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전시, 키스 해링展

자유롭게 뛰어논 아티스트, 키스 해링
글 입력 2019.01.2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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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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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일요일 오후 5시. 11월에 시작했던 전시이기에 지금쯤이면 한산할 거라 기대했던 것도 잠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키스 해링 전시장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모든 작품마다 앞에 서서 SNS에 업로드할 사진을 열심히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사진 촬영이 금지됐더라도 이렇게 관람객이 많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많은 사람이 예술 전시를 보기 위해 이만큼이나 몰려든 것은 키스 해링의 철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그는 자기 작품을 통해 수용자들이 그가 전달하는 심오한 메시지를 읽어내기를 바란 게 아니라, 작품에 쉽게 접근하기를 일차적으로 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곳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구성에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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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구성은 전반적으로 키스 해링의 톡톡 튀고 발랄한 작품 세계처럼 재치 있었다. 바닥, 천장, 벽과 벽 사이의 구석까지 활용한 적극적인 공간의 사용이 돋보였고, 다양한 영상콘텐츠들과 블랙 라이트 룸, 자유롭게 배치한 그림들은 관람을 더욱더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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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쉬운 점도 역시 존재했다. 특히 전시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어서 헷갈렸다. 주제별로 나눈 것이겠지만, 시간의 순서로 펼쳐졌다면 좀 더 그를 알기 쉽지 않았을까? 특히, 그의 생애를 전시 마지막에서야 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맨 처음에 보여줬더라면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졌을 것 같다.




키스 해링의 예술 세계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내가 아는 삶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키스 해링-



‘내가 아는 게 곧 진리다’하는 말투에서도 느껴지듯, 키스 해링은 자신감이 가득 찬 아티스트였다. 그는 일찌감치 대중에게 예술을 전파하는 것을 본인 삶의 방향성으로 정한 뒤, 죽는 순간까지 그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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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신감은 그림에서도 느껴진다. 지하철 벽에 그림을 그릴 때부터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까지 그는 항상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이 실수로 계획했던 것과 어긋날 때면, 아예 새롭게 바꾸기도 했다. 노트를 필기할 때조차 수정테이프를 필수로 지녀야 하는 나로서는 언제나 균일한 비율로 다양한 매체에 깔끔하게 그려낸 그의 그림들이 놀랍다.


그는 본인 작품을 매개로 예술과 상업에 대한 틀을 깨기를 원했다. 지하철 광고판을 시작으로 교회, 병원, 학교, 심지어 베를린 장벽까지 그만의 작업 활동의 무대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의 작품들을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공간인 팝숍조차 그는 그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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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쉽게 접근한 데에는 물론 그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다가간 것도 있지만, 단순한 선과 선명한 원색의 사용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가장 단순한 기호들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핵전쟁, 베를린 장벽, 에이즈 등 무거운 메시지를 전할 때조차 그는 발랄한 그림체로 경쾌하게 표현했다. 작품의 의미는 한정하지 않고 해석을 수용자의 몫으로 남겨두어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배제했다.


쉽고 단순하면서 재미난 키스 해링의 작품들은 그가 추구했듯,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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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링이 자주 찾았던 파라다이스 개러지는 

그에게 단순 나이트클럽이 아닌 

그의 영감의 원천, 영혼, 집 그리고 공연장이었다”


-전시 텍스트 中-



키스 해링의 작업은 그에게 일이 아닌 놀이였다. 나이트클럽조차 그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하니, 그의 성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지하철 광고판에 분필로 그림을 빠르게 그리고 도망갔던 것처럼, 그는 그림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논 예술가였다. 


키스해링은 그저 예술가로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예술, 그가 추구했던 그 철학은 2019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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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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