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비주의를 벗어던지다, 키스 해링 展

글 입력 2019.01.27 21: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키스해링 포스터_빛나는아기.jpg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느낀 점은 간단했다.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

 

그간 보아왔던 수많은 전시들이 이렇게 재미있고 즐겁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었는데, 이런 전시는 정말 간만이었다. 왜 다른 전시들은 그럴 수 없었는지 생각해보니 답이 금방 나왔다. 어렵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더 알아야만 할 것 같고, 더 배워서 전공생이든 뭐든 어떤 종류의 자격을 가지고 미술관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은 예술의 문턱을 자꾸만 높인다.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이 이와 맥락이 비슷해 몇 구절 소개해보려 한다. 존 버거의 <Ways of seeing>이라는 책인데 출간된 지 40년이 넘어 알 만한 사람은 알 만한 고전이라고 한다. 그는 1장에서 우리가 왜 미술을 어렵게 느끼게 되었으며, 어떤 것이 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다. ‘신비화’라는 생소한 용어를 통해 정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를 신비화하는 데로 나아간다.

...

신비화는 어떤 어휘들을 사용했느냐 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조금만 달리 보면 너무나 명백한 것을 쓸데없는 엉뚱한 설명으로 핵심을 흐려놓는 데서 신비화는 비롯된다.


『Ways of Seeing』 中에서


 

Crack Down!.jpg

 


[Preview]에서도 언급했듯 예술은 오랜 시간 동안 대중과 동떨어진 것으로 존재해왔다. 서양의 중세에는 종교미술로 역할 했고, 르네상스에 들어서는 인간중심주의에 집중하는 듯 했으나 곧 상업적인 성격의 정물화와 상류 계층의 초상화가 시장을 장악했다. 이런 이유로 서양의 순수한 미술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동양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지만) 이것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세에는 성직자, 르네상스 때는 부유한 이들로 구성된 특정 계층에게만 예술을 향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Preview] 예술은 삶, 삶은 곧 예술이다_키스 해링 展

 

지금이야 신분이나 계층의 벽은 형식적으로 허물어졌지만 예술이 민주화 되었다는 생각은 아직까지도 현실과 조금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는 끊임없이 예술을 독점하려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대중의 자유로운 연결을 방해하는 이들을 존 버거는 미술사가들, 자본가계층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지적·재산적 독점 욕구로 인해 대중들이 미술관에 방문하면 거대한 규모의 장소에 일단 압도되고, 카탈로그나 도록을 보면 알 수 없고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어려운 설명글 때문에 예술을 가까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Retrospect.jpg
  

키스 해링은 이 점을 꽤 어린 나이에 간파하고 흐름을 바꾸고자 했다.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 등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모두가 예술을 통해 하나가 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뉴욕의 지하철에 그림을 그리고 베를린 장벽에 거대한 벽화를 그리면서 그가 바란 것은 한결같이 ‘대중의 예술’이었다.

 

일종의 도구로 키스 해링이 선택한 방법은 ‘픽토그램’이었다. 온전히 그가 고안하고 개발해낸 픽토그램은 그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었는데, 시작은 누구나 보아도 이해할 수 있게하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해석을 해도 상관없으니 알아보기 쉬운 형태의 픽토그램을 통해 각자의 해셕과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바랐다. 예술 생태계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가치관과 결단력으로 고집스럽게 모든 작품마다 픽토그램을 그려넣었다.


귀엽고 재기발랄한 그의 작품은 자연스레 어린이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대중들로부터 찬사를 받아 키스해링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People.jpg
 

 

감동적이었던 포인트는 그가 외부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대중의 예술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해링의 예술 활동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볼 수 없어, 31년이라는 짧은 생애가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전시를 보는 내내 들었다.


함께 전시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쁘고 밝은 표정을 보며 그가 보았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생전의 인터뷰에서 강조하던 대중의 예술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으며,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즐기게 되었음으로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Untitled.jpg

 


모두를 위한 예술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점차 많은 이들이 대중의 예술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전에는 배제되었던 대중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의 폭은 넓고 다양해져 예술에 대한 욕구와 이해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예술을 즐기고자 하는 대중들의 호기심과 긍정적인 힘을 해링을 통해 다시 한 번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차소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