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거의 시간을 떠나보내며, 안녕을 말하다 [영화]

네가 더이상 무너지지 않기를
글 입력 2019.01.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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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6, 영화 <영주>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영화의 줄거리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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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10월 무렵이었다. 며칠 뒤 방문하게 될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던 중, 눈에 들어왔던 작품. 한국 영화 부문에 공식으로 초청된, 배우 김향기 주연의 <영주>. 비록 치열한 예매로 인해 다른 영화를 봐야 했지만, 공식 개봉 이후엔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영주>를 보게 되었다.


2007년에 처음 개관한 <인디스페이스>는 한국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곳이다. 비록 재정난으로 휴관을 하기도 했었지만, 2012년 5월 재개관하여 현재는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과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은 독립영화를 쉽게 찾지 않는다. 상업영화처럼 마냥 웃으며 즐겁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봐야 하는 건 바로 독립영화다. 자본에 찌들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전달하는 이야기. 이렇게 명맥을 유지하며 한국의 독립영화를 상영해주는 곳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해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사람의 따뜻한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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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스무 살을 앞두고 있는 영주. 하지만 현실의 무게는 어린 영주가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부모님. 영주에게 남은 거라곤 하나뿐인 남동생과,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다. 연락하는 가족이라곤 고모와 고모부뿐이지만, 이들은 집을 팔라고 강요하며 나중엔 영주를 외면하기까지 한다. 의지할 어른이라곤 아무도 없는 세상. 이에 보태 사고뭉치 남동생은 절도 혐의로 경찰서에 수감되고, 합의금 300만 원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날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이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부부가 운영하는 두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영주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려고 했던 걸까? 하지만 애꿎게도 사람의 마음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아저씨는 교통사고 이후로 하루하루를 죄책감에 살아가고 있다. 아줌마는 영주를 자신의 딸처럼 챙기고 아껴주며, 집에 초대해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예쁜 옷을 사주기도 한다.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스한 보살핌의 손길, 그리고 끝없는 애정. 영주는 혼란스럽다. 우리 부모를 죽이고, 내가 불행을 떠안도록 만든 그들인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좋아하게 돼버린 것 같다.


부부의 외동아들은 몇 년 전 식물인간이 되어 침실에 누워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부부를 찾아온 영주는 누구보다 반가운 존재였을 것이다. 영주 또한 오랜 시간 부모의 보살핌과 챙김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로 살아왔다. 자신을 가족처럼 챙기며 자신을 예뻐하는 부부.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던 걸까.




마주한 진실은 달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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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동생은 그런 누나를 곱게 보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거냐고, 우리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지도 않냐며 소리치는 동생에게 영주는 말한다.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해?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엄마 아빠는 이렇게 세상에 우리를 버리고 떠났어.

근데 그분들은 내게 잘해주고, 날 좋아해 주고

심지어 너 합의금도 일하면서 천천히 갚으라고 건네줬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그 아줌마랑 아저씨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영주의 마음 한켠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동생의 요구에 못 이겨 영주는 밤이 깊은 새벽, 부부네 집으로 달려간다. 진실을 더 이상 불편하게 숨기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다. 자신이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의 딸이라는 걸 말하기로.


하지만 역시, 그러지 말아야 했던 걸까. 진실은 그다지 달콤하지 않다는 걸 잊고 있었나 보다. 더 이상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그때처럼 밝게 웃을 수도, 서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 아줌마와 아저씨 얼굴을 다시 볼 순 없을 것 같다. 이제야 이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나 했더니, 영주에게 남은 건 끝없는 절망뿐. 후회와 자책감이 밀물처럼 떠밀려온다.




절망이여,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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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곳곳이 배인 영주의 삶. 부부를 만나 이제는 행복을 꿈꿔도 되는가 싶었다. 부부의 집을 나온 영주는 아직 새벽에 잠긴 강변 다리를 걷는다. 이제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도 없고, 의지도 사라졌다. 다리 난간 위에 서서 깊은 강물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아래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순간, 애석하게도 날이 밝아오고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떠오르고 있는 태양. 영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나는 그 순간 해가 밝아오지 않았다면, 영주가 강물 아래로 몸을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해가 떠오르던 순간은 영주가 과거 지나왔던 모든 시절과 안녕을 고하던 순간 아니었을까? 상실과 애도, 그리고 절망으로 가득 찼던 영주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떠나보낼 시간. 과거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디딜 시간. 영주는 날이 밝아온 세상을 다시 걸어가고 있다.



“인생은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는 상징적으로 죽음에 빚지고 있고,

제 이야기지만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다.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영주> 감독 인터뷰 中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영주의 심리를 세밀하게 쫓으며 개인의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세상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영주>. 이별과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이 영화가 한 줌의 위로가 되어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기를, 영화를 통해 감독 또한 과거의 시간을 덜어내고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었기를. 삶은 자주 고통스럽고 끔찍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존재하기에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 고달픈 하루를 버텨낼 수 있다. 영주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를, 지금보다 조금 덜 슬퍼하고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따뜻한 마음을 지닌 누군가를 다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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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Young-ju (2018)

감독: 차성덕 / 주연: 김향기, 김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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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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