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도서]

여행지에서 만난 박준의 산문집
글 입력 2019.01.2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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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볼을 때리기도 하고 어느새 따뜻한 햇볕이 다가와 몸을 녹여주기도 했던 그런 이상한 날에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분위기는 내내 조용하고도 한적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책을 챙겨갈까 말까 나는 항상 고민한다. 책을 가져갔다가 한번 펼쳐보지도 않고 그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은 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 역시 책을 챙기지 않았다. 그러나 떠난 여행에서 만난 책은 바로 시인 박준의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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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을 몇 번이고 곱씹었던 것 같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다. 슬픈 일을 겪거나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혹은 억울할 때 , 서운할 때 대개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아마 눈물을 보이기 싫어 꾹 참고 넘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엉엉 소리를 내서 운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바꿀 순 없다. 그러나 그런 암울한 감정들은 항상 꾹꾹 내면에 눌러가며 살아갈 수도 없다.


그러다간 화를 불러온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흐를 땐 그냥 우는 것도 좋다. 슬플 땐 울거나 그 감정을 온전히 느껴야 기쁨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약간의 후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물과 동시에 슬픔이 떠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이번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의 첫 산문집이다. 짧고도 긴 문장들이 책 속에 가볍게 실려있다. 어떻게 보면 시집 같기도 산문집 같기도 한 박준 작가의 책은 어느 장소에서나 읽고 싶은 페이지를 설렁 설렁 넘겨 읽어 보아도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저자가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들, 지인으로부터 배울 말들 등 그것에서 오는 저자의 느낀 점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차분하고도 깔끔한 말투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으면서는 책이 바로 옆에 있는 듯, 친구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 도중에 읽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책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평소 책을 한 권 다 읽으려면 몇 주씩 걸리던 나 자신이 의아스러울 정도로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관련된 글이 많이 있었고 때마침 여행 중이었던 내가 그 글을 읽고 공감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
 

그중에서도 가장 공감되는 구절을 옮겨보았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스스로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여행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을 소중하게, 감사하게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한동안은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을 하면서는 가족과 집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이전의 여행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우스갯소리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주고 받기도 했다. 저 글처럼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내가 다시 찾은 그 여행지에서 내내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안도감이다. 이 안도감이란 왠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다며 불안해했던 처음 여행 때의 생각을 보란듯이 부정하는 것에서 온다. 또한 이제 두번째이니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도그리 아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도 온다. 물론 이 '여행' 이라는 말을 지우고 그 자리에 '만남'이나 '연애'라는 말을 넣어도 뜻은 통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꼭 일출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난 강릉을 갔을 때도 날씨가 흐려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속초 여행에 나에겐 첫 일출 보기 버킷리스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 날 일출 명소로 유명한 낙산사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새벽부터 모여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가 흐림이라는 말을 듣고 거의 반포기 상태였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해를 기다리는 같은 마음들이 그 곳에 모여있었다. 결국 해를 보진 못했다. 아쉽고 아쉬웠다.


처음으로 간 여행지에서는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하고 오려고 한다. 일출도 그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유명한 것, 맛있는 것은 다 하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번 여행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내가 또 언제 와보겠어' 그러나 사실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작가처럼 다시 찾은 여행지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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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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