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영화]

상황이 개인을 만들 뿐, 원망할 것은 '누군가'가 아니다
글 입력 2019.01.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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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독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 어쩌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욕망은 결핍에서 발생하기에, 이러한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돈이 부족해서 무언가를 못한 경험이 별로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오늘은 얼마짜리의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지 매일 고민하는 삶을 아마 나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며 돈이 없으면 차라리 굶고 말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매일 굶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유독 꺼리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쭉 살아온 나는 유독 우리 아파트 단지가 좋았다. 근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우리 아파트에는 나무가 많았다. 봄에는 철쭉이 가득 피었고 여름이 되면 나무가 푸르러서 가위로 잘라주지 않아도 보기 좋았다. 그런 나무 위에는 까치집이 종종 보였고 우리는 가을이 되면 그들을 위해 까치 밥을 남겨 주었다. 곳곳에 놓인 수석은 징검다리 같아서 우리는 그 위를 뛰어 놀았고 겨울이 되면 사이 사이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런 우리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자랐다. 그런데 어른들은 우리 동네를 가난한 동네라 불렀다. 과거엔 달동네였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우리 아파트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속삭였다. 그건 아파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른이 될수록 우리 동네에 대해 자조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내가 우리 아파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구질구질 해져갔다.


살면서 가난을 느끼지 않았음에도 나는 나를 가난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것은 모순적이게도 돈에 구애 받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번졌다. 누군가가 내게 그것은 돈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싫었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가난하다고 말하던 동네가 나에겐 너무 좋은 곳이어서 내 머릿속 돈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졌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과연 무엇이며 무엇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기에 나는 그냥 그런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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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버블 패밀리’를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애써 외면해 온 그 주제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집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내가 누렸던 사계절의 일상은 그 속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동네 편의점에서 잠깐 일했을 때 가끔 낯선 사람들이 들러서 이곳에서 역까지 가는 데에는 어떤 방법들이 있으며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 때 나의 대답을 듣고 여긴 별로라며 나가는 모습에서 나는 왠지 허무함을 느꼈다. 만약 버스 정류장이 더 생긴다면, 기적처럼 더 가까운 곳에 지하철이 생긴다면 이곳의 가치는 확실하게 뛰겠지.

대중 교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더 먼 미래에선 또 다시 다른 조건으로 이곳의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상황은 항상 변화하고, 가치는 유동적이다. 1980년대 도시 개발의 붐 속에서 치솟아 오른 땅의 가치가 그린 벨트로 묶여 빌딩으로 개발되지 못한 순간 푹 꺼져 버렸듯이 말이다. 집은 단순히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자기 명의로 된 안식처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집은 평생의 꿈이지만, 이미 어딘가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집은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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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지 감독은 “’버블 패밀리’가족은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때 IMF를 겪었던 혹은 8,90년대를 지냈던 가족들이 겪었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일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을 담고 있지만 관객들은 모두 그 감정을 공감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마련된 GV(감독과의 대화)에서 사람들은 구원의 의미로서의 집을 말했다. 내가 과연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집을 가지기 위해 내가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그리고 어떤 상황이 그런 욕망으로부터 나를 좌절시켰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반대의 상황을 가진 사람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의 주인이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세를 올리고, 누군가를 내쫓는 상황을 경험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도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나의 동행인 A는 이를 미시경제를 통해 거시경제를 엿본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국가가 직면한 상황 속에서 나약한 개인들은 엇비슷한 삶을 살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사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큰 줄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내가 잘못이라면 돈을 좇다가 망한 이들은 잘못이 아닌 걸까? 개인의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돈과 집은 그것의 일부일 뿐이다. 그것은 가치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 욕망은 실현될 수도,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욕망은 이뤄지지 않을수록 거대해지기에 바라는 것이 간절할수록 실현 불가능할 확률이 크다. 잘못한 것은 개인이 아니다. 상황이 개인을 만드는 것이다. 마민지 감독이 영화 말미에서 비로소 가족을 이해하게 된 이유는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재의 ‘마 가족’을 만든 것은 8,90년대의 대한민국일 뿐, 온전한 그들의 몫은 아니다. 그것에 대한 깨달음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던 구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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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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