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는 요새 좋아하는 걸 만들어요. [영화]

글 입력 2019.01.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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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새 00를 만들어요.




뭐든 해보기.


나중에 할 수 있다고 미루던 것들,

용기 내지 못했던 것들,

지나가는 사소한 관심이라고

여겼던 것들 등 그게 뭐든 다 해보기.



새로운 해를 맞아 언제나 그랬듯 의미 없는 한 해의 목표를 적어 나갔다. 첫 번째로 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느덧 올해도 두 달이 흐른 지금, 호기롭게 적었던 그 목표 아닌 목표들을 다시 펼쳐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그래도 그중에서 나름 잘 지키고 있는 것 역시 이것이다. 요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걸 꽤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하는 중이다.


나는 요새 빵을 만든다. 연말과 연초에는 당근 케이크를 구웠고, 짭조름한 플레인 스콘이 먹고 싶던 어느날 밤에는 유튜브에서 본 조리법을 열심히 따라하여 딸기잼을 듬뿍 발라 먹었다. 이번 주에는 시나몬 롤을 구워 볼 생각이다. 귀찮음과 불편함으로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드립 커피 용품들도 다시 꺼냈다. 고소한 맛과 신맛의 원두 두 가지를 갖춰 두었다. 몇 년 전에 커피를 배웠던 엄마에게 대충 설명을 들은 후에 내 마음대로 내려 마시고 있다.


예전부터 그토록 하고 싶었던 도자기 일일 강좌도 체험했다. 내 손이 힘주는 대로 충실하게 제 몸을 바꿔 가는 약하고 약한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마음을 다해 만든 컵이 예쁘게 구워지기를. 찾아가라는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지난 주말에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라는 영화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인만큼, 요새 내가 좋아하는 ‘만드는’ 일에 관련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는 도리야키를 만든다. 정확하게는 도리야키 속에 들어가는 단팥을 만드는 도쿠에 씨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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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려 마시고, 빵을 만들어 먹는 그 귀찮은 작업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만드는 즐거움에 푹 빠진 내가 느낀 것은 내가 만든 완성본이 주는 감동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바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단팥을 누구보다 열심히, 또 정성스럽게 만드는 도구에 씨의 모습은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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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다려요?
갑자기 끓이는 건 실례잖아.

당과 친해질 동안 기다려 줘야지.

그러니까, 맞선 같은 거야.

뒷일은 젊은 남녀에게 맡기면 돼.


복잡하네요.

극진히 모셔야 하니까.

모신다고요? 손님 말인가요?
아니 팥들. 힘들게 와 줬으니까,

밭에서 여기까지.



이 영화는 '만드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리야키 가게를 운영하면서 시판용 팥으로 도리야키를 만드는, 의욕도 열정도 잃은 채 죄책감에 빠져 사는 센타로에게 도구에 씨는 그가 피해왔던 질문들을 던진다. 단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도리야키를 판다고? 왜 그래?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병을 앓고 있는 도쿠에씨는 어린 시절부터 격리되어 살아왔다. 자신과 똑같이 아픈 사람들에게, 아픈 손으로 단팥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즐거움이었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지혜를 발휘하며 꿋꿋이 단팥을 만들었다.


단팥을 만들면서 도쿠에 씨는 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팥이 겪었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을 상상하고, 햇빛과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단팥을 만든다. 팥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도쿠에 씨는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냈다. 그런 도쿠에 씨가 건네는 특별한 위로는, 센타로가 다시 도리야키를 만들게 한다.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만의 도리야키를.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이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니까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같이 만들어요!



커피를 만들고 빵을 만드는 그 시간은 곧 나를 만들고, 내 삶을 만들어 간다. 앞으로 나는 만드는 것을 꽤 오랫동안, 그리고 더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감히 여러분들에게 같이 하자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만들어보자. 이왕이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만들어보자. 그 시간은 우리를 만들어 갈 테니까.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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