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삶 속의 너는 영원한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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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송덕문(頌德文). 말 그대로 덕을 기리는 글이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송덕문을 처음 경험한 천진난만한 앨빈은 “좋은 말만 해주네?”라며 신기해하고, 늘 그보다 어른스러웠던 토마스는 “그런 게 송덕문이라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럼 니가 내꺼 써줘!
나도 니꺼 써줄게.”
토마스의 답을 들은 앨빈은 스스럼없이 서로의 송덕문을 써주자 제안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토마스는 “바보, 그게 가능해?”라며 그에게 핀잔을 주지만 “그럼 남은 사람이 써주기!”라는 앨빈의 말에는 고개 끄덕인다. 멋모르고 순수하기만 했던 어린 날, 이루어진 약속이었다.
정작 토마스가 처음 쓰게 된 송덕문은 앨빈이 아닌 앨빈의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시간이 흘러 도시로 대학을 가게 된 토마스는 처음으로 앨빈과 이별한다. 첫 이별은 힘들었다. 지금처럼 매일 톡을 주고받고, 보고 싶을 땐 영상통화를 하던 시절이 아닌 만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극복하기 힘든 거리감이었다. 그렇게 토마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앨빈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늦게나마 달려간 고향에서 앨빈은 “늦었잖아.”라고 말하면서도 토마스에게 부탁했던 아버지의 송덕문을 듣는다.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영국 시인의 시를 인용한 송덕문, 앨빈은 단 한 마디로 속내를 드러낸다. 앨빈은 한 줄이라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게 그렇게 힘든 것이냐고 묻고, 그에 토마스는 홧김에 “이 시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지 알기는 해? 이 정도도 감지덕지해야지!”라며 외면한다.
결국 앨빈은 토마스의 송덕문이 아닌 자신이 직접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라며 즉석에서 연설하고, 토마스는 그 모습을 회상하며 “저거 보세요. 얼마나 잘해요 제 친구⋯⋯.”라고 중얼거리며 돌아선다.
마침내 어릴 적의 약속을 지켜야 할 날, 앨빈의 송덕문을 쓸 날이 다가왔다. 남은 사람이 써주자던 말, 그 남은 사람은 자신이 되고 말았다. 앨빈을 떠올리며 펜을 쥐지만 첫 문장, “지금 우리는 앨빈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는 말밖에 쓸 수가 없다. 한순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발목을 붙드는 그 한순간을 알지 못하기에,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지만 오랜 친구를 위한 글은 단 몇 줄도 적을 수 없었다.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수천 개야.
그중에 하나 골라서 써!”
늘 앨빈이 하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라며 받아쳤지만 기억의 강을 거슬러 다시 만나는 앨빈은 늘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천사 클레란스를 기다리던 일곱 살 그때 그 시절처럼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공중으로 흩뿌려지지만 바닥에 차곡차곡 쌓이는 종이들처럼, 이 이야기들은 너의 서재에 꽂혀 있으니 그걸 꺼내기면 하면 된다고 말한다. 네가 모르는 나의 순간들, 그 한순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앨빈은 정말 영화 <멋진 인생>의 한 장면처럼 크리스마스 이브날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일까? 토마스는 끝내 앨빈에게서 그 답을 듣지 못했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삶 속의 너의 이야기, 우리가 함께했던 우리의 이야기는 영원하다고 앨빈이 말해주었으니까.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앨빈의 장례식, 토마스는 그의 송덕문을 낭독해야 한다. 시작은 여지없이 “지금 우리는 앨빈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토마스는 고민 없이 종이를 집어넣는다. 아래를 향해 있던 시선을 들고, 관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웃으며 말한다. “제 친구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라고.
[주혜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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