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의 이야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보고
글 입력 2019.01.2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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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이야기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보고





같은 연극을 20번이나 본다는 건 단순한 팬심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보기 전 검색한 관람 후기에는 6번, 10번, 20번째 관람한다는 인증이 넘쳐나고 있었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덕후가 많은 뮤지컬 중 하나다. 스옵마의 덕후는 뮤지컬의 영문 앞머리를 따서 SOM + 덕후, 즉 솜덕이라고 불린다. 이 뮤지컬,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의문을 품은 채 나는 백암 아트홀에 도착했다.


나는 새초롬한 얼굴로 좌석에 앉았다. 그런 기분을 다들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면, 나는 괜히 좋아하기 싫은, 못된 어린아이 같은 심보. 내가 딱 그랬다. 얼마나 재밌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팔짱까지 꼬고 새침데기처럼 앉아있었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되고 1분 만에 나는 창피하게도 눈물을 흘렸다. 무려 1분. 아니 30초쯤 걸렸나?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고, 내레이션과 함께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 어떤 정서가 마음으로 훅 들어왔다. 굳게 닫혀있던 오래된 상자를 여는 것처럼, 그립고 긴장되고 또 동시에 후회스러운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5_송원근, 정동화.jpg
 

이야기의 간략한 뼈대는 이러하다. 베스트셀러 작가 톰은 어린 시절 절친했던 친구 앨빈의 송덕문을 작성하고 있다. 그의 죽음 앞에 톰은 도저히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었더라, 앨빈이 어떤 사람이었더라, 우리는 어떤 사이였더라. 문장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때 앨빈은 톰을 기억 도서관으로 안내한다. 톰의 이야기, 앨빈의 이야기, 그리고 톰과 앨빈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수많은 책들... 두 사람은 책들을 하나씩 꺼내며 과거의 일을 되짚어간다.

따뜻하고 유쾌한 동화 같은 어린 시절. 톰에게 꿈을 심어주고, 톰이 써나갈 모든 소설의 영감이 되어주며, 늘 그를 격려하고 지지해준 사람. 그가 바로 앨빈이다. 엉뚱한 앨빈과 진지한 톰. 둘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가 있었고,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던 두 사람이 어른이 되어가고, 성장과 함께 톰은 조금씩 변한다. 어른의 모습을 갖춘 톰과 달리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앨빈. 톰은 앨빈과의 기억을 더듬어갈수록 행복했던 기억만큼이나 괴롭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과연 톰은 앨빈의 송덕문을 완성할 수 있을까?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3_정원영, 조성윤.jpg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웃음이 넘치는 뮤지컬이다. 재기 발랄하고 엉뚱한 앨빈이 이끄는 대로 좌충우돌하는 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두 사람의 순수한 장난과 놀이에 난 덩달아 나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게 됐다. 장난감 총알을 주우러 동네를 순회하고, 콩벌레를 관찰하던 유년 시절의 나. 콩벌레를 채집하던 6살의 내가 아주 진지했듯, 나비를 관찰하고 책과의 교감을 시도하는 앨빈과 톰 역시 아주 진지하다. 게다가 성인 배우가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발생하는 코믹한 간극 역시 중요한 웃음 포인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극이 밝을수록 슬픔도 짙어진다.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이 행복하고 즐거울수록 현재 상황과 서글픈 대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톰은 앨빈이 추천한 책을 읽고 작가를 꿈꾼다. 톰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건 언제나 앨빈이며, 소설의 모델이 되는 것도 앨빈, 배경은 언제나 그들의 고향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톰에게 어느샌가 앨빈은 그에게 귀찮은 존재가 된다.  익숙해서 소중함이 무뎌진 그런 존재. 톰은 자신의 책들을 가리켜 "전부 내가 쓴 거야!"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결국 깨닫는다. 모든 영감의 출처는 자신이 무심히 떠나온 바로 그곳, 앨빈이라는 사실을. 앨빈과 멀어진 이후로 자신은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영원할 것만 같은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그 메아리마저 옅어진 세월 앞에서, 어른이 된 톰의 얼굴엔 근심과 후회뿐이다.


흘러간 틈새에
놓친 순간 속에
커다란 비밀이 있는 게 아냐.


야 괜찮아,
네가 필요한 건, 톰.

잘 봐, 전부 여기 있잖아.


- 넘버 [이게 전부야] 中



이 뮤지컬은 친구 혹은 소중한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담고 있다. 의리, 우정, 애정, 장난, 웃음과 같은 밝은 감정부터 질투, 서운함, 실망, 답답함, 귀찮음, 죄책감까지... 하지만 앨빈은 톰에게 말한다. 과거의 잘못에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우리는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했으며 서운하고 속상한 시간도 겪었다고. 그게 다라고. 더 깊숙이 파헤치며 감정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인다. 눈앞에 놓인 톰, 너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렸던 미안한 얼굴로부터 용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던 친구를 향한 미안함과 불편한 마음. 그 마음을 앨빈이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2_정동화, 송원근.jpg


집에 가는 길에, 뮤지컬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게 바로 입덕이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몇몇의 장면들이 눈앞을 맴돌았다.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와 노래,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난 케미스트리에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케미스트리는 직접 뮤지컬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완벽하고 매끄러운 호흡은 두 사람을 완벽한 톰과 앨빈으로 만들어 우리를 매료시킨다. 게다가 즉흥적인 깨알 포인트와 관객과의 호흡 등 입덕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해있기 때문에, 이 뮤지컬의 매력을 꼽으라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추억', '우정', '성장'의 키워드를 가진 이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라이프]는 영화 [써니]처럼 향수를 자극하고, 소설 [데미안]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력을 미치는 진한 우정을 목격하게 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한마디로 '착한' 뮤지컬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잘 만들어진,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착한 뮤지컬. 톰과 앨빈이 들려줄, 가장 가까운 곳의 소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추운 겨울 소중한 사람과 함께 관람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공연 정보


- 공연장: 백암아트홀

- 공연 기간: 2018년 11월 27일~ 2019년 2월 17일

- 공연 시간: 화, 목, 금: 8시/ 수: 4시, 8시
토: 3시, 7시/ 일, 공휴일: 2시, 6시
(월요일 공연 없음)

- 관람 연령: 8세 이상 관람가

- 관람 시간: 100분

- 프로듀서/ 연출: 신춘수

- 제작: 오디컴퍼니 주식회사, 롯데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포스터_0919.jpg
 


에디터.jpg
 

[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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