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잡지 <뉴필로소퍼> 4호 :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도서 <뉴필로소퍼> 4호 리뷰
글 입력 2019.01.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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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에 “목표에서 동기로 : ‘워라밸’이 가져온 변화”라는 제목의 오피니언을 기고했었다. 문득 생각나 다시 글을 읽어보니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글의 요지는 ‘워라밸’이라는 요즘의 트렌드가 사람들을 외부에서 주어진 ‘목표’가 아니라 내부에서 꿈틀대는 ‘동기’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는 것이었는데, 주장에 대한 나름의 확신과 두근거림이 가득한 그때의 글이 지금의 나와는 사뭇 대조되는 것 같았다.

그간 가졌던 잠깐의 휴식기는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고, 새로운 목표와 계획들을 마구 세우고 있는 지금의 나는 확실히 지난여름, 휴식기가 막 시작될 무렵의 나와는 다른 것 같다. 이제는 또다시 무언가를 향해 열심히 살고자 하는, 어쩌면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우리는 가능한 한 생산적인 인생을 살려고 애쓰다가, 역설적으로 스스로에게 최악의 형벌을 내리고 만다. 인생 자체를 놓치는 것이다.

- 올리버 버크먼, “충만한 삶을 위한 놀이” 中


그래서인지 워라밸과 놀이를 주제로 한 이 잡지를 읽으면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지난 6월의 나였다면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내용들인데 말이다. 목적지향적인 삶, 비생산성에 대한 현대인의 혐오증, 이른바 ‘선진국의 표준적인 시간 경험 방식’이라 볼 수 있는 시간의 도구화와 이어지는 허무함 등. 삶과 놀이에 대한 이 잡지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나의 머리에 꽂혔다.

분명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나는 현재에 충만한 삶을, 유희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대비하고 계획하느라 현재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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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잡지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워라밸과 놀이라는 주제보다는 철학 잡지라는 컨셉 때문이었다. 일단 철학 잡지 자체를 접하기 쉽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비전문가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학술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뉴필로소퍼>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다루는 잡지가 아니다.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짤막한 글과 그림들을 실은 잡지이다.

에세이, 칼럼, 인터뷰, 만화, 고전 발췌 등 콘텐츠의 장르는 다양하다. 내용이 무겁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고 또 소소한 재미와 지식들도 얻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광고가 없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2013년 호주에서 창간되었을 때부터 독립성을 이유로 일체의 광고를 넣지 않았다는 이 잡지는 지금도 호주는 물론이고 영미권의 많은 나라와 한국에서까지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철학 잡지라고 하니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그러나 크게 빗나갔던 것이다. 나의 삶을 건드리고 나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말이다. ‘지금, 여기’의 삶을 다루고자 한다는 이 철학 잡지는 자신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끊임없이 독자의 생생한 삶 곁에 머문다. 때문에 언제 읽어도 부담이 없고, 또 어느 파트를 읽어도 ‘유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잡지가 아닐까 싶다.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여전히 인문학이 메말라있는 이곳에, 모르는 새 스며드는 빗방울처럼 사람들의 곁에 있는 잡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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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가 나에게 큰 물음들을 주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목적지향적인 삶으로 나아갈 것 같다. 그러나 그 목적 지향성이 목적 편향성이 되지 않도록,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서 성장하는 과정과 그 순간 자체를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도 아직 다행인 것은, 지난 여름에 나를 움직이게 만든 ‘기타 연주’라는 동기는 여전히 내 곁에서 나에게 ‘지금 여기’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순간에, 목표라는 이름하에 동기를 잃어버리는 때가 있다면 이 잡지가 내개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놀이’에 대한 잡지가 지나치게 진지하달까. 철학 잡지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라고 생각해본다.)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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