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죽음, 안락사에 대하여 [기타]

글 입력 2019.01.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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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비 포 유>의 한 장면



유능하고 부유하며 심지어 젊고 잘생긴, 그야말로 성공한 사업가였던 윌.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던 이 남자는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 환자가 되고 만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윌은 육체와 정신 모두 고통 속에 빠진 나날을 보낸다. 윌은 더는 회복의 여지가 없는 몸 상태에 안락사를 결심하게 된다. 이런 윌의 임시 간병인이 된 루이자. 사고 후 까칠하고 예민하기만 하던 윌은 순수하고 밝은 루이자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윌은 루이자를 사랑하게 되었음에도 안락사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윌의 생각을 돌려보려던 루이자도 결국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의 마지막을 지킨다.

 

영화 <미비 포 유>의 줄거리이다. 영화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영화는 일반적인 로맨스 스토리 공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스토리 흐름에서는 상처가 있는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으로 상처를 극복한다. 따라서 정석대로라면 윌은 루이자와 사랑에 빠진 후, 마음을 돌렸어야 한다. 그들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끝내 윌이 죽음을 선택하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배신감이 지나간 후, 나 또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상황을 나에게 대입해보면 그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고가 나기 전 그의 삶은 역동적이었으며 그는 그런 삶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안락사는 그의 구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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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에게 구원이 된 안락사는 정확히 무엇일까? 안락사란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그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켜 사망케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크게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적극적 안락사’는 치사량의 약물이나 독극물을 직접 주사하여 환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구체적인 행위를 행하는 안락사이다.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가 의미가 없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존엄사’와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인 ‘조력자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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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로 좋은 죽음을 의미하는 안락사(euthanasia)는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문제이며, 일부 국가는 이미 안락사를 합법화시켰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기준에는 차이가 있지만,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등이 있다. 이 중 네덜란드는 안락사에 가장 선도적인 국가이다. 2002년에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였고, 15년도 기준으로 전체 사망의 4.5%가 안락사로 인한 사망으로 집계되었다. 안락사로 인한 사망의 92%는 심각한 질병의 환자였으며, 나머지는 노령, 초기 치매 등의 환자였다. 스위스의 경우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의 안락사도 허용한다. <미비 포 유>의 윌이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떠나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를 논의할 때 빠질 수 없는 사건은 ‘보라매 병원 사건’과 ‘김 할머니 사건’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은 1997년에 의료진의 만류에도 보호자의 의지로 중환자를 퇴원시켰다가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의료진은 이 사건으로 살인방조죄를 받았고 이로 인해 병원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키는 것, 즉 존엄사를 무조건적으로 꺼리게 되었다. 이 상황을 전환한 것이 ‘김 할머니 사건’이다. 2008년에 김 할머니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으나 병원 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가족들이 소송한 결과 대법원은 가족의 손을 들어주며 존엄사를 인정했다. 이런 사건들을 거치면서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웰다잉법(존엄사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 결정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가 합법화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웰다잉법’이 시행된 것이 불과 최근의 일일 정도로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고령화 그리고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앞으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만은 없다. 굳이 멀리 볼 것 없이 지금도 적극적 안락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작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말기 암에 고통 받는 아버지가 죽을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피할 수 없는 논의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격렬한 찬반 논쟁이 따른다. 안락사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것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찬성 측 의견 첫 번째는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국민청원에서도 나타나듯, 말기 암과 같이 끔찍한 고통이 뒤따르는 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생명의 연장이 고통의 연장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죽을 권리는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므로 죽음의 권리는 신도 국가도 아닌 바로 나에게 있다. 반대 측 의견 첫 번째는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이다. 어찌 됐든 안락사는 쉽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고, 이 쉬운 방법이 생명 경시 풍조를 부를 수 있다. 두 번째는 죽음의 결정이 사회적으로 강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안락사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안락사로 위장한 범죄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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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비 포 유> 본 후 나의 생각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쪽에 힘이 실렸다. 평생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족쇄처럼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해진 몸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고통까지. 적어도 죽음의 권리는 그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락사 반대쪽의 입장도 들어보고 나니 안락사를 마냥 찬성할 수만은 없었다. 반대쪽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의 마음을 가장 흔든 반대편 주장은 죽음의 권리가 사회적으로 강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명과 돈을 동일 선상에 둘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도 공공연히 알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사람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다. 이런 상황에서 안락사가 생명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현상을 가속화 할까 우려스러웠다. 위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안락사의 이점에는 그것이 가져오는 경제적인 이득도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가장 저렴한 치료방법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렇기에 사회적 약자가 안락사를 택하지 않을 때 ‘민폐’라는 시선이 따라올 가능성이 있다. 혹자는 이상적이고 위선적이라 비난할지 몰라도 안락사 문제에서 돈은 논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없다’ 내지는 ‘모르겠다’ 이다. 여전히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 가는 터라 끝내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고통에 빠져 안락사가 구원인 사람을 외면할 수 없는 동시에 안락사가 누군가에게 의무가 될까 두렵다. 그러나 나의 이 모호한 입장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안락사 문제에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먼 미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사회구성원의 성숙하고 신중한 의견 공유가 필요할 것이다. 찬성과 반대 이 좁혀지지 않는 사이에서 현명한 답을 찾아내기를 미리 기도한다.






참고자료


안락사를 둘러싼 9가지 쟁점, 허프포스트코리아, 18.01.17


최초 안락사 합법화 네덜란드, 전체 사망의 4.5% 차지, 중앙일보, 17.08.03


‘존엄사’ 논의 불러 일으켰던 두 사건은? ‘김할머니 사건’과 ‘보라매병원 사건’, 경상일보, 17.10.23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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