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워라밸 시대, 우리는 잘 놀 수 있을까?

뉴필로소퍼 VOL.4
글 입력 2019.01.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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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VOL.4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워라밸의 시대, 잘 놀 수 있을까?


놀이, 오락, 유희란 단어를 들으면 야외나 특정 장소에서 하는 신체적인 활동이 떠오른다. 동호회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주말에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거나, 애인과 함께 데이트 명소에 가는 행위가 대략 비슷하다. 똑같이 정적이지만 책을 읽는 것보다 웹툰을 보는 게 놀이 같다. 후자가 더 재미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건 건전한 취미생활이고 웹툰을 읽고 게임을 하는 건 철없는 행동으로 본다.

한때 미디어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라고 해대서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을 쪼개 어학 공부를 했다. 퇴근해서 운동을 배우거나 공부하러 학원에 갔다. 그랬더니 누가 요즘 사람들은 여가시간도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게 과연 옳은 거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때 나는 워라밸과 상관없는 학생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멍했다. 우리는 유익한 취미에 가산점을 붙이며 높이 평가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될 것처럼 굴었다.

직장인이 되고 보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는 말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아침에 겨우 눈을 떠서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점심시간 잠깐 햇빛을 보고 다시 일하고 퇴근한다. 밥 먹고 씻으면 밤이 된다. 드라마 한 편 보면 잘 시간이 다가온다. 왜 재밌는 예능은 다 12시 넘어까지 하는지, 예능까지 챙겨보면 최소한의 수면시간만 남는다. 언제 운동을 하고 언제 공부를 하나, 그럴 시간은커녕 체력조차 찾기 힘든데.

출퇴근 길에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으면 무협 소설, 게임, 웹툰, 예능, 드라마, 유머 글, 클립 영상 등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노는 법을 아는 것은 축복받은 재능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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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굳이 뭘 하면서 노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다. 이번 뉴필로소퍼를 신청하고도 나와 맞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했다. 그래서 잡지를 받아보고 뒤에서부터 읽었다. 힐러리 로슨의 문답을 읽고 팀 딘의 게으름을 선택할 자유를 읽으면서 흥미가 생겼고 이미 알고 있는 죄수의 딜레마를 보니 마음이 풀어졌고 놀이에 대한 사상가들의 글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책을 엎어놓고 놀이, 논다, 유희, 오락 등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봤다. 이번 호의 주요 키워드의 의미는 '재미있고 즐거운 활동'이었다.

최근에 재미있고 즐거운 활동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공연을 보고, 사진전에 가고, 갤러리를 둘러보는 건 내가 좋아하고 만족도가 높은 일이었지만 재미를 따지자면 애매하다. 일과 놀이를 두고 저울질을 해봤다. 시작과 동시에 놀이가 이겼다. 하지만 나는 일보다 놀이보다 '휴식'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나는 설마 놀 줄 모르는 사람일까?



"놀고 싶은 욕구는 근본적으로 존재의 욕구이다" -장 폴 사르트르


그래도 내가 그냥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테니 작년의 기억까지 긁어모아 다시 생각해봤다. 12월에는 갑자기 여행을 다녀왔는데 갈 때 '잘 놀고 와'라는 인사를 많이 들었다. 그렇다, 여행도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다. 봄에는 꽃구경, 가을에는 단풍을 구경했다. 각각 꽃놀이 단풍놀이로 표현할 수 있다. 돗자리를 챙겨 공원과 강으로 갔던 것도 놀이. 그러고 보니 오늘 딸기를 으깨고 설탕에 절이고 우유 거품을 내고 유리잔에 담고 티코스터를 깔아 카페 분위기를 냈으니 이건 홈카페 놀이겠다. 아닌 듯해도 사람은 놀이와 완전 무관할 수 없다.

어렸을 땐 세상 많은 일이 다 놀이였다. 집에서 장난감과 인형을 가지고 하는 소꿉놀이, 동네 친구들과 모여 미끄럼틀과 그네를 탔던 것도 놀이, 이유 없는 달음박질마저 놀이. 추운 겨울날 추위도 모르고 외투를 벗어가며 꺄르르 소리 지르며 시간을 보내게 했던 것도 놀이. 어른은 그 때와 같은 놀이를 하며 살 수 없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놀이가 어른의 놀이 생활에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소꿉놀이 대신 미니어처를 모으고 인형을 리페인팅한다. 쉬는 시간에 나가 공을 차던 아이들은 휴일에 모여 공을 차는 어른이 된다. 놀이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를 바꿔가며 일상과 함께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제임스 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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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강조하는 건 그만큼 사람의 삶에서 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9 to 6이라는데 6시가 넘어 석식을 챙기고 야근에 돌입한다. 선명하게 떠오른 달과 함께 퇴근한다. 나만의 시간을 챙기려면 수면시간을 쪼개야 한다. 그렇게 5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 중 하루는 쉬어야 피로가 풀린다. 그런데 막상 집에만 있자니 억울해서 밖에 나가게 된다. 일로 점철된 일상을 탈피하려면 놀 수밖에 없다. 일주일 중 5일을 일이 차지하고 있으니 남은 2일 동안 잘 놀아서 삶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워크가 삶을 점령하면서 '쉬고 싶다', '놀고 싶다'는 말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삶은 별다른 자극 없이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흐른다. 어린 시절 숨 쉬듯 자연스럽게 했던 놀이가 어른이 되면 일상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나 탈출구가 된다. 삶이 무료하고 말고 재미있고 없음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살고 싶어 우리는 오늘도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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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vol 4 :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분량: 172쪽
정가: 15,000원
판형: 180*245mm 
출간일: 2018년 10월 1일
바코드: 977-2586-4760-0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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