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Review
글 입력 2019.01.2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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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는 사람과 나아가는 사람, 둘 중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사람 중 누가 더 인생을 잘 살아내고 있는 걸까?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며 변해가는 톰과 항상 같은 자리에서 어린 시절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며 사는 앨빈은 서로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하지만 톰은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한 앨빈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결국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그와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행방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톰은 앨빈이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극은 죽은 앨빈의 송덕문을 작성하게 된 톰이 바쁘게 나아가던 삶 속에서 잃어버렸던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반추하는 과정을 담았다. 남겨진 사람과 떠나간 사람, 멈춰 있는 사람과 변해가는 사람의 우정이 주는 여운이 짙은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다.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일괄편집_[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5_송원근, 정동화.jpg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는 톰과 앨빈,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은 톰 하나뿐이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는 대사로 시작되는 이 극에서 앨빈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도, 새로운 진실을 알려줄 수도 없다. 무대 위에서 톰에게 말을 거는 앨빈은 실재 인물이 아니라 톰의 기억일 뿐이다.


그래서 앨빈의 몇 가지 대사는 극의 여러 장면에서 반복된다. 톰이 기억하는 앨빈의 모습이 톰의 생각의 흐름에 맞추어 반복 재생되는 것이다. 톰이 죄책감을 느꼈을 때는 ‘늦었잖아’ 라며 그를 원망하던 앨빈의 모습이, 무언가를 쓰고자 할 때는 ‘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만 몇천 개야!’ 라며 그를 격려하는 앨빈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 이야기가 전적으로 톰의 입장에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럴 수밖에 없다. 톰과 앨빈이 서로의 송덕문을 써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떠난 사람은 말이 없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리고 톰은 앨빈의 죽음이 사고였는지 선택이었는지, 선택이었다면 왜 그랬는지, 톰에게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 혹은 알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과 후회는 모두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이 이야기에 앨빈은 없다. 톰이 앨빈을 기억하는 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1_정원영, 조성윤.jpg
 


톰이 대학에 합격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동안 앨빈은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채 아버지의 책방을 지킨다. 톰이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라면, 앨빈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이러한 차이는 앨빈이 첫눈 속에서 행복해하는 동안 톰이 열심히 리포트를 작성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톰은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는 한 발 뒤의 미래를 바라보며 행동하고, 목표의 성취를 위해 항상 열심히 노력한다. 노력에 따르는 성취와 철저한 준비에 따른 보상이 이제껏 톰이 인생을 살아온 방식이다. 그런 그에게 어떤 성취에 대한 욕심도 없이 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친구 앨빈은 조금 답답하고 느린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작은 책방이나 지키며 사는 그의 삶이, 어쩌면 하찮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 날, 톰의 느리고 답답한 친구는 대본도 없는 이야기를 너무나 훌륭하게 풀어낸다. 일말의 욕심도 없이 살아온 앨빈이 내가 평생 노력하며 얻은 성취를, 심지어 즉흥으로 잘해낼 리가 없는데 말이다. 톰은 자신의 성취를 전면으로 부정당했다는 충격에 휩싸여 아버지를 잃은 앨빈의 슬픈 얼굴과 떨리는 손을 보지 못한다. 이는 눈앞의 성취에 휩싸여 가장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톰의 삶과도 비슷하다.


아직 성취를 부정당한 충격과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톰은 ‘좋은 말로 가득해야 하는’ 앨빈의 송덕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톰에게 송덕문이란 온전한 자신의 성취였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을 온전히 살아낸 앨빈의 흔적이었다는 것과 지금껏 삶을 지탱해 온 방식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 그리고 앨빈에 대한 자신의 못난 열등감을 모조리 인정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애써 묻어 두었던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인정하고 떠난 친구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된 톰의 내면은 하얀 눈과 흩날리는 종이들로 아름답게 연출된다. 소소하면서도 극적이고, 담백하면서도 화려한 ‘스옵마’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제공_오디컴퍼니]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_공연사진3_정원영, 조성윤.jpg
 


두 친구의 소박하고 소중한 순간을 담은 종이는 한둘씩 모여 아름다운 피날레가 된다. 이 공연을 보는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몇천 개의 이야기도, 톰과 앨빈처럼 아름다운 피날레를 맞을 수 있기를. 모두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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