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일상에 철학을, 뉴필로소퍼 [도서]

자신을 갉아먹는 중독에서 벗어나, 즐거운 놀이를 하도록
글 입력 2019.01.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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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잡지는 가볍게 지나가는 토픽 정도인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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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hilosopher, 뉴필로소퍼, 이것은 철학 잡지다.

철학 잡지? 나는 철학 잡지라는 것을 난생처음 들었다.

잡지란 매체는 그저 일정 분야의 주제에 대해서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양식의 책이라고만 알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지식을 다루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신문 기사보다도 수명이 짧고, 고객의 범위도 좁아서 매우 신중해야 하면서도, 그 시대의 최대의 이슈들을 다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뉴필로소퍼는 잡지에 철학을 담았다. 어떻게 그런 시도를 했을까? 진중하고 무겁고 불변적인 속성과, 일시적이고 가벼운 이미지의 조합, 철학 + 잡지, 이런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것을 하나로 묶을 생각을 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철학을 담음으로써, 잡지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시간이 지난다 해도 절대 없어지거나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도 유행에 상관없이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성격이 부여된다. 그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였다.

또, '철학'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함을 생각하는 시대는 많이 지났다. 이제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일상이 곧 철학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어느 점에서 보나, 철학 잡지는 대단히 훌륭한 컨셉이다. 심지어 이번에 문화초대를 받은 뉴필로소퍼 VOL·4는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에 대해, 스포츠와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엄청난 흥미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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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보면 일반 잡지와는 다르면서도, 책을 잡지처럼 꾸며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레이아웃을 해놓았다. 비록 그래픽적으로 아름다운 레이아웃은 아니고, 주로 글자와 간단한 다이어그램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름대로 잡지 분위기를 충분히 갖고 있었다.


"우리 몸이 하도록 '강요'받는 것은 무엇이든 일이고, 강요받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놀이다."

마크 트웨인


그 컨셉이나 레이아웃, 철학 잡지라는 외적인 요소 이외에도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이 담고 있는 내용 또한 훌륭했고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는 일하는 것보다 놀기를 좀 더 강조하고 있었다. 심지어 4시간만 일해도 먹고 살기에 지장이 없고, 사치를 부리지 않게 된다고 주장하는 글도 있었다. 그 글을 보며 지금의 내가 그렇게 철저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어서 책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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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한 삶을 위한 놀이

요즘의 세대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제대로 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잡지에 <충만한 삶을 위한 놀이>라는 글을 기고한 올리버 버크먼 씨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생산적이고 의욕이 넘치며, 건설적인 일에 몰입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반면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서 아름다운 석양이나 훌륭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조금 불안하다."

"결과적으로 현재로부터 멀어지고, 지금 서 있는 곳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 성취가 과거나 미래에만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다."


그는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게 된 이유를 신문 기자로 살던 때의 경험이라고 하며, 그의 인생의 모든 경험이 오로지 수단으로 전락해버려 쉴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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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쉬는 것은 단지 TV를 보거나 의미 없이 SNS를 염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현실 도피일 뿐이다. 그런 활동들은 일시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주지만, 결국 지치게 하고 정신상태를 침식시키고 불쾌해지고 더욱 불안해진다.


"놀이란 모름지기 현실 세계를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실수"

무엇이든 하며 놀자, 이언 보고스트.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미래에 초점을 맞추거나,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 두 가지뿐이라고 한다. 즉 열심히 일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며 TV나 웹서핑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의 삶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려는 방법이 정말 놀이라는 것일까? 저자는 잔디 깎는 일을 예로 들면서, 목표지향적인 과제에 유희가 스며들게 하고, 생산성에 즐거움을 부여해 미래에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현재를 음미하는 순간을 놀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진지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핵심 비결은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려는 태도를 버리는 일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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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내가 이미 알던 것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가 새로 정의하든 내가 새롭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1초면 내뱉을 수 있는 쉬운 단어가 사실은 그런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지적인 행복을 느끼곤 했다. 철학이 재밌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순간,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조금 큰 우물로 옮겨가는 순간이 된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내가 알아가야 할 것이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원동력이 된다.



생이라는 희극에서 가면을 벗은 사람은 퇴장당한다. 언젠가 죽어야 하는 인간의 인생이란 각각의 배우가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 무대 감독이 퇴장시킬 때까지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는, 일종의 연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재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연기를 하면서, "이 게임은 더는 게임이 아니어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남들의 어리석음을 기꺼이 눈감아주든 그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모든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이 진정한 분별력이다.

