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놀이에 대해 들여다보다 : 뉴필로소퍼 no.4 [도서]

글 입력 2019.01.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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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무엇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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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정의) : 꼭 어린 아이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놀이하면 떠오르는 것은 옛날엔 얼음땡,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메이플 스토리, 달리기 시합 등 이런 것들이었다. 보통은 친구들과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겨했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온라인 게임을 많이 했다. 유튜브에서 게임 BGM을 듣다가 싱숭생숭 해지는 이 때가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순수하게 목적 없이 놀았던 그 시절.

지금의 놀이들은 그 때만큼의 재미가 없다. 그보다도, 내가 놀기 위해 하는 것이 있는지를 먼저 따져보았을 때 어린 시절의 놀이들만큼 바로 나오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먹고 사는 판에 진입한다는 것이지, 놀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말이다. 일이나 공부를 하고나면 놀이보단 휴식을-보통 잠- 택하거나 집안‘일’을 다시 한다.

효율과 능률을 올리는 것은 시간을 잘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지만, 정말 잘 쓰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결국 지나친 조임에 탈진하거나 헤매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떻게 공부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10대 시절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딴짓의 힘이었다. 10시간, 14시간 공부하면서 중간 중간 친구들과 빙고 게임을 하거나 책방에 가서 만화책을 잔뜩 빌려서 읽거나 하는 것들이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더 길게 더 오래 가기 위해선 자신을 위한 즐거움, 놀이가 빠질 수 없는 가보다.



6thinkers 중 시인, 레티샤 엘리자베스 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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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도서관의 지식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아니다. 젊어서의 지나친 고독은 활동적인 성인이 되기 위한 바람직한 준비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또래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는 공통점이 있어야 타인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놀이터는 경쟁적인 이해관계와 불의가 존재하고 순간적인 재치와 자제심이 요구되는 세상의 축소판이자 미래상이다.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가면 해묵은 경쟁이 점점 더 가혹해지고, 동일한 성공임에도 즐거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채로 얻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보면서 에피쿠로스의 공동체 생활이 떠올랐다. 절제된 쾌락과 마음 맞는 친구들, 자급자족, 토론의 일상화 등 생각만 해도 행복한 그 곳이 성립되기 위해선 이 시인의 말대로 어울림이 중요하다. 타인과 만나는 것이 놀이처럼 느껴지려면 의무감에 억지로 같이 있거나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사람이 아니도록 맞춰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나는 도서관을 좋아해서 종종 동네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을 놀이처럼 찾아간다. 그곳의 냄새를 맡고 원하는 책을 읽다가도 다른 서가에 가서 제목을 한번 죽 훑어보는 것이 재밌다. 웬만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보다 즐거움이 더 크지만, 사람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도서관 대신 약속을 잡고, 카페에 간다. 이전에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면 요즘은 잘 맞는 사람, 편안한 사람 위주로 약속을 잡는다. 한정된 시간과 마음과 돈을 쓸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그 사람이 소중하고 편안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같이 놀고, 대화하고, 여행도 가고, 어떤 일도 함께 해나가는 과정에서 부딪힘도 잦았고 때론 힘겹기도 했다. 나와의 다름에 지쳐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다름이 신기해서 자꾸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 관계가 되고 서로의 선을 깨닫게 되며 존중하게 되었다.

생산적인 관계는 분명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시간과 감정을 쏟아 부어도 될까 말까 하는 확률은 비즈니스를 위해서, 인맥을 위해서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놀이를 생산성과 연결 짓지 않는 것처럼 관계도 그렇다.



패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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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포장해도 패배는 패배다. 실패는 실패다. 뼈저리게 아프고 분하고 슬프다. 다행히 나는 아직 인생을 건 승부나 평생의 꿈에 져본 적이 없다. 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런데 이런 패배가 오히려 차후 승리를 이끌어낸 경우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삼성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한 항의로 회사와 싸웠고 졌고, 시사주간지 <시사IN>을 창업하고 성공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 기독교 국가였고, 그럼에도 싸웠으며 지금 국토 곳곳에 남은 흔적들이 후대의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스위스에 있는 ‘빈사의 사자산’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스위스 용병들의 신위에 관한 증거다. 용병업으로 먹고 살았던 과거의 스위스인들에게 고용주와의 신뢰는 후대를 위해서도 목숨처럼 중요한 것이었다. 혁명에 맞서 786명의 용병은 패배했지만 오늘날 그들은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다.

먼 이국의 과거에서부터 가까운 오늘날 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패배가 있었다. 내 주위에도 많고 나 역시도 거창하지 않아도 있다. 그러나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실패는 실패라는 낙인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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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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