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영화 보러 갈래?] #1. 여성이 ( ) 만든다.

서울여성독립영화제, 그리고 <천에 오십 반지하>
글 입력 2019.01.2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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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영화 보러 갈래?

내일 당신의 영화 선택지가 더 다양해지길 바랍니다.




#1. 여성이 (   ) 만든다.

서울여성독립영화제, 그리고 <천에 오십 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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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에 다녀왔다. 서울여성독립영화제는 서울숲 가까이 있는 ‘카우앤독’에서 진행되었다. 카우앤독 건물에 다다르니 서울여성독립영화제 포스터 현수막이 보였다. 이미 해가 진 상태였지만 무척이나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여성이 만든 독립 영화만을 상영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여성 영화에 대한 갈증으로 카우앤독에 발을 디디었다.


카우앤독은 정식 영화 상영관이 아니다. 2층에 상영 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첫 인상은 영화제에 대한 인상보다 1층 카페에 대한 인상이 더 강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할 일을 쫒고 있었다. 몇몇은 영화 티켓을 들고 여유롭게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씨네 페미니즘 매거진 세컨드(SECOND)와 서울여성독립영화제 부스가 보였다. 옆에서는 영화가 상영 중인지 관객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편하게 웃고 있었다.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티켓을 수령한 후 1층 카페에 내려갔다. 티켓을 제시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음료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음료를 마시며 기다리니, 곧, 영화 상영 시작 10분 전을 알리며 관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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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는 페미니스트 영화 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의 주최/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찍는 페미는 텀블벅을 통해 여성 독립 영화인들의 설 자리를 넓히고자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취지에 맞게, 서울여성독립영화제 출품 자격은 다음과 같았다.


1) 연출자가 여성일 것(공동 연출 중 한 명 이상이 여성인 경우 가능)

2) 크레딧의 절반 이상이 여성일 것

3) 여성과 관련된 주제일 것


출품 자격을 기준으로, 전원 여성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여성이 만든 여성의 이야기, 상영작 16편이 정해졌다. 장편 초청 개막작 <벌새>, 폐막작 <기프실>, 장편 경쟁 <천에 오십 반지하>, 단편 경쟁 <핑크 페미>, <면도>, <그 엄마, 딸>, <셔틀런>, <언프리티 영미>, <빛>, <머물던 자리>, <대자보>, <내 차례>, <자유연기>, <콩자반>, <만들어볼까요>, <붉은 해일>이 바로 그것이다. 여성이 마련한, 여성독립영화의 장, 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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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내가 관람한 <천에 오십 반지하>는 24살,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하며 약 20만원으로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하는 다큐멘터리다. 제목에서부터 직감할 수 있었지만, 20만원으로 서울에서 방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다루고 있는데, 원룸, 반지하, 옥탑방, 셰어하우스, 고시원 등 다양한 주거 환경 속에서도 20만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제 한 몸 뉘이기도 버거운 고시원, 도저히 사람 사는 방이라 볼 수 없는 지리멸렬한 옥탑방이 전부다. 그마저도 매물이 많지 않다. 청년주거, 서럽다 서럽다 하지만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영화 속 집 구하기는 결국 주방도 없고 화장실만 있는 ‘사무실’까지 당도하는데, 주인공은 ‘이제 집이 휴식처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던지며 눕는다. 촬영하던 친구는 그 말에, 여러 대답을 하려다가 ‘모르겠다 이젠.’이라며 차마 반박하지 못한다. 청년에게 집이란 형태가 존재하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청년 주거에 대한 문제 제기는 많이 봐왔다. 그러나 이 다큐만큼 솔직하고 직설적인 기록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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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특히 ‘젊은 여성’에게 집구하기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보호자가 없으면 부동산에서 무시당하기 일쑤고, 그마저도 젊은 여성 보호자를 데리고 가면 부모님을 찾는다. 매물을 볼 때면 ‘보안’을 가장 중점적으로 보게 된다. 대문이 날아간 집, 쉽게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는 집, 보안이 취약한 집은 아무리 저렴하고 좋아도 일단 후보에 올릴 수 없다. 조건이 더 많아지니, 선택지는 좁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안은 늘 1-2순위가 되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보호 본능이 그렇게 만들었다.


20살,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여자 혼자 산다는 소식에 여러 조언을 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 자취한다고 밝히지 마라, 하숙한다고 얘기해라, 남자 신발을 구해다 현관에 두고 지내라. 하나의 과장 없이 모두 내가 들은 말들이다. 혼자만 체감한 것은 아니다. 선배들은 학과 활동이 늦게 끝나면 여자 후배들을 꼭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내가 선배가 되어서도 여자 후배들을 위해 그렇게 했다. 학과가 유별났던 것도 아니다. 드라마 속 혼자 자취하는 여자주인공이 배달 음식을 받으러 나갈 때, 집에 애인이 있는 척을 하는 것만 봐도, 여성의 주거에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다큐 속 주인공 역시 이 점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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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불안함, 공감, 그리고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를 느끼며 영화 관람을 마쳤다. 여러 생각이 지나갔고, 여러 경험이 떠올랐다. 와중에 이런 기록물을 남겨준 감독님과, 이런 기록물을 접할 수 있게 해준 영화제에 감사를 느꼈다. 이 날 3시에 예정되어 있었던 토크 콘서트(한국영화계에서 여성영화인으로 살아남기)에도 참석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 정도로 좋은 자리였다.


나가며 포스트잇에 2회를 기다리겠다는 말을 적어 붙였다. 더 많은 여성 영화인에게 기회가 생기고, 더 많은 여성 영화인이 주목받고, 더 많은 여성 영화가 창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은 말이었다. 내년에, 혹은 더 빠른 시일 내에, 이런 좋은 자리가 또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그 때는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포스터 및 상영작 정보 출처
찍는 페미 블로그
제1회 서울여성독립영화제 텀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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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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