- 요한 하위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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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일의 경계


"최근 누가 나에게 왜 날마다 하는 산책을 그만두었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일해야 해서요"라고 대답했다. 왜 "놀아야 해서요"라고는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꼭 모든 사람이 일만 하고 살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시험을 위해 밤을 새워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술을 마시고 밤을 새워 놀거나, 하고 싶은 게임을 위해, 운동하고 싶어서 잠을 줄이고, 여행지에서 좀 더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즉 즐겁게 놀기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한다. 놀이를 위해 자신의 삶에 다른 가치를 줄이는 것은 인간에게 본능적인 욕구이다.

그러니까 일도 놀이처럼 여기게 된다면 더는 강압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어린아이들에게 놀이도 일처럼 가르친다. 체스 게임이라던가, 피아노, 검도 등의 체육, 그런 놀이도 엘리트에 들어가기 위해서 강요받고 모든 것이 일이 되어버린다.

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는데, 성인들은 오히려 놀이 체험을 많이 하게 되고, 어린이들은 교육과 체험행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엄격하게 교육해 자라게 하고, 어른들은 오히려 자유를 제공해주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자유를 즐기게 된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제한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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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심각한 동시에 사소한


일 : 하고 싶든, 하고 싶지 않든 반드시 해야 하는 행위
놀이 : 즐거움을 위해, 꼭 할 필요가 없는 행위를 하는 것.
게임 : 반드시 극복할 필요 없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


이런 사소함과 심각함 사이의 모순은, 굳이 성취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조건들을 설정한다.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진지함을 잃는 순간 게임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슈츠는 저서 베짱이에서 게임이야말로 유일한 가치 있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유토피아란, 인간이 자신을 위한 일 외에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곳이며, 도구적인 가치를 배제하고 본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상적인 세상이란 자연스레 놀이로 가득한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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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들은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게 아닐까. 게임 속에서는 아무 능력도 없고, 옷도 없는 1레벨짜리 연약한 주인공이 있다. 그 주인공이 무기를 얻고 몬스터를 죽이고 돈을 얻고 오로지 자기에게 필요한 행동만을 한다. 퀘스트를 깬다는 도구적인 수단이 있긴 하지만, 그 퀘스트 역시 장기적이기보다는 일시적이고, 보상을 준다.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 그리고 무의미함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더 재미있고, 짜릿하고 강력하다. 레벨이 오를수록 강력해지는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나 역시 사실 놀이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게임을 시작하는 때도 잘 없지만, 어쩌다가 누가 카톡으로 아이템을 주라고 하면 깔아서 주는 거로 시작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재미있어 조금씩 게임에 빠져들고 자기 전에도 게임이 머릿속에 울린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게임을 켜고, 글을 쓰는 중에도 생각이 잘 나지 않으면 게임을 한다.

게임은 단기적인 도파민 회로를 충족시키고, 나에게 직접적인 손실과 이익을 주지 않는데도 빠져들게 한다. 어느 날 문득 중독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게임을 지운다. 그리고 곧 그 게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내 인생을 온종일 지배하던 것이 단 하루 만에, 단 한 시간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놀이와 게임, 스포츠의 본질은 모순이다. 이 세 가지 행위는 심각한 동시에 사소하고 중요한 동시에 하찮으며, 궁극적 가치가 되는 동시에 아무런 가치도 지니고 있지 않다."


중독이란, 자기에게 이로워서 걸리게 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나는 사람이란 아무리 이타적으로 보여도 결국은 자기가 마음이 편하려고 하는, 또는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라거나 그런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게임이든, 음식이든 뭐든 중독에 걸리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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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놀이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아무리 나를 기분 좋게 하지만 생산성 없는 놀이는 나를 결국 괴롭히고 시간을 빼앗는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으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그런 취미가 무엇인지, 없다면 하나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철학 잡지는 난생처음이라 조금 당황도 했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정기구독을 하고 싶을 정도로 읽을 가치가 있고, 두고두고 읽고 싶을 책이었다. 흘러가는 일상을 조금 깊이 있게 바라보고, 단어 하나에도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으신 분께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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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4호
- 일상을 철학하다 -


엮음 : 뉴필로소퍼 편집부

출간 : 바다출판사

분야
인문/철학
문예지

규격
180*245mm

쪽 수 : 172쪽

발행일
2018년 10월 1일

정가 : 15,000원

ISBN
977-25-8647-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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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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