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속 할 말 많은 여자들 (2편) [공연예술]

그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1.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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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뮤지컬 캐릭터와의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너와 나 단 한 번의 순간, 또 다시 오지 않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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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이하 'E'): 프란체스카 부인, 안녕하세요? 오는 길에 자제 분들을 봤어요. 아주 늠름하고 멋지던데요?


프란체스카(이하 ‘프’): 아, 오랜만에 애들이랑 같이 저녁을 먹었거든요. 요새 애들이 다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서 자주 못 보는 게 아쉬운데, 이렇게 가끔씩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E: 그렇겠네요. 하긴, 모두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키우느라 바쁠 테니까요.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프: 저야 뭐, 요리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혼자 있을 때도 요리는 자주 하는 편이에요. 파이나 케이크 같은 걸 구울 땐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요. 아직 솜씨가 죽지는 않았나봐요.

E: 어우, 그럼요. 오는 길에도 고소한 냄새가 엄청나던데요. 아, 그리고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인데, 저 벽에 걸린 사진은 젊었을 적 부인이신가요?

프: 아, 네. 저예요. 아주 오래 전이죠. 아이들이 어렸을 때고, 애 아빠가 살아있을 때고, 또 제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절이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했던 슬픈 시절이었기도 했고요. 내 인생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내 삶은 왜 이리 허망한지 우울해하기도 했어요.

E: 저 사진을 찍어주신 분은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요. 필름에 새겨진 저 시절의 내 모습처럼 그 사람과의 하루하루, 1분1초는 제 마음 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어요. 그 사람은 나의 선택을 존중했어요. 그리고 난 그 사람이 날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잊기를 바라기도 했고, 잊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웃기죠? 사람 마음이라는 게 되게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척을 하는 법이거든요. 전 그 사람이 저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날 평생 기억해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어요. 마치 내가 평생 그 사람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E: 그렇다면 왜 그 분과 함께하지 않았나요?

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우리 아이들, 가정, 내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사람들. 이 모두를 버리고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스러운 만큼 내 아이들도 사랑스러웠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E: 힘든 결정이었겠어요.

프: 아주 힘들었지요.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E: 혹시 후회하시나요?

프: 후회하지는 않아요. 단언컨대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선택했어요. 무엇을 선택하든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이었으니, 평생의 그리움은 그 대가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소중했던 만큼 아팠지만, 인생에서 다시없던 행복한 기억이었고 설레는 시간이었으니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

인생에 다시없는 사랑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평생에 한 번뿐인 운명적인 사랑을 포기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할까. 부인의 순하고 포근한 눈매 속에 환하게 빛나는 강한 눈빛이 숨어 있었다. 오븐에서 마늘향이 진하게 풍겨 오자, 부인께서는 요리가 다 된 것 같다며 황급히 인터뷰를 중지했다. 어쩌다보니 마늘빵 하나를 문 채로 집을 나서게 됐다. 인터뷰의 마무리가 마늘빵이라니, 조금 독특했던 인터뷰였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변화, 안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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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안녕하세요, 엠마 홀트 부인. 아까 이 집에 들어오면서 보니까 정원에 꽃이 굉장히 예쁘게 피었더라고요. 직접 심으신 건가요?

엠마 홀트(이하 ‘엠’): 어, 직접 심었지. 원래 황량한 흙길이었는데 스톤이 자꾸 꽃 심어라, 정원 가꿔라, 물 줘라 난리 난리를 쳐서 말이야.

E; 아, 스톤이 혹시 그 생활도우미 로봇인가요? 유명하더라고요, 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도 낸다고 이웃 주민이 말씀해주시던데요?

엠: 이 자식, 정말... 하여간에 골칫덩어리라니까. 깡통 같이 생긴 주제에. 근데 또 일은 잘해요. 청소, 빨래, 설거지, 잔소리, 운동, 뭐, 가끔 보면 진짜 사람 같아서 나도 놀란다고.

스톤: 그게 저의 자부심입니다!

엠: 넌 좀 가만히 있어, 좀.

스톤: 네!

E: 아... 사이가 되게 좋아 보이세요. 아까부터 계속 웃고 계신 걸 보니까. 그나저나 원래 이 마을에서 조용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셨다면서요? 밖도 안 나가고, 주민들이랑 이야기도 안 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엠: 오랫동안 그렇게 살긴 했지. 남들이랑 얘기하는 것만큼 피곤한 것도 없었거든. 나이 들어 보세요. 걷는 것도 아주 피곤해 죽겠는데, 꼭 입까지 놀려야겠어? 이런 생각 든다니까. 그리고 여기 마을 이름부터가 싱글 마을이잖소. 다들 혼자 사는 인생인데 뭐 하러 내가 끼어들어.

E: 지금 모습 보면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웃음) 변하시게 된 계기라도 있으신지요?

엠: 이 로봇 때문이긴 해. 얘가 처음에는 그렇게 귀찮게 굴더니만 점점 익숙해지는 건지, 정이 가는 건지. 정신 차려 보니 얘 따라서 마을 산책을 하고 있더라고.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 마시면서 걸으니까 기분도 나름 좋고 해서 종종 나오게 됐지요. 이렇게 집에만 있어봤자 나한테 좋을 거 하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아야 하잖아.

*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스톤의 눈빛 때문에 집중이 몇 번 깨질 뻔 했다. ‘초롱초롱’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눈빛,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푸근한 미소와 당당한 말투를 가진 홀트 부인 또한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소중히 간직해둘 것이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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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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