툴렀던 걸까.

지금은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 삶의 방식, SNS 중독 여부 등 엄청나게 많은 조건을 보고 결정을 하지만, 그때는 그냥 함께 있는 사람이 좋았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누구라도 좋으니 옆에 영원히 있어 줄 것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우리는 싸웠다. 그 애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런 애정 표현을 하다가도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나를 깎아내리곤 했다. 마치 나만 일방적으로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자존감을 채우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자기에게 나쁜 소문이 들러붙는 게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

사건의 발단이 된 장소는 교사 휴게실이었다. 그곳은 온돌이 있어서 아주 따끈따끈했다.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선생님 한 분이 들어왔고, 당연히 의심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 오른 팔목을 잡아서 오른손의 냄새를 맡으셨고,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에게 이름과 반을 부르라고 했다. 나는 바로 말을 했지만, 그 애는 웃으면서 '에이, 죄송해요. 했다. 그 모습에 너무 짜증이 났다. 선생님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듯 엄숙한 얼굴로 다시 반과 이름을 말하라고 했고, 그 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말을 했다.

무서웠다. 할머니가 나는 입가에 점이 있어서 나쁜 소문이 많을 거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정말 먹을 복만큼이나 안 좋은 말들이 내 평생을 곁에 따라다녔다. 3년 살았던 고시원에서도 늘 원장님이 반찬거리를 해주었고, 아르바이트 장소에서도 값비싼 음식을 먹어서 오히려 살이 쪘고, 원룸으로 이사한 지금도 옆집 주인아줌마가 늘 먹을거리를 주실 정도로 먹을 복이 넘치는데, 나쁜 소문은 늘 그보다 많이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또 거기서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뭐든 포기해버리면 쉬웠다.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만든 동아리를 포기해버린 것처럼, 대학에 들어가서도 댄스 동아리와 수화 동아리를 포기해버린 것처럼. 그렇게 혼자 상처받은 사람인 척, 피해자인 척 포기해버리면 나는 더는 아무런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그 애는 미안하다고, 이제 내가 더 신경 쓸게, 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그렇게 상처 주지 말라고' 를 수도 없이 말하면서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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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이 되어 다시 성적을 올렸고, 나는 보란 듯이 S대의 지역균형전형 교장 추천을 받았다. 우리 지역이 지역인지라 다른 지역의 학생들과 경쟁이 되지 못했지만, 서울로 떠날 수 있었다. 떠나야 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다시 살아가고 싶었다. 이때까지의 기억이 없었던 것처럼, 다 거짓말인 것처럼.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지긋지긋한 소문. 나를 동물 취급하는 사람들. 여중 여고, 더는 여자들만 가득한 곳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실 대학에 와서, 동기들이 '너 저 선배를 노린다며?' 라고 할 때도 짜증을 느끼긴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큰 안심을 느꼈다. 짐승 취급받는 것보다야 '여우' 취급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남자'에게 관심이 많은 척했고, 남자친구를 많이 사귀어본 척했고, 솔로인 상황이 두려워서 소개팅해서라도 남자친구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정말로 좋아하던 남자에게 '저 애는 가벼워서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동기 여자인 친구들과 친구로 지내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는 고등학교 시절이 친구들과 제일 재밌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고등학교 친구만큼 진실한 친구는 없다고 말이다. 그래, 이게 이상한 것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이상한 취급을 몇 년간 받다 보면 더는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정말 이상한 건 아닐까? 뭐 때문에 그러는 걸까? 그래선 안 돼, 하고.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옛날 교육방식처럼 말이다.

당신들은 내가 대학에 오는데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았잖아? 근데 왜 내가 당신들을 찾아봐야 하지? 꽃다발 들고 당신들이 내 인생의 은인인 양 거짓말하며 말이야. 난 거짓말 잘할 줄 몰라. 그리고 거짓말을 평소에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정말로 신뢰하곤 하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애초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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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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