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마음으로 바라본 '실재'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글 입력 2019.01.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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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막상 프리뷰를 쓰려고 앉았는데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작에, 아니 아직 현대미술 수업을 듣지 않았지, 4학년 때 들으려고 했었는데 입체파의 거장들이 한국에 너무 일찍 찾아와 버렸어...라는 혼잣말부터(?) 내뱉고 다시 내가 써 내려가야 할 프리뷰를 마주했다.


현대미술은 이미 정해진 것 너머의 범위에서 일어나는 예술이라서 더 어려운 것만 같다. 르네상스 미술을 보면 이것은 신화의 어떤 장면이고, 완전하고 이상적인 인체를 재현해낸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상적인 재현에서 좀 더 나아가 빛이 주는 인상을 그대로 담으려 한 인상주의의 미술 앞에서도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었다. 화가마다 양식적인 차원에서 차이가 있었어도 "이것이 재현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입체파가 수백 년의 ‘재현’이라는 가시화의 역사를

파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파리시립미술관 소장 걸작선-



피카소와큐비즘_포스터.jpg
 

[Preview]

마음으로 바라본 ‘실재’



자세한 전시 정보



그때부터였을까, 자신의 눈에 비치는 그대로를 온전한 것이라고 당연하게도 믿어온 사람들이 미술이 말하는 것에 고개를 쉽게 끄덕이지 못했던 것이. 가벼운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피카소의 작품도 이런 맥락에서 자주 언급된 것 같다. “이건 나도 그릴 수 있는데”. 하긴 얼핏 보면 세심하기보다는 그냥 거칠어 보이기도 하다. 하나의 형태라기엔 거침없이 화면을 도형으로 분리하려는 듯한 선들과 그 결과로 덜 맞춰진 퍼즐처럼 어그러져 알아보기 힘든 피카소의 <남자의 두상>, 어쩌면 뭔지 알 수 없어서 발이 안 떨어지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흔히 ‘재현’이라는 말과 ‘남자의 두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합쳤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피카소가 그린 작품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작품은 재현일까, 재현이라는데 어떤 의미에서의 재현이란 말이다!



01_파블로 피카소_남자의 두상.jpg
파블로 피카소, 남자의 두상, 1912, 61x38cm, 캔버스에 유화

Pablo Picasso, Tête d’homme, 1912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사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피카소에 대해 아직 깊이 배우지 못했다.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초'간단하게 전체적인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살펴보는 수업에서 입체주의를 위해, 그나마 피카소여서 다섯 줄 정도의 내용을 배우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다섯 줄로 입체주의를 전혀 모르는 우리를 위해 교수님이 한 설명은 간단하고 명료했고, 아마 그때 처음으로 피카소 작품에 대해 “오...”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본인이 피카소를 통해 겨우 네다섯 줄로 이해한 내용에 의지한, 어쩌면 아슬아슬하고 단순한 입체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냥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저는 이렇게 이해했다면서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느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



1905년으로 기록되는 야수주의 회화가 전통회화의 틀을 고수하면서 강렬한 색채의 자유로운 구사를 통해 색채사용의 혁신적 변화를 이룩한 미술운동으로 기억된다면 그로부터 2년 후 탄생한 입체주의는 전통회화의 형식파괴를 통해 표현의 일대 혁명을 일으킨 미술운동이었다. 입체파로부터 시작된 전통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표현의 자유는 추상미술의 탄생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20세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창작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작가의 자유로운 손놀림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지력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전통회화가 강요한 한계와 틀을 과감히 파괴한 입체파 예술가들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입체주의 미술에 대한 탐구 없이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입체주의 근,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다.


- 보도자료



부족한 견해일지도 모르나, 나는 적어도 현대미술부터는 절대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을 통해 범위를 알 수 없는 곳까지 미술이 뻗어 나갈 수 있었으며, 이에 감상자들도 종잡을 수 없이 수많은 질문과 감상을 남기며 지금까지 미술이 이어져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비례, 꿈꾸던 이상, 온전한 재현이라는, 정점이 존재하는 답이 있는듯한 개념은 이미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엄청난 거장들이 불가능의 범위까지 넘어서며 이뤄냈고, 이에 수많은 당대의 감상자들은 미술의 업적에 대해 감탄했다. 르네상스 전성기 이후의 화가를 꿈꾸는 이들이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었는지 여기서 알 수 있다. 당신에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보다 더 이상적인 인체와 비례, 구성을 그려보기를 기대하는 세상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 지금이야 미술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가 아닐 거라고 반박할 수 있지만(이런 단순한 생각조차도 미술을 이어온 거장들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당대에는 현실을 넘어선 이상 그 자체, 완벽한 재현이 미술이 이뤄낼 수 있는 최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당대의 감상자들조차 르네상스 전성기 이후의 예술과 예술가들에게 어떤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완벽한 재현’에만 머물렀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예술에 주목하지 않았을 테고(아마 별 흥미 없었을 것이다), 화가들은 이미 이루어진 업적만 반복할 뿐이었을 것이며, 사진이 발명된 후에는 그저 사진보다 비싼 수공업 사진 따위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술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오히려 그 완벽한 비례와 방식을 무너뜨리는 기발한 발상과 훌륭한 실력을 결합해 전에 보지 못한 이미지를 만들어 미술을 이어갔으며 우리는 이를 매너리즘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미술이란 것은 시대의 시각적인 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답과 그 너머의 범위의 가능성에 대한 예술가들의 질문과 시도로 이어져 왔고, 이는 수백 년간 사람이 보고 인식하는 것에 의지하며 그대로 표현하는 “재현”에 머무르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이 수백 년의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단단한 ‘재현’의 개념이 입체주의에 이르러 완전히 무너지며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앞으로 이어질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흠, 완전히 방아쇠를 당겨

