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혜정이라는 세계

영화 <어른이 되면> 리뷰
글 입력 2019.01.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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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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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떨어져 있던 자매가 함께 살기 시작하며 겪는 이런저런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만 보았기에, 사실 구체적으로 <어른이 되면>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몰랐다. 영화가 시작된 후 짧은 깨달음의 순간이 지나가자 불편한 마음이 솟았다. 영화에서 발달 장애인인 '캐릭터'를 보는 것은 불편하지 않다.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내개 생소했기에, 어두운 영화관이었음에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메라는 자주 혜정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특히 눈을 보여줄 때가 많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이야기도 있듯, 낯선 누군가를 알아갈 때 우리는 눈을 쳐다보며 그 사람을 읽어내곤 한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혜정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비로소 혼란스러움과 불편함은 사라지고 혜정이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혜정의 감정 표현, 목소리, 눈빛을 바라보며 혜정을 알아가는 것은 여느 낯선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혜정이라는 사람의 유일한 정체성으로 느껴지던 장애는 영화를 볼수록 그저 혜정이 가진 특징 중 하나로 축소되었다. 그제서야 포스터나 시놉시스에 혜정의 장애를 이야기하지 않은 의도를 깨달았다. 장애는 혜정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며 굳이 가장 앞에 올 필요가 없는 특성인 것이다. 혜정은 혜영의 동생이며, 여러 사람들의 친구다. 혜정은 노래와 음악을 좋아한다. 춤추는 것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트로트. 믹스커피를 즐겨 마시고 자기 자신을 사회인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그리고 혜정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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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7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들 각각이 소우주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서로 다르다. 그래서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혜정의 경우는 더욱 특별하다. 옆에 붙어 하루 종일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언니 혜영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혜정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서울로 이사 온 직후 그는 서울시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를 알아본다. 그러나 서울에 이사 온 지 6개월이 지나야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것을 확인한다. 게다가 받을 수 있는 활동보소 서비스시간은 단 한 번의 인터뷰만으로 결정된다. '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 한 사람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지' 묻는 혜영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혜정과 함께 살아가려다 현실의 여러 벽에 부딪히는 혜영을 보며 복지 제도의 부족함을 비판하기 이전에, 교육 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을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려는 존재이므로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을 되돌아보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 경쟁 속에서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 헷갈린다.

이 글을 쓰며 잘못된 언어를 사용할까 조심스러운 까닭도, 영화 초반부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까닭도 그만큼 내가 일상에서 장애인과 시간을 공유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 반에 한두 명씩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그 친구들과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정식으로 배운 기억은 없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에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려 해도 제도적 여건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13살의 혜정이 그러했듯 장애가 있는 사람은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



모두가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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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보다 선을 그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을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비단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만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균열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소수자성을 갖고 있기에, 습관적인 선 긋기에서 계속 안전한 기득권층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가 행복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다른 구성원도 행복하기 어렵다. 영화 속에서 혜영이 노래하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가 공감이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나 역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균열로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답의 실마리를 영화 속 혜정을 둘러싼 공동체에서 찾는다. 영화 속 친구들은 섣불리 혜정을 특별 취급하거나 틀에 가두지 않고 그저 혜정의 세계를 존중한다. 그들 사이에서 혜정은 발달 장애인이기에 앞서 오롯이 혜정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영화 속 혜정을 둘러싼 공동체는 작은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이 작은 유토피아 안에서 선입견 없이 바라본 혜정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채롭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어른이 되면>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 영화는 장애인 인권과 복지에 대한 영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다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혜정이라는 독립된 한 개인을 알아가는 영화이다. 두가지는 무관하지 않다. 후자가 선행될때 전자와 관련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혜정의 친구들이 그러햇듯 타인을 나와 같은 개인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사회 곳곳에 작은 유토피아를 만드는 일. 이것이 어른이 된 우리가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혜정의 세계, 혜영의 세계, 우리 모두의 세계가 안전하게 시간을 통과해 갈 수 있는 세상은 우리 내부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감독 장혜영

출연 장혜정, 장혜영, 유인서, 이은경, 윤정민

장르 다큐멘터리

배급 (주)시네마달

개봉 2018년 12월 13일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98분 

인디스페이스 상영 시간표
목(24) 19:30/금(25) 11:00/토(26)19:00/일(27)13:30
/월(28) 11:00/화(29) 15:00/수(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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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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