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피카소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전시]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끝이 아닐 때
글 입력 2019.01.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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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는 유명한 개그이다. 모 유머 사이트에서 논란이 된 어떤 사진에서 탄생했다. 오른쪽 차를 얼핏 보면 운전자 석이 벽에 딱 붙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누군가가 댓글로 “운전자가 문을 어떻게 열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되었다.


이 개그의 포인트는 ‘못 알아들은 척’인데,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양 행동하며 웃음을 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여기서 웃는 이유가 실제로 기둥 뒤에 공간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된 후부터는 상황을 이해하기 무척 쉬워지지만 그것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바로 알아차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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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곤 한다. 착시 현상은 여기서 발생한다. 과거 많은 논쟁이 벌어졌던 이 사진을 보자. 이 사진 속 드레스의 색은 무슨 색일까?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라는 사람과 파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라라는 사람으로 첨예하게 갈리는 대립 속에서 결국 정답은 후자라는 결론이 나왔다. 드레스 색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사람의 원추 시세포 때문으로, 빛의 파장에 따라 어느 시세포가 활성화 되느냐에 따라 색을 다르게 인식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완전한 정답으로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은 드레스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논쟁한 것일 뿐 진짜 드레스가 어떤 색이냐는 것은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색 감각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처음에 이 드레스를 뇌가 어떻게 판단 하느냐에 따라 뇌 내에서 색 보정을 거치기 때문에 ‘확실한’ 착시가 벌어진다. 이처럼 단순히 빛이 밝은 지 어두운 지에 따라서도 우리가 인식하는 색이 확연히 달라지곤 하는데 과연 보이는 것을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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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Tête d’homme, 1912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입체주의는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된 미술 사조이다. 보이는 것을 완벽히 모사하는 것만이 세계의 완전한 모방이라고 믿었던 전통 회화는 ‘영혼의 세계’까지 담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점차 시각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으며 진리의 탐색과 구현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그렇게 그들은 형식이라는 한계를 깨고 나오기 시작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과 같이, 입체주의 화가들은 보이는 것들의 세계를 파괴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로 나아감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을 달아 주었다. 보이지 않는 신에게서 구원을 얻듯 입체파 화가들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세계를 원형과 비슷하게나마 구현할 수 있었다.


어떠한 한계를 탈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좌절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익숙한 세계에만 머무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가 찬사를 받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정답이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기 위해서, 드레스를 잘 고르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완전한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을 바라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알을 깨고 나오면 새가 되지만, 깨지기 만을 기다리면 후라이가 된다. 계란 후라이도 누군가의 든든한 한끼 식사로 나름 나쁜 결말은 아닐 수 있지만 새가 되어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좀 더 멋진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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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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