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놀이'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당장 즐겨야 하는 이유

글 입력 2019.01.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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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놀이'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당장 즐겨야 하는 이유

_김해서

 

상담 선생님은 내게 아주 특별한 처방전을 내려주셨다. 그녀의 입술에서 튀어나온 말은 다름 아닌,

"해서씨, 좀 편안해지세요."

재미있는 웹툰 많으니까 그런 것도 좀 챙겨보고, 모바일 게임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살라는 것. 철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말을 내놓으실 줄 알고 열심히 마음에 새기려던 중,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겨우? 편안해지라는 것? (그게 안 되어서 상담센터로 찾아간 건데?)

그녀가 야속하고 내심 미심쩍었지만, 태연한 선생님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자니 주눅이 들었다. 그래, 난 편안해지지도 못하는 고독한 쩌리구나. 그녀의 말이 맞다. 사실 나는 웹툰도 보지 않고, 모바일 게임에 도전해 본 횟수가 열 손가락 안으로 꼽힐 정도로 드물며, 예능 프로그램은커녕 드라마조차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이다.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삶만이 '편안할 수 있는 삶'인 걸까? (라고 또 답 없는 진지한 질문을 품는 나)

아마 누군가는 방금 전 문장을 보고 어마어마한 우울증 환자의 고해성사를 읽어야 할까 두려워 이 글을 휙 닫아버렸을 수도 있다. 우울증을 경미하게 앓고 있는 건 사실이라 그를 붙잡을 마음은 없지만, 내 병은 사실 '진지병'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몇 번의 상담을 더 거치며 이 극도의 '진지병'은 어린 시절 놀이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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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필로소퍼 코리아 vol.4 -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뼈아픈 자기연민(?)에 빠져야 했다. 인간은 내면의 충만을 위해 '의미 있는 삶'만큼이나 '의미 없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다. '놀이'는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실체적인 삶의 영역이다. 그것이 결핍된 삶은 균형추를 잃어버린 채 외나무다리 위를 걷는 것과 다름없다. (애석하게도 난 그 위에서 비틀거리는 인간이다.)

'놀이로서의 스포츠'를 생각해 보자. 축구 경기장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다. 다 큰 성인들이 공 하나를 두고 숨을 헉헉대며 땅을 박차고 괴성을 지른다. 꽤 심하게 엎어졌음에도 선수들은 다시 벌떡 일어서고, 그것을 지켜보는 응원단과 팬들은 눈물을 흩뿌리며 공의 운명을 점치고 간절히 기도한다. 저마다 비슷한 정도의 광기가 이글거리지만, 이들의 욕구는 사실 제각각이다. 선수들은 순전히 즐거움을 위한 마음, 자존심을 위한 마음, 사명감을 위한 마음 등을 갖고 임할 것이고, 관중석에는 진짜 팬심으로 앉아 있는 자들뿐 아니라 응원을 위한 응원을 하기 위한 자, 어느 것에도 관심 없고 경기장의 열기가 좋아 참여한 자, 상대편 팬과 선수들을 저주하기 위한 자 등이 골고루 섞여 있을 것이다. 즉, '놀이'는 개인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즐기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다. 야만적으로 즐거워도 되고, 야만적으로 분노해도 좋고, 야만적으로 연대할 수 있고, 야만적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다.

'놀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생선적이거나 의미 있어야 하는 계산에서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그런 발견의 기회'를 갖기 힘든 환경에서 자랐다. 9살이 되면서부터는 방과 후에도 짧은 쉬는 시간과 공부 시간으로 철저하게 짜인 하루를 보냈고, 그나마의 쉬는 시간에는 놀이가 아닌 '한숨 돌리며 긴장을 푸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 결과, 25살에 은퇴 직후 중년의 얼굴로 '어떻게 해야 즐겁고 편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내게 집중을 못 하겠어요.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어요.' 따위의 고민을 읊으며 상담사 앞에서 눈물을 훔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자>(56p~60p)에서 티파니 젠킨스는 지적한다.

"아이들은 점점 놀 때조차 정해진 방식과 목표를 추구하며 지나치게 빠른 성장을 강요받고 있다."

'놀이'라는 주제를 스포츠나 교육, 철학 고전 외에도 예술과 대중문화, 사회학적 통계 등으로 좀 더 다양하게 풀어냈으면 훨씬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지만, <뉴필로소퍼 vol.4 -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이 줄곧 설명하는 '우리가 놀이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즐겨야 하는 이유'들은 시사점이 분명하다. 이 매거진 역시 내게 준엄하고 강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서 찾으세요, 이제라도 당신을 철저하게 즐거워지도록하는 것을!"





뉴필로소퍼 4호
- 일상을 철학하다 -


엮음 : 뉴필로소퍼 편집부

출간 : 바다출판사

분야
인문/철학
문예지

규격
180*245mm

쪽 수 : 172쪽

발행일
2018년 10월 1일

정가 : 15,000원

ISBN
977-25-8647-600-5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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