몇백 년의 재현의 벽을 박살 냈다고 할 수 있을까.



*


‘재현’이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대해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라는 맥락으로 배우고 이해했다. 그러니까 피카소로 입체주의를 설명하려는 네다섯 줄의 정체가 바로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의 중심에는 바이올린을 그린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바이올린과 포도>가 있었다.


“바이올린”이라는 말을 인식하면 마음속으로 얼마든지 자신이 아는 바이올린의 모습을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으로 재현해낼 수 있다. 바이올린의 몸체와 그 위에 있는 현들, 몸체에 뚫려있는 포르테 모양의 구멍과 곡선이 두드러지는 부분 등등. 알고 있는 부분만 떠올릴 수 있고, 위아래 왼쪽 오른쪽 등 여러 방향에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런 여러 부분과 모습의 바이올린을 동시에 생각해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상상을 한다. 이러한 여러 모습의 바이올린을 동시에 떠올리는 상상을 할 때, 선명한 부분과 흐릿한 부분이 이 동시에 혼재할 수도 있다. 즉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바이올린은 우리가 눈으로 바이올린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이올린과 포도.jpeg
파블로 피카소, <바이올린과 포도>, 1912년,
캔버스에 유채, 50.8 x 61 cm, 뉴욕 근대 미술관



이러한 이유로 피카소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재현, 즉 마치 순간 그대로를 따라 표현한 듯한 작품들보다 부분들로 나누어지고, 흐릿하고 선명한 사물의 파편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뒤죽박죽된 형상들이 실재, 즉 사물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낸 것이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은 사물이 사진을 찍어 재현한 듯한 한 덩어리가 아닌, 여러 방향으로 바라본 파편들이 한 화면에 드러나는 모습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파편을 아주 혼잡하게 마구잡이로 두지 않았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 속 사물의 파편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들이지만 화가는 균등한 요소로 화면을 구성하여 사물이라는 일관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다시점 화면의 구성은 시간과 공간을 파괴한다. 어째서? 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도자기 하나를 내 앞에 두어보자. 우리는 한 방향만 바라볼 수 있으므로 한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상 도자기의 한 면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도자기의 뒷면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동하거나, 도자기의 방향을 돌려야 하는 공간의 이동과 이동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입체파의 작품에서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 마치 도자기를 깨트려 생긴 파편을 한 평면 위에 모두 올려놓은 것이다. 즉 현실에서 한 사물의 모든 면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의 이동과 시간이 해체된 것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넘어 한 사물의 모든 모습을 입체파의 작품을 통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입체파의 미술은 기존의 전통회화에서의 재현이 아닌, 그리고 한 사물의 여러 면을 한 화면에 드러낸다는 단순히 기발한 발상이 아닌, 사물의 진정한 실재를 재현하기 위한 답을 제안하는 예술로 탄생한 것이다.



