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은 깨어나기 마련, 현실은 나아가야 하니까 : 영화 '영주'

글 입력 2019.01.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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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페이스와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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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조금 늦었다. 혼자 영화보기, 일명 ‘혼영’도 익숙한 나는 영화관을 자주 다니는 타입이라 영화 시간에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뒤늦게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이었는데 세상에. 서울 극장과 인디스페이스를 처음 가본 터라 둘의 공간 구분이 쉽지 않았다. 당최 건물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지금도 궁금할 정도랄까. 안내 직원 또한 부재하여 친구와 한참을 헤맨 것 같다. 묻고 물어 찾은 매표소는 옛날 매표소를 떠올리게끔 했고, 어렵게 도착한 영화 상영관 또한 예전 느낌을 내었다. 직접 상영관 문을 열어본 것은 오랜만이었는데 당황스러움에 가득 찬 채 조용히 입장했다.


자리에 앉은 후 스크린에는 영주와 영인이 식탁 의자에 마주보고 앉아 웃고 있었다. 서로를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웃음이었을까. 앞 장면을 보지 못한만큼 재빨리 스토리를 파악했다. 몇 장면이 지나갔지만 영주와 영인은 큰 가정집에 덩그라니 두 명 뿐이었다. 아, 부모님이 돌아가셨구나. 왠지 모르게 어린 두 아이의 웃음이 앞으로의 어려운 미래를 가져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주가 짊어진 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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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고작 19살이었다. 다들 영주를 어른아이라고 부르며 영주의 성숙함을 칭찬하고, 그녀 또한 엄마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그 무게를 견뎌낼 만한 단단한 나이가 아님은 분명하다. 합의금도 조금 밖에 받지 못해 잔고는 점점 바닥을 보여가고, 가족들의 향기가 묻어 있는 집이 그들에게 남은 전부였다. 엄마 아빠, 영주와 영인이가 도란도란 살던 가정집을 쉬이 팔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남은 친척은 어린 아이라고 무시가 앞서는 고모와 영인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고모부 뿐. 동생의 반찬을 차려 놓은 채 일용직 마트 아르바이트로 출근해 하루 생활비를 버는 영주는 고작 19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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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전체적인 서사는 영인의 사고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님의 제사 날, 제사상을 고스란히 차려 놓고 영인을 기다리는 도중 형광등이 고장난 듯 꺼진다. 순간 집은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찼다. 영주가 건드려 다시 빛이 집을 메웠고 기다린 듯 요란스레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영인의 소식은 그렇게 찾아왔다. (연출이 대단한 장면이다)


피시방 주인을 위협하고 강도질을 한 혐의로 합의금 300만을 요구받은 영인의 죄는 오로지 영주의 것이 되었다. 호통을 치고 꾸짖어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영인을 보고 영주가 먼저 뱉은 말은 “괜찮아. 누나가 알아서 할게” 였다. 안그래도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에 당장 막막한 그녀였지만 동생에게는 누나로서 책임감을 먼저 표현한다. 영인 앞에서 나타나는 영주의 강인한 표정과 혼자 있을 때 나타나는 근심의 차이가 나를 자꾸만 울렸다. 동생이 미울 것이지만 혈육으로 남은 하나뿐인 동생이었기에 당장 그녀에게 300만원은 절박했다.


이런 무게를 진 영주에게 복은 내려주지 못할 망정 세상은 타인에게 참 무심하고도 차갑다. 금융 사기까지 당한 영주가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펴 본 것은 고모의 절박함이 함께 적혀 있는 판결문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범인의 주소. 순식간에 찾아온 불행은 대체 누구로부터 야기되었는지, 그 사람은 잘 살고 있는지 매우 궁금 했으리라. 그리고 아마 사소한 복수를 꿈꿨을 것이다.




상실과 만남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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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 좋은 사람이야”
- 영주


“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

-향숙



두 가족은 각자 비워진 부분이 있다. 영주와 영인에게는 엄마 아빠의 부재로 부모님의 존재가 그리웠고, 승일이네는 식물인간 상태의 승일이를 간호하며 예전 건강했던 모습을 자꾸만 상기시킨다. 승일이 엄마 아빠 모두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승일엄마’ ’승일아빠’로 호명되는 것을 보면, 그리고 현재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게가 ‘승일두부’인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녀의 존재를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채워주며 가까워졌다. 영주는 승일 엄마로부터 엄마의 따뜻함을 느꼈고, 승일 엄마는 영주를 마치 자식처럼 여기며 이렇게 행복한 적은 오랜만이라고 말한다. 영주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복수의 마음은 사르르 사라져만 갔고 그 자리는 사랑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의 상실을 채워주며 가까워지고 행복하게끔 만들어준 그들의 만남은 사실 상실을 불러일으킨 원인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라, 어쩌면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잠시 행복한 꿈을 꾸듯이 영주는 이런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실제로 일어진다면 기함을 먼저 내뱉을 상황이고 언젠가 끝이 정해져 있는 상황이지만 영화 내내 영주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인지라 잠시 나도 꿈에 빠졌던 것 같다.




영주와 배우 김향기의 가운데 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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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영주 역을 맡은 김향기의 연기력은 대단하다. 주인공의 이름을 영화의 제목으로 정했을 정도로 영주는 이번 영화를 이끌고 가는 주체이다. 그녀의 얼굴은 자주 클로즈업 되어 감정을 드러내고, 그녀의 감정은 곧 극의 서사이다. 평소 동생에게 대하는 영주의 태도는 친절함이자 책임감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덕분에 말도 안되는 합의금을 벌어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금융 사기라는 쓴 맛과 도둑질이라는 위험한 결정을 해야 했지만 영주는 동생에게 제일 먼저 “괜찮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승일네 가족을 만나며 동생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 또다시 사건을 벌여 경찰서에 불려간 동생에게 “미쳤어, 너 어쩌려고 그래!”하면서 호통을 지르기도 하고, 동생에게 너가 창피하다고 솔직한 마음을 처음 말한다. 애초에 아이가 짊어질 수 있는 삶의 무게가 아니었지만, 승일네 가족을 엄마 아빠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기댈 곳이 생긴 영주는 어쩌면 투정을 부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이 당장 가게를 그만두라며 영주에게 소리칠 때 영주의 표정은 아주 싸늘하다. 그렇게 싸늘하고 냉정한 모습은 극 중 처음이었다. 배우 김향기의 연기력이 고스란히 느껴져 소름 돋을 정도의 연기였다. 책임감을 지닌 아이는 동생에게 한없이 상냥하게 굴고 꾹꾹 참아내지만, 꿈에 빠진 후 영주는 정색과 함께 동생에게 반박한다.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을 최대한으로 부각한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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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족을 잃은 영주의 마지막 모습은 위태로웠다. 한강 다리에서 한참 밑을 바라보던 영주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루 밤이 지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그녀에게 찾아온 감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몸을 한껏 앞으로 숙여보지만 결국에는 다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특유의 새벽 공기는 영주의 울음 소리에 더해져 분위기를 한껏 상기시킨다.


그래도 한참 눈물을 쏟던 영주는 일어났다. 그리고 한강 다리를 걷기 시작하며 영화 ‘영주’는 막을 내린다. 어쩌면 마지막 장면은 영주의 삶을 의미하는 행동이었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도 동생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나아갔던 그녀 답게 이번 절망에도 영주는 현실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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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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