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11화: 제가 봤어요.

글 입력 2019.01.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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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여러분은 둘 중 어떤 것을 믿으시나.

난 성악설을 믿는다.



11화: 제가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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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였다. 아마 2학년이었을 것이다. 예진(가명)이라는 같은 반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끼리 으레 그러하듯이 나는 예진이를 집에 초대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와 예진이 단 둘 뿐이었다.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별다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별 일 없이 잘 놀았던 것 같다.

별 일은 그날 저녁에 터졌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보석함이 텅 비어버린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음 날 엄마는 학교에 찾아왔고, 담임과 면담을 했다. 면담이 끝난 후 담임은 내 앞에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어제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있었던 일을 모두 쓰렴. 최대한 자세히.’라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랐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도 대충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1. 문을 열었다.
2. 현관에다 신발을 벗었다.
3. 예진이와 내 방에 들어가서 햄토리 집을 가지고 놀았다.
4. 해바라기 씨를 가지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5. 화장대 위에 보석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똑똑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내 손으로 적은 이 다음의 문장이다.


6. 예진이가 순간 눈을 빛냈다.


그리고 예진이는 하필이면 임대 아파트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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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진이가 보석을 훔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눈을 빛내는 것 역시 당연히 보지 못했다. 누가 봐도 너무나 주관적인 증언이지만 그래도 위증은 위증이었다.

왜 그런 문장을 쓸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예진이가 미웠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유달리 심술궂은 아이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보석이 없어진 일이 그만큼 심각한 일인 줄 몰랐으며, 그 심각한 일을 내 친구와 연결 지으면 더욱 심각해진다는 것 역시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별 의도도 없이 거짓말을 했을까. 아마 어른들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어른들이 예진이를, 그것도 임대 아파트에 사는 예진이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도둑이 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 누구도 그러한 가정 따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른들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어른들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너무나도 어설픈 증거를 탄생시켰다. 어린아이 특유의 귀여운 어설픔을 위증을 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젠시가 위기에 처한 무니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가던데. 난 손을 잡지 않은 것도 모자라 걷어 차버렸다. 그리고 힘 있는 어른들의 편에 섰다. 고민조차 없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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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 후로 나와 엄마는 예진이네 임대 아파트에 직접 찾아갔고, 예진이의 할머니까지 만났다. 하지만 예진이는 한사코 범행을 부인했다. 결국 엄마와 나는 사라진 보석을 되찾지 못했고, 그렇게 사건은 묻혔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4학년쯤에 예진이와 다시 한 번 같은 반이 되었다. 나는 예진이를 피했고, 예진이는 나를 욕했다.

5학년이 되었다. 나는 엄마들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꽤 ‘건전한’ 아이들의 모임, 중창단에 합류했다. ‘난 네가 좋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 같은 식의 노래를 부르며 차츰 예진이를 잊어갔고 공부를 하며, 꿈을 꾸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그 때의 일들과 위증을 완전히 지워냈다.

그리고 얼마 전.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그 때의 생각이 났다. 10년도 더 지난 그 때의 일이 말이다. 데미안을 생각하며 똑똑한 척, 다 아는 척 인간의 복잡다단함을 생각하고 있던 내가 우스웠다. 난 정말 별 것 아니었다.

성선설과 성악설. 여러분은 둘 중 어떤 것을 믿으시나.

난 성악설을 믿는다. 이것저것 재지조차 않고 거짓말과 위증을 했던 그 때, 나는 고작 9살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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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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