02_파블로 피카소_르 비유 마르크 술병.jpg
파블로 피카소, 르 비유 마르크 술병, 1914년 경, 38.5x55.5cm,

왁스 칠 한 캔버스에 모래와 유화

Pablo Picasso, Le Vieux Marc, c.1914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바라본 현상이 과연 사물의 본질, 실재라고 할 수 있는가. 이건 필자가 이 프리뷰를 쓰며 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에 답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으며, 그러므로 절대적인 답은 없으니 예술가가 내놓은 작품 앞에서 마음껏 질문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언어가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더욱이나 현대미술은 그런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로 입체주의의 작품들이 사물의 재현인지 우리도 함께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절대적일 수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미술에 절대적인 것이 존재한다면 미술은 더이상 새로운 답을 찾아 나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입체주의가 이뤄낸 전통회화 속 재현의 파괴는 추상주의와 그 이후까지 미술이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이 결과로 '사물의 본질'과 같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답을 향해, 그것도 시각적인 언어를 풀어내는 예술가들의 정해진 틀없이 나아가는 미술은 현대에 이르러 흔히 말하듯이 종잡을 수 없고, 난해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뿐만 아니다. 감상자들도 저마다 가진 세계의 방식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감상과 질문들이 함께 일어나기 시작했다. 완벽한 인체, 구도, 비율로 그려진 신화의 장면과 이를 보고 모두 하나같이 감탄하며 신화의 장면을 완벽하게 그렸다는, 거의 정해진 듯한 감상은 이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술가도 작품도 감상자도 어쩌면 같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미술을 이루는 모습이지 않을까.



*


"입체주의의 탄생과 소멸에 이르는 연대기적 전시구성"


입체주의 미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입체주의 미술의 탄생 배경에서

소멸까지의 흐름을

연대기적 서술을 통해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 보도자료



생트 빅투아르산.jpeg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1885-87년,
캔버스에 유채, 64.5 ⅹ 81.6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현대미술의 이념적 바탕이라 볼 수 있는
후기 인상주의의 중요한 세 흐름 중 세잔은
인상주의가 순간적인 빛의 인상에만 주목해
균형과 질서의 감각을 잃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한 화면 구성으로
극복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세잔의 해결 방법은
입체주의의 기원이 되었다.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은 입체파의 시초가 된 후기 인상주의의 세잔부터, 입체파의 발명, 이에 이어서 탄생한 추상주의까지 아우른다. 즉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은 입체파를 이해하는 흐름 자체를 조명한다. 한 예술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걸작들과 함께 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규모의 전시가 언제 또 열릴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입체주의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것이 어떻게 추상주의로 발전했는지 그 사이의 과정은 살펴본 적이 없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아마 많은 분들이 미술사 전체를 두고 입체주의에 대해 알기 위해 피카소를 위주로 살펴봤을 뿐, 입체주의의 흐름 자체를 바라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된 입체주의인 만큼 그 흐름을 자세히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에 좋은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이유에서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09_페르낭 레제_파이프를 든 남자.jpg
페르낭 레제, 파이프를 든 남자, 1920,
91x65cm, 캔버스에 유화
Fernand Léger, L’homme à la pipe, 1920
© Musée d'artmoderne de la Ville de Paris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에 대한 프리뷰를 쓰며 들로네와 레제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조금 미리 알아보며 이 예술가들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발명 그 이후 이를 정점으로 이끌어간 화가들로서 입체주의를 살펴보는 데에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 화가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지극히 개인적인 이해지만). 색의 사용보다는 화면 분할 자체에 집중하며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피카소와 브라크에서 더 나아가 입체주의에 황금분할과 강렬한 색채 사용까지 결합한 두 화가의 시도는 입체주의가 추상주의로 이어지는 두 사이의 지점을 이해하는 데에 주목할만한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다.


07_로베르 들로네_리듬 no1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jpg
로베르 들로네, 리듬 n°1,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
1938, 529x592cm,캔버스에 유화

Robert Delaunay, Rythme n°1, décoration pour le Salon desTuileries, 1938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이 글을 읽으며 "오..." 하셨을지 모르겠다. 못하셨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되지만...(여전히 본인의 입체주의에 대한 지식에 자신이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입체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름대로의 이해에 기반해서 처음으로 입체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는데, 아는 것보다 궁금한 게 더 많이 생겨 버린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다가오는 전시회가 기대된다. 후기 인상주의부터 입체주의와 추상주의까지, 아직 자세히 학문으로 배워본 적이 없어 지식의 틀에 갇혀있는 것보다 느낄 수 있는 부분의 범위가 더 넓지 않을까 소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단순하게는 걸작들은 만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은가. 그 중 첫 해외 전시를 하게 된 들로네의 초대형 장식화들은 이번 전시회의 주목할만한 부분이 될 것 같다.


이 프리뷰는 다 함께 전시와 그 주제에 대해 나눠보는 글로 쓰였지만 스스로도 큐비즘 전시를 가기 전 조금이나마 아는 것을 한번 정리하고 다듬어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다시 이 글을 살펴보면 이해해보려는 노력 잔뜩 담은, 뭔가 지극히 미술사를 배우는 중이라는 정체를 들켜버리는(?) 그런 느낌적인 글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지식에 의존하고 있는 입체주의에 대한 나의 입장을 파헤쳐 보니 오히려 입체파의 걸작 앞에 섰을 때 감정적으로는 어떤 인상을 받고 올지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입체파, 그들의 작품 앞에서는 무엇을 느끼고 이에 대해 글을 남길지 입체파를 만나기 전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





오예찬_문화리뷰단.jpg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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